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 편집 권한이 없습니다. 다음 이유를 확인해주세요: 요청한 명령은 다음 권한을 가진 사용자에게 제한됩니다: 사용자. 문서의 원본을 보거나 복사할 수 있습니다. ||<#000000><tablealign=center><tablewidth=100%><:><-5> '''[[LG 트윈스|{{{#white LG 트윈스 시즌별 성적}}}]]''' || ||<width=30%> [[MBC 청룡]] 인수 || {{{+1 ←}}} ||<width=30%><#c30452> '''{{{#white 1990~2008 시즌}}}''' || {{{+1 →}}} ||<width=30%> [[LG 트윈스/2009년|{{{#c30452 2009 시즌}}}]] || [목차] == 팀 창단과 같이 찾아온 첫 우승과 뒤이은 개편(1990~92년) == 1989년 말 [[MBC 청룡]]을 럭키금성그룹이 인수, 구단명을 [[LG 트윈스]]로 바꾸면서 역사가 시작되었다. 감독은 이전 청룡시절 영입한 [[백인천]]을 유임시키고, 신인 선수로 [[김동수(야구선수)|김동수]], [[이병훈(야구)|이병훈]]을 영입, 1990년 1월 [[OB 베어스]]와 트레이드로 [[김상호(1965)|김상호]]를 내주고 [[최일언]]을 데려오면서 시즌을 준비했다. == 스토브리그 == === 코칭스태프 이동 === 1989 시즌이 끝나고 정삼흠의 항명사건 등으로 인해 구단 눈밖에 난 배성서 감독을 해임하고, 백인천 전 감독이 다시 LG 감독으로 복귀했다. 그리고 우용득 타격코치가 다시 삼성 라이온즈로 돌아갔다. === 선수이동 === 태평양 돌핀스에서 방출된 외야수 [[양승관]]을 영입했다. === 신인선수 === 1차지명: 김동수(서울고 - 포수), 이병훈(선린상고 - 고려대, 외야수) 그러나 시즌 시작 전에 [[이광은]]이 교통사고로 빠져버리고, [[김건우]]는 기약없는 재활을 해야 했기에 팀은 큰 전력누수를 안고 시작했으며, 5월까진 OB랑 7위를 다툴 정도로 꼴지로 쳐저있었다. 그러나 6월 초 [[해태 타이거즈]] 3연전을 모두 잡으면서 분위기가 돌변, 이후 귀신같이 승수를 쌓으며 올스타전이 끝난 7월 14일 단독 1위로 올라섰다. 이후에는 [[빙그레 이글스]], 해태 타이거즈와 치열한 1위 전쟁을 벌였지만 9월 중순까지 2위에 머물렀다. 하지만 빙그레가 [[김영덕]] 감독의 계약 문제로 인해 무너지면서 다시 선두를 탈환했고, 9월 28일 대 OB 전에서 [[김동수(야구선수)|김동수]]가 끝내기 홈런을 치면서 사상 처음으로 정규리그 우승을 차지했다. 1위로 직행한 LG의 상대는 [[삼성 라이온즈]]였고 시리즈 직전까지만 하더라도 팽팽한 접전을 예측했지만 결과는 4전 전승으로 LG의 창단 첫 우승과 삼성의 감독 [[정동진]]의 해임이었다. 상세한 내용은 [[1990년 한국시리즈]] 참고. 불행하게도 1990년 우승은 곧바로 LG의 전성기로 이어지지 못했는데, 프런트는 [[백인천]]과 계약 연장 문제를 두고 대립했으며 연말에 재계약에 합의하지만 다음해인 1991년 중반부터 선수들의 부상과 부진으로 무너지면서 [[쌍방울 레이더스]]와 공동 6위를 기록했고 백인천은 이에 대한 책임을 지고 물러나게 되었다. 