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 편집 권한이 없습니다. 다음 이유를 확인해주세요: 요청한 명령은 다음 권한을 가진 사용자에게 제한됩니다: 사용자. 문서의 원본을 보거나 복사할 수 있습니다. * 상위 항목 : [[중전차]], [[다포탑 전차]], [[지상 병기/세계대전]] [목차] [include(틀:2차 세계대전/소련 기갑차량)] == 제원 == |||| [[파일:attachment/f0075523_4a439eec053e0.gif|width=100%]] || |||| T-35 Heavy Tank || || 디자인/생산 || OKMO 설계국/ Kharkov 기관공창 || || 전장 || 9.72m || || 전폭 || 3.2m || || 전고 || 3.43m || || 중량 || 45t || || 승무원 || 11명 || || [[포탑]] || 주포탑 1기, 부포탑 4기 (포탑 2기, 기관총탑 2기) || || 초기형 무장 || 76.2mm 주포 1문, 37mm 부포 1문, 5~6문의 [[DT]] 기관총 || || 양산형 무장 || 76.2mm 주포 1문, 47mm 부포 2문, 5~6문의 [[DT]] 기관총 || || 장갑 || 11mm ~ 35mm || || 속도 || 30km || || 엔진 || M-17M [[디젤엔진]] (500마력) || || 현가장치 || 코일 스프링 || || 출력비 || 톤당 11마력 || || 항속거리 || 150km || == 개관 == [youtube(T2C5yek0jto, width=100%)] ~~강철의 [[히드라]], 하지만 [[T-28]][[현실은 시궁창|을 능가하는 고철덩어리]]~~ T-35. 2차 대전 초반의 [[소련]]의 [[중전차]]다. 크기도 엄청나게 커서 역시나 삽질이었던 독일의 [[마우스 전차]] 다음으로 큰 전차로, 독소전쟁 초기 [[독일군]]이 [[3호 전차]]나 [[4호 전차]]를 몰던걸 감안하면 충분히 위협이 될 수도 있었던 전차였다. == 개발 == || [[파일:attachment/f0075523_4a439ecc4ed2e.jpg|width=100%]] || || A1E1 "Independent" || 1925년, [[영국]] 비커스 사의 '''[[다포탑 전차]]''' A1E1 "인디펜던트"가 개발되자, 각국은 이 기묘한 다포탑전차에 대해 큰 호기심을 가지게 되었고, 그것은 곧 다포탑전차에 대한 근거없는 무적으로 이어졌다. 실전을 전혀 거치지도 않고 그저 "다포탑이니 화력이 강하겠지"라는 믿음을 바탕으로 태어난 이 "[[육상전함]]"들은, 일반인들이 생각하듯 겉으로 보기엔 대단하게 보였기 때문에 그 당시 관계자들 또한 같은 생각을 가졌음직하다. 각국은 이 다포탑 전차에 대해 크나큰 관심을 가지게 되었는데 그 흐름 속에 소련도 있었으며, 실제로 인디펜던트 전차를 구입하려 했지만 결국 사지 못했다. 그러나 [[세계 대공황]]이 닥치자 각국은 이 돈 많이 드는 다포탑 전차에서 손을 떼게 되었다. 허나 그러한 경제 대공황의 여파를 그나마 크게 받지않은 소련은 다포탑 전차에 대한 투자를 계속하게 된다. 1930년 소련은 T-30 프로젝트를 시작하나 막연한 디자인 때문에 실패하고, 이후 소련 당국은 또 하나의 프로젝트였던 "TG-1" 프로젝트에 올인한다. || [[파일:attachment/f0075523_4a439ef1d15e7.jpg|width=100%]] || || 시험 테스트 중인 T-35 || 소련은 다포탑 전차를 개발하기 위해 당시 사이가 좋았던 [[독일]]의 엔지니어 에트바트 그로터(Edward Grotte)를 초청해 볼셰비키 공장 OKMO 디자인팀의 특별 설계국 AVO-3에서 "TG-1"의 소련기술자들을 지도하도록 요청했다. 