문서 편집 권한이 없습니다. 다음 이유를 확인해주세요: 요청한 명령은 다음 권한을 가진 사용자에게 제한됩니다: 사용자. 문서의 원본을 보거나 복사할 수 있습니다. * [[컴퓨터 관련 정보]] [[분류:컴퓨터]] http://upload.wikimedia.org/wikipedia/commons/thumb/4/4e/Eniac.jpg/785px-Eniac.jpg?width=600 [목차] == 개요 == Electronic Numerical Integrator And Computer 모클리와 에커트의 공동설계로 1946년 2월 14일에 만들어진 30톤짜리 [[컴퓨터]]이다. 원래의 목적은 '''군용'''으로, [[포탄]]의 [[탄도]] 계산을 위해 개발되었다. [[제2차 세계대전]]이 한창이던 1943년에 개발이 시작되었지만, 종전 이후에 완성되는 바람에 전쟁에서는 활용되지 못했다. 이후 원래 목적인 탄도 계산뿐만 아니라 [[난수]] 연구, [[우주선]] 연구, 풍동 설계, [[일기예보]]의 수치예보 연구 등의 각종 과학 분야에서 사용되었다. 쉽게 설명하면 30톤짜리 [[공학용 계산기]]였다. 그러나 성능은 현대의 휴대전화는 물론 [[공학용 계산기]]와 비교해도 훨씬 부족하다. 오히려 현대의 일반적인 [[계산기]]에 가깝다. 참고로 1997년의 [[IBM]] [[딥 블루]]는 2015년의 [[갤럭시 S6]] 성능의 절반 정도. --그러니까 휴대폰과 체스하면서 만만하게 보지 말자. 절대 못 이긴다-- 90년대 최고의 슈퍼컴퓨터도 GTX 1080 한장보다 느리다. 기술이 발전하며 [[컴퓨터]]의 시초가 되었고, 넓게 보면 [[정보기술]]의 발달에도 기여했다고 볼 수 있다. == 세계최초? == 한때 세계 최초의 [[컴퓨터]]라는 소리를 들었지만, 소송을 통해서 [[ABC#s-16|ABC]](어태너소프-베리 컴퓨터)[* 존 어태너소프(John Atanasoff)는 아이오와 주립대학의 교수였고, 클리퍼드 베리(Clifford Berry)는 그의 제자다. 1939년 개발에 착수해 1942년에 실험을 거친 전자식 디지털 컴퓨터였다.]가 세계 최초의 컴퓨터로 인정[* 1973년 10월 19일 미국 법원은 "인류 최초의 전자 계산기는 ABC다"라고 판결 하였다.]받았고 세계 최초의 '실용화된' 컴퓨터란 자리마저 [[콜로서스#s-4|콜로서스]]가 가지고 갔다.[* [[2차 세계대전]] 동안 영국이 독일의 암호를 깨기 위해 사용한 실용화된 컴퓨터로 에니악보다 등장시기가 빠르다. 전시 기밀이기 때문에 공개가 늦어졌으며 공개가 늦어진 탓에 에니악이 최초의 컴퓨터라는 오해의 원인이 되었다.] 물론 여전히 에니악이 최초의 컴퓨터라고 아는 사람이 많다. 그래도 여전히 컴퓨터의 역사에서 매우 중요한 위치를 차지한다. [[존 폰 노이만]]은 이 컴퓨터를 연구해서 현대에까지 쓰이는 '[[폰 노이만 구조|폰 노이만 형 컴퓨터]]'의 개념을 정립했다.(에니악 자체는 폰 노이만 구조가 아니다.) == 구조 == 그러나 에니악은 그 개념상으로 오히려 전 세대의 컴퓨터, 심지어 [[찰스 베비지]]의 [[해석기관]]보다도 못한(…) 물건이다. [[프로그램]]을 구현하는데 사람이 일일이 배선과 스위치를 옮겨주는 무식하기 짝이 없는(…) 방법을 썼기 때문이다.--[[증기기관]]으로 [[톱니바퀴]]를 돌리는 [[해석기관]]도 [[프로그래밍]]은 [[천공 카드]]로 했는데 [[이뭐병]]..