후임은 [[이광환]] 감독으로 결정되었고, 이와 동시에 [[김재박]]과 이광은에게 은퇴를 종용, 이광은은 받아들였지만 김재박은 이를 거부하고 트레이드로 [[태평양 돌핀스]]로 이적했다. 그리고 1992년 시즌의 결과는 7위로 마감하면서 더 안좋아졌다. 거기다 이광환은 그해 6월달에 태평양에 [[윤덕규]]-[[박준태(1967)|박준태]] 트레이드를 하면서 팬들의 비난을 받았는데, 그도 그럴 것이 당시 윤덕규는 3할이 가능한 타자였고, 박준태는 백업이었기 때문에 비난이 가중될 수 밖에 없었다. 그래도 수확이 없던 건 아닌데 [[송구홍]]이 20-20을 기록하고 [[김동수(야구선수)|김동수]]도 20홈런을 치는 등 젊은 선수들이 빈 자리를 메우기 시작하였고, 이는 신바람 야구로 이야기되는 전성기의 시작을 예고하였다. == [[이광환]]-[[천보성]]이 이끈 신바람 야구의 전성기(1993~98년) == '''[[LG 트윈스]] 구단 역사상 가장 아름답고 뜨겁고 신바람이 넘쳐났던 [[리즈시절]]''' '''6년 사이 포스트시즌 5번, 한국시리즈에 [[1994년 한국시리즈|3]][[1997년 한국시리즈|번]] [[1998년 한국시리즈|진출]]하며 신바람 야구가 꽃피우던 시절''' '''서울야구의 전성기''' 1993년의 개막전은 [[해태 타이거즈]]와 하는 광주 원정이었는데, 이 경기를 잡으면서 4월 내내 승리 행진을 계속하면서 상위권을 찍었다. 특히 4월 30일의 잠실 [[해태 타이거즈]] 경기는 '''한국프로야구 르네상스의 시작'''으로 불리는데, 3연전 내내 만원관중을 동원하면서 본격적인 관중 몰이를 시작하였기 때문이다. 4월의 상승세는 계속 이어져 쭉 2~3위권을 지켰고, 그해 7월 23~25일의 잠실 [[삼성 라이온즈]] 4연전(더블헤더 1경기 포함)은 평일임에도 전 경기 만원을 기록하는 기염을 토했다. 그렇지만 8월달 '대구 대회전'으로 불리는 삼성과의 3연전을 다 내주고 9월달에 부진을 겪으며 4위로 내려갔지만 이미 포스트시즌 진출을 확정지은 뒤의 일이었다. 그리고 시작된 준플레이오프는 [[OB 베어스]]랑 붙게 되었는데, 치열한 투수전 끝에 3차전을 잡으며 2승 1패로 플레이오프 진출에 성공, 삼성과 플레이오프에서 맞붙어 초반 2패로 밀리는가 싶더니 [[이상훈(1971년생 좌완투수)|이상훈]]과 [[정삼흠]]이 3~4차전을 승리로 이끌어 동률을 이루지만 마지막을 넘지 못하고 탈락한다. 덧붙여 이 플레이오프에서는 '''[[윤찬]]과 [[김선진]]의 전설로 남을 [[김주찬|뇌주루]]'''가 나오고 저 경기를 모두 날림으로서 아쉬움이 두 배가 되었다. 시즌이 끝난 그해 12월 1일 LG와 해태 팬들을 놀라게 한 일이 일어났는데, 바로 [[김상훈(1960)|김상훈]]+[[이병훈(야구)|이병훈]]과 [[한대화]]+[[신동수]]+[[허문회]]+김봉재 간 2:4 트레이드가 전격적으로 이뤄졌다. 당시 미스터 LG로 불리던 김상훈을 하락세 조짐이 보이던 한대화와 바꾸자 프런트가 미쳤다는 소리가 나왔지만… 결과는 LG의 완승으로 끝나게 된다. 