그 결실은 이루어져 1930년 3월 TG-1의 설계는 모두 완료되었다. 하지만 소련당국은 TG-1보다 강력한 35톤 전차를 원하게 되었고, AVO-3 설계국에게 1932년 8월 1일까지 정식으로 "T-35" 프로젝트를 완성시킬 것을 요청했다. 재검토된 T-35는 1932년 8월 20일, 첫 [[프로토타입]]이 공개되었고, 1933년 4월, 잠정적으로 T-32라고 명명된 프로토타입 전차가 쿠빈카(Kubinka)에서 여러가지 시험을 받았으며, 이후 생산단가를 낮추기 위해 T-28, BT 계열 전차 같은 소련의 다른 전차와 부품 공유화 작업, 엔진, 서스펜션 개량을 거친 후 같은 해 8월 11일 T-35로써 제식화되었다. || [[파일:attachment/f0075523_4a43a3bf4c5f1.jpg|width=100%]] || || T-35의 현가장치 || T-35의 원래의 계획이 'TG-1' 중전차였기 때문에, T-35에는 상당히 많은 TG-1의 기술이 녹아들어갔다. M6 디젤엔진, 마찰클러치(friction clutch, 엔진에 시동을 걸거나 기어를 변속할 때 동력의 전달을 차단하고, 발진 때 엔진의 동력을 변속기에 전달하는 장치), 변속장치, 측면 클러치 등이 계승되었다. || [[파일:attachment/f0075523_4a43a3c6bc444.jpg|width=100%]] || || T-35와 T-28 || T-35 전차의 주요무장은 [[T-28]] 전차와 비교해서 "수만 많을" 뿐이었다. 1문의 76.2mm PS-3 [[주포]], 주렁주렁 달려있는 5~6문의 [[7.62mm]] DT [[기관총]]은 T-28 또한 가지고 있는 무장이었고, 단지 다른 것이 있다면 부포탑 숫자 및 후방 발사 기관총과 45mm 부포였다. 설상가상으로 생산초기에 PS-3 주포의 숫자가 부족하여 가짜 포를 매달고 있었다는 것. 이것은 후에 KT 주포로 변경된다. 결국 T-35, T-28은 모두 다포탑에 대한 환상에서 나온 산물들이었고, 두 전차의 포와 장비 등은 공유되었다. 원래 다포탑 전차라는 설계는 많은 화력을 장착함으로써 여러 방향을 동시에 공격하거나 강력한 화망을 펼칠 수 있다는 것을 목적으로 한다. 하지만 부포탑으로 인해 주포탑이 자기 위치보다 아래쪽의 표적을 사격하지 못하는 것 같이 많은 문제점이 발견되었다. 일단 적을 발견하는 것 자체가 어렵고, 워낙 거대하므로 발견해도 대처하기 힘든 사각이 많이 발생하며 포탑끼리 간섭현상이 발생하는 등 화력집중을 방해한다. 여기에 기본적으로 큰 덩치를 가지므로 고출력을 가지는 엔진이 필요하고, 장갑에 강화할 여유출력이 부족하며, 설령 아무리 장갑을 강화해도 상대적으로 약한 부포탑에 포탄이 명중하면 간단하게 관통되는 등 방어력이 취약해진다. 뿐만 아니라 다수의 인원으로 인해 전차장의 통제를 어렵게 만드는 등 그야말로 약점투성이다. 게다가 가뜩이나 무전기 없고[* 무전기가 장착된 차량은 포탑 주변의 핸드 레일처럼 생긴 안테나(!)의 장착 여부를 통해 확인할 수 있다. 맨 위 사진의 예가 대표적이다. 