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 편집 권한이 없습니다. 다음 이유를 확인해주세요: 요청한 명령은 다음 권한을 가진 사용자에게 제한됩니다: 사용자. 문서의 원본을 보거나 복사할 수 있습니다. * 상위 항목 : [[항공 사건사고]] [목차] == 개요 == [[1970년]] [[9월 6일]] 일어난 동시다발 납치 사건. 팔레스타인 해방기구([[PLO]]) 산하 팔레스타인 인민해방전선(PFLP)가 일으킨 사건이다. == 사건기 == https://c1.staticflickr.com/7/6122/5950737134_52ed86d1b2_b.jpg?width=595 * [[엘알]] 219편 (LY219, 4X-ATB) - [[보잉 707]]-320. [[텔아비브]]발 [[암스테르담]] 기착 [[뉴욕]]행으로 승객 138명[* 사복경찰 포함], 승무원 10명 탑승. https://c2.staticflickr.com/8/7446/10614085116_619983bd9e_b.jpg?width=595 * [[TWA]] 741편 (TW741, N8715T) - [[보잉 707]]-320. [[프랑크푸르트]]발 [[뉴욕]]행으로 승객 144명, 승무원 10명 탑승. http://www.sr692.com/fleet/23_dc853/idd.jpg?width=595 * [[스위스에어]] 100편 (SR100, HB-IDD) - [[DC-8]]. [[취리히]]발 [[뉴욕]]]행으로 승객 145명, 승무원 8명 탑승. https://jpbpa2.files.wordpress.com/2013/09/747-3.jpg?width=595 * [[팬암]] 93편 (PA93, N752PA[* Clipper Fortune]) - [[보잉 747-100]]. [[암스테르담]]발 [[브뤼셀]] 기착 [[뉴욕]]행으로 승객 136명, 승무원 17명 탑승. https://c1.staticflickr.com/9/8026/7636212416_4312cb4e6c_b.jpg?width=595 * BOAC 775편 (BA775, G-ASGN) - 비커스 VC-10. [[바레인]]발 [[베이루트]] 기착 [[런던]]행으로 승객 105명, 승무원 9명 탑승. 이중 팬암 93편은 당해 [[5월 2일]]에 인도된 새 비행기였다. 아멘... 그리고 위의 사진은 N752PA의 생전 멀쩡했던 유일한 사진... [[안습]]. == 사건 == === 배경 === 자세한 내막을 알고 싶으면 [[팔레스타인/역사]], [[검은 9월]] 문서 참조 바람. [[1947년]] 팔레스타인 분할안과 [[1948년]] [[제1차 중동전쟁]] 이후 팔레스타인 난민이 [[요르단]]으로 급속히 들어와 결국은 요르단인보다 팔레스타인인이 더 많아지는 상황에 이르자 당시 [[요르단]] 국왕 [[후세인 1세]]는 팔레스타인 난민들에게 적절히 자치권을 주면서 자극하지 않으려 하였다. 한편 [[1967년]] 결성된 [[PLO]]는 팔레스타인을 대표한다고 자치권을 남용해 각종 범죄를 저지르기 시작하고, [[후세인 1세]]는 제지했지만 이들은 쌩까고 계속 범죄를 저지르고 다녔다. [[요르단]]과 관계가 험악해지는 건 자연스러운 일이라서, 요르단군과 수차례 내전까지 하였다. [[1970년]]은 그 양상이 심화되던 시기였다. 게다가 일부 지역에서 무단 통치까지 실시하면서 [[후세인 1세]]와 [[PLO]] 간의 관계는 더욱 악화되었고 그 와중 PLO의 강경분파 중 하나였던 PFLP(팔레스타인 인민해방기구)[* 이름에서 알 수 있듯이 [[사회주의]]를 신봉하는 분파이다.]에서 사건을 저질러 버렸다. === 납치 === [[1970년]] [[9월 6일]] 각지에서 [[뉴욕]]으로 가던 [[엘알]] 219편, [[TWA]] 741편, [[스위스에어]] 100편, [[팬암]] 93편이 PFLP 조직원에 의해 납치되었다. 