위에서 설명한 트레이드와 송구홍의 군 문제 이탈로 인해 1994년에는 포스트시즌 진출이 쉽지 않다고 대부분 전문가들이 예측했지만 [[유지현]], [[김재현]], [[서용빈]]의 신인 3인방과 대폭발한 [[이상훈(1971년생 좌완투수)|이상훈]], 꾸준한 모습을 보여준 [[김태원(야구선수)|김태원]], [[정삼흠]]과 마무리 [[김용수]], 노장 [[한대화]]와 [[노찬엽]]의 활약은 팀을 정규시즌 1위로 올려놓았고, [[태평양 돌핀스]]와 대결한 한국시리즈도 4전 전승으로 초살시키며 1994년 시즌의 지배자로 올라섰다. 이해 한국시리즈에 대한 자세한 내용은 [[1994년 한국시리즈]] 참고. 그리고 신인왕 [[유지현]]을 베출하고 [[골든글러브]] 시상식도 5명[* 포수 [[김동수(야구선수)|김동수]], 1루수 [[서용빈]], 2루수 [[박종호]], 3루수 [[한대화]], 외야수 [[김재현]] ]이 수상하면서 개인기록으로도 풍년을 맞았다. 참고로, LG 트윈스의 1994년 페넌트레이스 성적은 '''전 경기 최소 위닝 시리즈'''다. 이 기세를 모아 1995년에도 초반 선두를 달리던 OB를 잡고 9월 초까지 단독 1위를 달렸지만 이광환의 잘못된 운영 때문에 2위로 시즌을 마쳤고 플레이오프에서 [[롯데 자이언츠]]에게 2승 4패로 탈락하게 된다. 그해 이상훈은 순수 선발로만 20승을 따내는 괴력을 보여주었고, 이는 2007년 [[다니엘 리오스]]가 22승을 거둘 때 까지 깨지지 않은 기록이 되었으며 2013년 현재까지 좌완 선발투수가 20승을 기록한 적이 없기 때문에 (아직까지는)최후의 좌완 20승으로 남게 되었다. 당연히 [[KBO 골든글러브]]도 획득. 그러나 이광환의 이상한 운영이 다음해 시즌까지 지속되면서 1996시즌은 7위로 추락하게 되었고, 이광환은 올스타전 직후 경질되었으며 [[천보성]]이 감독을 잇게 되었다. 마운드가 부상과 노쇠화로 무너지면서 [[김용수]]의 선발 재전환과 [[심재학]]의 성장이 유일한 볼거리였다. 천보성을 감독으로 임명하고 맞은 첫 시즌인 97년, 대부분의 전문가들이 4강에 못 들 것이라고 예상했지만 그 예상을 비웃듯 초반에 10연승을 찍으며 선두로 치고 나가게 된다. 그러나 [[해태 타이거즈]]의 추격이 시작되고 [[삼성 라이온즈]]까지 가세하자 3위로 밀려났다가 막판에 힘을 회복하면서 2위로 시즌을 마감하였다. 플레이오프에서 다시 삼성을 만났고 혈투 끝에 3:2로 삼성을 잡지만 힘을 다 써버린 나머지 해태에게 1승 4패로 준우승에 그치고 만다. [[1997년 한국시리즈]] 참고. 이 시기에 등장한 선수가 [[이병규]]로 그해 신인왕과 골든글러브를 수상했고, [[손혁]], [[임선동]], [[최향남]], [[신국환]] 등 천보성이 키우거나 와부에서 데려온 선수들은 팀의 돌풍을 이끌었다. 하지만 1998년 시즌 전 [[이상훈(1971년생 좌완투수)|이상훈]]이 일본의 [[주니치 드래곤스]]로 이적하면서 투수진은 약해졌고, 외국인 선수 제도가 시행되었음에도 마무리 앤더슨만 뽑는 등 특이한 행보를 보였던 98시즌은 [[김용수]]가 다승왕을 하고, 시즌 중반에 버닝하면서 간신히 3위로 마감했다. 