-- 또 [[이진법]]이 아니라 [[십진법]]을 사용했다. 회로 구현에 1세대 기억소자인 [[진공관]]을 18800개 사용했다. 이전의 방식(=기계식)보다 훨씬 빠르게 탄도계산 등을 수행할 수 있었지만 이 18800개의 진공관이 몇 분마다 하나씩 뻥뻥 터지는데다가[* 개별 진공관의 수명은 당시의 조잡한 제조기술로도 수 천 시간은 가뿐했지만, 문제는 2만 여개나 되는 진공관을 엄청나게 더운 곳에서 쉴새없이 껐다켰다 했다는 것..], 하나라도 터지면 '''[[장비를 정지합니다|정지 크리를]]''' 먹는지라 그다지 오래는 쓰지 못했다. 전기 사용량이 엄청나서 한 번 가동하면 근처 [[가로등]]들이 깜빡거렸다 [[카더라]]. 그리고 진공관이라는 것이 열을 어마어마하게 발생시켜서 겨울에도 난방이 필요없었을 정도였다고. ~~하지만 여름엔 그 미칠듯한 열 때문에 [[으앙 죽음]]~~ 너무 열이 강하다보니 부품에 이상이 생길 정도여서 냉각장치를 설치했는데 '''오히려 이 냉각장치 때문에 진공관의 파손이 더 심해졌다'''고 한다. 여러모로 [[총체적 난국]]. 그럼에도 불구하고 에니악은 의외로 장수 하면서 1955년 10월 까지 쓰이다가 퇴역하였다고 한다. == 여담 == 에니악의 이름을 따서 만들어진 [[모니악]]이란 컴퓨터도 존재한다. 진공관의 빛에 날벌레가 꼬였다가 타죽어서 쌓인 시체가 쌓이면 발열을 막고 이는 결국 --진공관 펑 -> 장비를 정지합니다-- 고장으로 이어지는데, 여기서 프로그래밍 용어인 [[버그]]가 기원했다고 하는 [[설]]이 있다. 그런데 위에서 언급했다시피 에니악은 평균적으로 몇분만 돌아가면 진공관이 나가서 장비를 정지합니다를 했어야 했을 정도로 안정성이 시망인 물건이었으며 벌레 파편이 쌓일 정도로 오래 기동을 했을리가 없으므로 말 그대로 전설(...)일 가능성이 높다. 사실 정확히 얘기하면 1947년 Harvard Mk.2라는 컴퓨터를 다루던 [[코볼]]의 어머니이자 산업적인 의미에서 최초의 여성 프로그래머로 간주되는 [[그레이스 호퍼]]가 컴퓨터의 오작동 원인을 추적하다가 속에서 타죽은 벌레를 발견해 노트에 기록한 것이 어원인 것으로 알려져 있다. http://s11.postimg.org/xosuzltw3/untitled.png http://s28.postimg.org/vgeuyceil/untitled2.png 에니악의 탄생에 일조한 소프트웨어 프로그래머들 중 대다수는 여성이었다. 당시의 컴퓨터 공학계는 지금보다 훨씬 더 성차별적이어서, 하드웨어 조립 같은 ''중요한'' 일은 남성이 도맡아서 해야한다고 생각했기에 ''상대적으로 덜 중요하다고 생각되는'' 소프트웨어 작업은 여성 프로그래머들에게 맡겼던 것. 당시에 많은 여성들이 수학을 전공했고 사회적으로 여성이 취업할 수 있는 길 또한 한정적이었기에, 컴퓨터 공학 같은 새로운 분야를 개척하는 데 적극적이었던 것이다. 아이러니하게도 덕분에 서브루틴, 모듈식 프로그래밍, 프로그램 컴파일 등의 소프트웨어 개념의 형성에 여성들이 지대한 역할을 끼치게 되었다.[* 월터 아이작슨, <이노베이터>, 149-150쪽. ] 2월 14일은 애니악의 탄생일임과 동시에 발렌타인데이이기도 하다. 그래서 [[솔로|어떤 사람들]]에게는 발렌타인데이가 아니라 성 애니악 데이라고 한다.. --슬프다-- ENIAC 문서로 돌아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