이런 "핸드 레일"식 안테나는 [[T-26]]의 지휘 차량 사양 등지에서 찾아볼 수 있다. 무선 통신 기술이 열악했던 시기에 사용된 고육지책이다.] 열악했던 소련 [[육군]] 초기의 상황을 감안하면 그야말로 간신히 굴러가는 문제점 덩어리였다. 유일하게 긍정적으로 볼 것은 비록 T-35 전차가 실패로 끝났지만 후에 [[KV-1]]과 경쟁했던 [[SMK]] 전차, [[T-100]] 등에 녹아들어갔다는 점인데... 후속 다포탑 전차도 실패로 끝났다는 점을 감안하면 긍정적으로 볼 게 전혀 없다. || [[파일:attachment/f0075523_4a43a4a267bb7.jpg|width=100%]] || [[파일:attachment/f0075523_4a43a4bb616bd.jpg|width=100%]] || || T-35 첫번째 시험제작형 || T-35 두번째 시험제작형 || 전차에게는 언제나 초기형과 후기형, 기본형과 개량형이 존재하며, 그것은 T-35도 마찬가지였다. 그러나 T-35는 미처 생산하기도 전 "시제품"에서 두가지 형식으로 갈려 생산되었는데 T-35의 두번째 생산품은 무장의 개량이 아니라 사실상 디자인의 변경에 가까웠다. 디자인을 제외하고 엔진은 M-17 디젤엔진, 변속기들의 개량을 거쳤다. 이 두 가지 시제품이 일반에게 처음으로 공개된 것은 1933년 11월 7일 모스크바에서 벌어진 분열식에서였다. 이 두 대의 T-35가 공개된 후, T-35 전차는 1935년부터 본격적으로 [[양산]]되었으며, 총 61대가 생산되었다. 그 두 가지 시제품 형식을 제외하고, T-35의 "정식" 파생형이라 한다면 1939년의 포탑 개량형과 T-38B가 될 것인데, T-38B는 아예 개발이 취소되어 버렸고, 1939년 최후기형이라 해보았자 [[경사장갑]]을 도입했지만 장갑 자체가 얇아서 별 쓸모가 없었다는 것과 함께 고작 6대 생산되어 전력으로는 별 가치가 없었다. 그것은 T-35A(초기 생산형) 또한 마찬가지였다. 보통 주력화된 전차는 적어도 100량은 넘게 발주하는 것이 보통인데 부품이 많이 들어가는 다포탑전차의 특성상 T-35 전차의 가격이 [[BT 전차]] 9대에 해당하는 가격이었으므로 61대가 생산된 것도 엄청난 생산량이라고 볼 수 있다. 물론 T-35 전차의 실전을 생각해보면 거기에 들어간 자원으로 차라리 BT 전차를 뽑는 것이 더 나았을 것이다. || [[파일:attachment/SU-14br2/00001.jpg|width=100%]] || || [[SU-14]]br2 [[자주포]] || 위에 언급한 것 말고도 [[SU-14]]br2 자주포라 하여 152mm 야포를 장착해서 자주포화된 것도 있는데 [[마우스 전차]] 정도의 크기를 자랑하며, 이런 종류의 자주포가 없었던 당시의 소련군에게는 나름대로 의미가 있는 차량이다. 하지만 제식으로 채택되지 않아서 시제품만 1량 생산되었으며, 당시 소련군의 사정상 [[계속전쟁]]과 [[모스크바 전투]]시 사용되었으나 전과가 불분명하다. == 실전 == || [[파일:attachment/f0075523_4a439eb2622fd.jpg|width=100%]] || [[파일:attachment/f0075523_4a439ee1741f2.jpg|width=100%]] || |||| 부서지고 버려진 T-35 || T-35의 첫 실전배치는 [[모스크바]]를 방위하는, 우리나라로 따지자면 수도방위사령부의 예하부대 쯤 되는 제5독립중전차대대였다. 