그러나 포스트시즌이 되자 완전히 달라지는데, 엔트리에 부상중인 [[서용빈]]을 꺼내든 강수가 적중하고 8월에 영입한 [[주니어 펠릭스]]가 포스트시즌 내내 날아다니며 [[OB 베어스]]와 [[삼성 라이온즈]]를 박살내고 2년 연속으로 한국시리즈에 진출하지만, 상대는 [[현대 유니콘스]]였고 전적에서 앞섰지만 [[정민태]]와 [[김수경(투수)|김수경]]을 위시한 투수진과 [[박재홍(야구)|박재홍]]에게 농락당하며 또 준우승을 하고 만다. [[1998년 한국시리즈]] 참고. == 암흑기의 조짐(1999~2003년) == 결국 98시즌 준우승의 후유증은 팀을 기울어가게 만들었고 그 다음 해인 99년 시즌 매직리그 3위, 전체 6위라는 초라한 성적으로 마무리하게 되는 결과를 가져온다. 마운드에서는 [[손혁]]과 [[김용수]]가 분투했지만 그 뒤를 받쳐야 할 [[김광삼]], [[김상태]]가 부진했고, 투수로 전업시킨 [[심재학]]은 막판에 다시 타자로 돌아왔다. 반대로 야수진은 [[이병규]]가 [[30-30 클럽]]과 최다안타 역대 2위 기록을 쓰며 맹활약했고 [[김재현]]과 [[유지현]]도 잘 받쳐주었지만, 야심차게 뽑아온 외국인 용병들인 펠릭스와 [[케빈 대톨라]]는 기대에 한참 못미치는 모습을 보여주었다. 99시즌의 부진은 [[천보성]]의 사퇴를 불러왔고, ~~지명수배자가 된~~[[이광은]]이 새롭게 감독자리에 올랐다. 이광은은 이전 천보성이 상당부분 진행시킨 리빌딩보다는 다시 한 번 대권에 도전하겠다는 야심을 내보이며 시즌 직전 [[양준혁]]을 데려온다.[* 이광은의 이러한 정책 때문에 피를 본 것은 [[안상준]] 등 한창 자리잡고 있던 유망주들이었다.] 허나 [[김동수(야구선수)|김동수]]가 FA로 [[삼성 라이온즈]] 행을 선택하고 [[심재학]]을 [[현대 유니콘스]]로 트레이드하면서 전력은 이전보다는 약해졌다. 그리고 개막한 2000시즌. [[삼성 라이온즈]]와 [[롯데 자이언츠]]가 리그를 바꾸면서 양대 리그 체제가 바뀌었고, 그 중 매직리그는 '''약체팀들의 집합소'''가 되어 버렸다. 이 상황을 적절히 이용하여 LG는 매직리그 '''{{{#FFC000 1위}}}'''가 되었지만 승률은 불과 0.515였으며 ~~99두산과는 반대 케이스~~ 플레이오프에서 [[두산 베어스]]에 2승 4패로 패하고 만다. 여기서의 압권은 6차전으로 [[이광은]]이 내민 (롤로 따지면)하드쓰로잉 수준의 투수교체로 [[장문석]]을 내밀었다 [[안경현]]과 [[심정수]]에게 홈런을 맞고 패배, 이 때문에 단장 [[신교식]]이 짤리고 최종준이 다시 단장이 된다. 이렇게 되자 LG는 우승을 위해 모든 강수를 던지니 '''[[홍현우]]를 FA로 영입하고''' [[한화 이글스]]에서 나온 [[댄 로마이어]]를 업어오는 데 성공하며 타선은 그야말로 사기가 되었지만 문제는 투수진. 이 때문에 2001시즌 초반 '''9승 25패'''라는 눈 뜨고 못 볼 [[OME]]급 성적을 찍자 [[이광은]]을 해임시키고 [[김성근]]을 감독 대행으로 앉힌다. [[김성근]]은 [[신윤호]]를 중무리로 기용해 투수진을 안정화시켰고 이를 바탕으로 하여 팀을 4강권까지 올리는 데는 성공했지만 마지막 2%가 부족해 6위로 마감하게 된다. 참고로 시즌 마지막인 [[한화 이글스]]전에서 지면 꼴지를 찍는 상황이었지만 이기면서 [[롯데 자이언츠]]에게 '''[[8888577]]의 암흑기를 선사해주게 된다.''' 참고로 01롯데의 승률은 0.457이며 KBO리그 역대 최고 승률의 꼴찌이다. 시즌이 끝나면서 구단은 중반부터 팀을 잘 추수른 김성근을 정식 감독으로 앉히고, 단장도 유성민으로 교체했다. 