그러나 LY219편에서는 [[이스라엘]]이 당시 불안한 정세 때문에 사복경찰을 배치한 게 묘수가 되었다. 조직원 2명은 그것도 모르고 납치했다가 사복경찰에게 걸려 1명이 사살당하고 1명은 총격전 끝에 시민 협조로 검거되었다. LY219편은 [[런던]] [[히드로 국제공항]]에 비상 착륙했다. TW741편, SR100편은 납치되어 '혁명 공항'에 강제착륙당했다. 이곳은 [[요르단]]의 도시인 자르카 근교 사막의 PLO 무단통치지로, 원래 영국 공군의 도슨 공군기지가 있었지만 영국군이 철수하고 PLO가 접수해 기지로 활용하고 있었다. PA93편은 "[[크고 아름다운]] 이 비행기가 '혁명 공항'에 들어갈 수 없을 것 같다'는 조직원들의 판단에 따라 [[카이로 국제공항]]에 착륙해 폭파, 조직원들은 인질을 풀어주고 경찰에 순순히 투항하였다. 그리고 이것이 [[보잉 747]]의 첫 기체손실이다. --새 비행기를 날려먹은 [[팬암]] 캐안습-- https://jpbpa2.files.wordpress.com/2013/08/19-cairo-explosion-747-closeup.jpg PA93편의 잔해. [[9월 9일]]에는 영국해외항공(BOAC) 775편이 납치되었다. === 협상 === http://www.vc10.net/Memories/Images/rev-airport-70f_TIF.jpg '혁명 공항'에 주기된 비행기들. 곧 '혁명 공항' 주변으로 각국의 외신들이 모여들었다. PFLP는 이들을 모아놓고 서방 국가에 잡혀있는 PFLP 조직원들과 이번 납치작전의 범인들을 풀어줄 것을 요구하며 안 들어주면 인질을 항공기에 태운 체로 항공기를 폭파하겠다고 협박한다. 그리고 [[9월 7일]] PFLP 조직원들이 구속되어 있는 [[이스라엘]], [[서독]], [[스위스]], [[영국]], [[미국]] 국적을 가졌거나 [[유대인]], 승무원을 제외한 인질 125명을 석방하였다. [[스위스]], [[영국]], [[서독]]은 [[9월 8일]] 협상을 시작했다. [[이스라엘]]은 PFLP의 존재를 공식적으로 부정하는 정부 방침 상 협상을 거부했고, 대리로 [[국제적십자사]] 위원들이 협상 테이블에 앉았다. [[미국]]은 지중해에 전개한 제6함대와 터키에 전개한 공군부대를 출동 대기 상태라며 공갈을 실시했다. 다만 실제로 공격하지는 않았다. 이로 인해 단단히 빡친 [[후세인 1세]]는 군대를 배치하고 협상을 시작했다. [[9월 11일]] 인질 중 여성과 어린이를 중심으로 한 일부가 풀려나 56명이 남았다. [[9월 12일]] 각국과의 협상이 극적으로 타결되어 인질 전원이 석방되었다. === 폭파 === https://upload.wikimedia.org/wikipedia/en/0/05/Dawson's_Field.JPG http://newsimg.bbc.co.uk/media/images/42793000/jpg/_42793301_blowup.416.jpg 그러나 PFLP는 "이스라엘과 국제사회에 대한 항의" 라면서 항공기 3대를 차례로 폭파시켜 버렸다. 이 장면은 각국에 그대로 방영되었으며 팔레스타인 해방운동을 상징하는 사진으로 남게 되었다. === 사건 이후 === 이 사건으로 인내심의 한계를 초월해버린 [[후세인 1세]]는 [[9월 15일]] 전국에 계엄령을 선포하고 내전을 일으켜 [[PLO]]를 [[레바논]]으로 내쫓아 버렸다. ([[검은 9월]]) [[PLO]]는 "요르단의 배신"이라며 부득부득 이를 갈았으며 [[1972년]] 여기에서 갈라져 나온 [[검은 9월단]]이 [[뮌헨 올림픽 참사|사건을 거하게 쳐 버렸다.]] --그리고 [[레바논 침공]]-- == 같이 보기 == * [[PLO]] * [[검은 9월]] * [[검은 9월단]] PFLP 동시다발 하이재킹 사건 문서로 돌아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