그러나 [[양준혁]]을 잡지 않았고 핵심 선수들의 연봉을 대거 깎아내기 시작하면서 [[유지현]], [[김재현]], [[이병규]]가 연봉조정 신청을 냈다. 결과는 유지현은 승리, 김재현은 삭감, 이병규는 동결로 끝났다. 그리고 2002시즌, 팀은 용병 [[매니 마르티네스]]가 부상으로 결장하고 [[톰 퀸란]]은 무안타 행진 끝에 방출, [[이병규]]의 2군행 등 난국에 빠지며 5월까지 중하위권을 전전했고 김성근에 대한 반대 여론이 급증하게 되었다. 그러나 [[유지현]]이 돌아오고 미국에서 [[이상훈(1971년생 좌완투수)|이상훈]]을 다시 영입, 신인 [[박용택]]과 불펜의 [[이동현]], [[장문석]]을 기용하면서 여름부터 상승세로 전환하며 3~4위로 뛰어올랐다. 마지막에 위기가 있었지만 최종전 하루 전날 [[두산 베어스]]가 [[SK 와이번스]]에 역전패하며 극적으로 4강 플레이오프에 진출했다. 그리고 준플레이오프에서 [[현대 유니콘스]]를 2승으로 일축, 플레이오프 [[KIA 타이거즈]]전에서 1승 2패의 상황에서 4차전 [[심성보]]의 결승타, 5차전 ~~[[무등야구장]]에 관중들이 불을 지르게 만든~~ 박용택의 활약으로 전문가들의 악평을 무색케하며 한국시리즈에 진출했다. [[2002년 한국시리즈]]의 상대는 [[삼성 라이온즈]]. 전력의 열세에도 불구하고 6차전까지 끌고 왔지만 9회말 [[이승엽]]의 역전 3점포, [[마해영]]의 끝내기 홈런으로 패하면서 준우승을 기록하였다. 2002년 포스트시즌의 선전으로 김성근의 입지는 탄탄해질 줄 알았지만, 11월 말 구단은 '''김성근을 해임시켰다.''' 표면적인 이유는 김성근과 구단의 야구관이 맞지 않다는 것이었으나 실제로는 정규시즌 초반의 부진으로 구단 수뇌부에서는 불만이 있었으며, 뒤에서는 [[이광환]]을 이미 내정해 김성근을 해임하려고 하였고 한국시리즈 준우승은 그 계기가 되었던 것이었다. 팬들 사이에서도 김성근을 두고 여러 갑론을박이 오갔으며 그 결과 다수 올드팬들과 김성근 추종자([[노리타(야구)|노리타]]들의 프로토타입이라고 볼 수 있는)들이 팀을 떠나게 되었다.[* 이상훈이나 [[김재현]] 등의 선수들이 이순철 감독 시절 감독 및 프런트와 갈등을 빚다 팀을 떠나면서 잠시 그들이 자리잡았던 [[SK 와이번스]]로 올드팬들이 어느 정도 이탈했다가 [[김재박]] 재임 시기 돌아오기도 했다.] [[2002년 한국시리즈]]의 선전에도 프런트는 [[김성근]]을 해임하고, 동시에 사장 [[최종준]]도 사임하게 된다. 이를 메우기 위해 임명된 감독은 [[이광환]], 사장은 [[어윤태]]였다. 2003년 시즌이 시작되고, 초반에는 군입대한 [[서용빈]]을 제외한 지난 시즌의 전력이 고스란히 유지되긴 했지만 [[SK 와이번스]]의 급성장, 여전히 강력했던 [[삼성 라이온즈]], [[현대 유니콘스]], [[KIA 타이거즈]]에 밀려 중위권으로 밀려났고, 5월말에는 [[이병규]]가 십자인대 부상으로 시즌아웃 판정을 받으며 전력에서 이탈했다. 불펜을 위시한 투수진은 여전했지만 물방망이가 된 타선은 힘이 떨어졌고 8월부터 밀려나면서 결국 '''6위'''로 시즌을 마감하였다. 시즌이 한창이던 7월말, 이광환 감독은 구단 윗선에서 고참들인 [[이상훈(1971년생 좌완투수)|이상훈]], [[유지현]], [[김재현]]에 대한 결정을 통보받았는데 그 내용인 즉 이 셋을 다음 시즌 전력구상에서 제외하라는 것. 당연히 이광환은 이에 반발했고, 시즌이 끝나자 프런트는 [[선동열]]의 영입을 빌미삼아 그를 2군으로 보내버리고 '''[[이순철]]'''을 새 감독으로 내정하면서 LG 트윈스, 아니 한국프로야구 사상 포스트시즌 연속 실패기록인 '''[[비밀번호]]''' '''[[6668587667]]'''의 본격적인 시작이었다. == 본격적인 10년 암흑기의 시작, [[6668587667]]의 전반부(2004~2008년) == 새 감독이 된 이순철은 우선 [[이상훈(1971년생 좌완투수)|이상훈]]을 [[진필중]]의 영입과 팀 분위기 저하 등을 이유로 2004년 1월 [[SK 와이번스]]에 [[양현석]]과 오승준을 받는 조건으로 보냈으며 [[유지현]] 또한 SK로 이적시키려고 하였다. 2004년은 초반에 치고 나갔지만 6월부터 [[내팀내]]를 시작하며 또 '''6위'''를 기록했다. 그리고 [[유지현]]이 은퇴한 데 이어 [[김재현]]은 프런트의 고관절 부상에 대한 각서에 실망하여 '''FA를 통해 SK로 가고 말았다.''' 보상선수 선발과정 또한 뒷목을 잡게 만들었는데, 당시 SK에는 [[채병용]], [[정우람]], [[윤길현]], [[고효준]] 등 많은 투수 유망주가 있었고 언론에서도 투수가 약했던 LG가 김재현의 보상선수로 투수 유망주를 지명할 거라는 예상이 나왔지만 [[3루수]] 포지션을 약화시키겠다고 [[안재만]]을 지명했지만 SK 전력에는 아무런 타격이 없었다.[* SK는 안재만을 LG에 내주자 롯데에서 FA 미아가 되어 나온 전천후 내야수 [[김태균(1971)|김태균]]을 사인 앤 트레이드 방식으로 영입하여 3루수 공백을 메웠고, 이후 1차 지명으로 입단한 [[최정]]이 3루수 자리를 차지하였다.][* 당시 LG가 지명할 거라고 예상했던 투수들인 [[채병용]], [[정우람]], [[윤길현]], [[고효준]]은 알다시피 몇 년 후 SK 왕조의 주축 투수가 되었고, 반면 [[안재만]]은 LG에서도 부상 등으로 별 활약을 보이지 못하고 얼마 안 가 은퇴하고 말았다.] 또한 시즌 말 [[병역비리]] 파동이 일어나면서 [[김광수(야구선수)|김광수]], [[이동현]], [[심수창]] 등 많은 유망주 자원들이 이탈하기도 하였다. 2005년 또한 [[시즌]] 내내 중하위권에서 놀다시피하며 또 다시 '''6위'''로 시즌을 마감하였다. 2005년 11월에는 기아와의 3대 3 트레이드를 통해 [[마해영]]을 영입했는데, 문제는 기아로 가는 3인 중 불펜의 핵심 [[장문석]]이 있었다. 장문석은 떠나면서 구단을 디스했는데, 팀을 위해 뼈빠지게 던졌지만 돌아온 결과는 [[토사구팽]]이었으니 그런 말이 나왔던 것.[* 그런데 아이러니컬하게도 장문석은 KIA로 이적한 후 팬들로부터 팀 분위기를 저해한다는 비판을 받게 되었으니… 특히 [[김진우]]의 방황에 일정 부분 영향을 미쳤다는 점에서 까였다.] 이순철의 마지막 해였던 2006년, 시범경기에선 1위를 했지만 정작 정규시즌에서는 부진에 부진을 거듭하여 최하위를 기록하면서 수많은 팬들의 분노를 불러왔고, 6월 3일 팬들의 대대적 시위는 그 절정이었다. http://blog.donga.com/lee1379/files/2011/09/cyworld_com_20110904_214626.jpg http://2.bp.blogspot.com/-phRoQBPn_Vs/VWVGXhb91TI/AAAAAAAAAG4/sp6qG6l02V4/s320/pimg_703763183213320.jpg 결국 이순철은 그라운드에 빠따를 던진 마지막 모습을 끝으로 6월 5일 해임되었고 남은 시즌은 [[양승호]] 코치가 감독대행으로 팀을 이끌었지만 이미 기운 팀을 되돌릴 수는 없었고 끝내 '''8위'''를 기록하게 되었다. 이는 구단 사상 최초의 꼴찌였다. 이순철 시기 3년 동안 구단 프런트는 [[송지만]], [[심재학]], [[박재홍(야구)|박재홍]] 등 외부로부터의 트레이드 제안을 씹으며 전력 강화 기회를 스스로 걷어찼고, [[진필중]]을 제외하면 FA 또한 거들떠보지 않았다. 외국인 선수도 [[알 마틴]]이나 [[루 클리어]]를 제외하면 실패에 가까웠으며 관광객 [[매니 아이바]]와 [[아마우리 텔레마코]]는 그 중에서도 최악이었다. 신인 선발 또한 2003년과 2005년을 제외하면 항상 똥망이었으며, 기껏 뽑아놓은 [[박병호]], [[정의윤]], [[우규민]], [[이대형]], [[이성열(야구선수)|이성열]] 등의 출장 기회는 제한적이었다. 현장에서는 써 먹을 선수가 없어 베테랑 위주로 돌릴 수 밖에 없었으며 자연히 전력은 막장일로로 치닫게 되었다. 이러한 상황에서 LG의 선택은 [[현대 유니콘스]]의 [[김재박]] 사단을 일부[* [[김시진]], [[이명수]], [[염경엽]]이 현대에 남았고, 염경엽은 현대 해체 후 LG로 오게 된다.]만 제외하고 통째로 빼오는 것과 [[박명환]]의 영입이었다. 그러나 간판 타자 [[이병규]]를 [[주니치 드래곤스]]로 보내며 타선이 더 약해졌고 그 결과 대부분의 전문가들이 2007시즌 LG를 유력한 꼴찌 후보로 찍었다. 그러나 시즌 결과는 5위로 8~9월달의 부진만 아니었다면 충분히 4강에 들 수 있었기 때문에 큰 아쉬움을 남겼지만, [[이대형]]이 등장하면서 [[골든글러브]]를 수상하는 등 나름대로의 실적도 있었다. 이렇게 성적을 힘들게 끌어올렸다면, 그 다음은 전력을 더 올리기 위해 과감한 투자가 필요했지만 LG는 아니었다. 2007년의 선전에 안주해 프런트는 2007년의 전력 그대로 4강권에 도전하려고 하였기 때문에 눈에 띄는 전력 보강은 없었다. 결국 2008년 시즌에 앞서 보강을 소홀히 한 대가는 2년만에 최하위라는 불명예스러운 성적으로 돌아왔다. [[봉중근]], [[크리스 옥스프링]]을 빼면 선발투수진은 전멸했고 [[정재복]]과 [[정찬헌]]을 갈아넣은 불펜진은 이 둘의 선수 생명까지 같이 갉아먹고 말았다. 타선 또한 [[안치용]]과 시즌 중 들어온 [[로베르토 페타지니]]만 빼면 막장이었다. 이 때문에 구단 내부는 시즌 중 대대적인 감사를 받았으며 온갖 치부들이 밝혀졌다. 몇몇 자리만 빼고 대부분의 구단 직원들이 잘려나간 시기가 이 시기의 일. 새롭게 바뀐 프런트의 선택은 FA시장 영입이었으며 그 결과 [[이진영]]과 [[정성훈]]을 영입하면서 2009년을 대비했다. [[분류:LG 트윈스]] LG 트윈스/1990~2008년 문서로 돌아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