이때만 해도 정예전력으로서 충분히 기대받고 있는 물건이었다. 그러나 현실은 가혹했다. 일단 T-35는 1935년부터 정식으로 운용되었지만 1939년 [[겨울전쟁]]에서의 [[SMK]] 전차의 성과, ~~ 함정에 빠져서 2개월간 방치되다 절단기로 잘려 용광로로 직행~~ 그리고 1940년 6월부터 제기된 "다포탑 전차의 실용성" 문제 때문에 T-35는 시작도 하기 전에 퇴역할 위기에 놓였다. [[스탈린]] 또한 이 필요없는 다포탑 전차에 대해 부정적인 견해를 갖게 되었다는 점도 크게 작용하였다. 이는 KV-1 전차의 설계가 다포탑 전차에서 단포탑 전차로 진화하는 것에도 기여했다. 이렇게 슬슬 버려져 가던 T-35는 실전에 참가하기도 전에 전차학교에 돌려지거나 개량형 설명에서도 밝혔듯 자주포로 전용되는 등 처지가 안습해졌다. 하지만 완전히 퇴역한 것은 아니라서 제34전차중대의 68연대와 [[키예프]]에 상당량이 배치되었고, 마침내 T-35의 실전의 날이 다가오고 있었다. || [[파일:attachment/f0075523_4a439ed9770d6.jpg|width=100%]] || || 독소전쟁으로 소련에 침입하는 [[4호 전차]] || 1941년, 독일이 [[바르바로사 작전]]을 발동하여 소련을 기습 침공함으로써 [[독소전쟁]]이 발발하자 갑작스러운 상황과 --[[게오르기 주코프]]가 그토록 닥달을 했건만-- 아직 대비하지 못한 붉은 군대는 순식간에 붕괴되기 시작하였다. 그것은 [[T-28]] 전차를 포함해서 T-35 전차도 마찬가지였는데, 실전은 커녕 아군 승무원들에게 '''부서지고, 박살나고, [[자폭]]해서''' 길가에 버려졌다. 총 90%에 달하는 T-35 전차가 버려졌으며, 모스크바 방위전에 투입되기 위해 전차학교로 돌려놓은 T-35 전차를 제외하고는 제대로 싸운 전차가 없다시피 하였다. 문제는 소련군의 다른 전차들은 일단 작동만 하면 전선에 마구잡이라도 투입되었다는 것인데, T-35가 그러지도 못한 이유는 T-35는 성능이 너무나도 낮아 전차로는 '''쓸 수 없는''' 물건이었고, 자체적으로도 너무나 많은 문제를 가지고 있었다. T-35의 문제점은 고질적인 방호력문제(35mm 장갑)도 있었지만, 격파된 전차보다 버려진 전차가 더 많고, 독소전쟁 초기의 [[독일군]] 전차 또한 별반 다르지 않는 장갑이라고 생각하면 그것은 문제가 되지 않는다. 따라서 궁극적인 요인은 바로 기동성과 성능이 저질인 M-17 엔진에 있었다. 한 군관은 이렇게 푸념할 정도였다. > 13도의 경사밖에 기어오르지 못하고, 물웅덩이를 만나면 멈추어야 하는 이 전차가 과연 전차인가? 군관의 말대로 T-35는 난장판인 전장에서 제대로 싸울만한 전차가 아니었다. 게다가 T-35 내부는 각 승무원들끼리 연결되지도 않았고, 다포탑에 의한 화력분산, 지휘체계의 혼란, 부포탑 각도에 따라서는 조종수 해치가 열리지 않는 등 피격시 승무원의 힘든 탈출은 더욱더 그러한 상황을 크게 만들었다. 거기다 웃기게도, 당시 소련군의 규칙상 10명 이상의 병력이 탑승하는 중장비에는 반드시 [[정치장교]]가 그 숫자에 추가돼야 했기에 T-35 전차 역시 전차장과 함께 정치장교가 탑승했다(...). 정확한 증언이 있다거나 그런 건 아니지만, 정치장교 항목에서 보듯 그들의 군사적 상식을 망각한 행동 덕분에 저승길 동무가 된 T-35의 전차승무원들 또한 분명 있었을 것이다. 설상가상으로 이 전차를 상대하는 독일군의 입장에서는 거대한 크기에 압도당하지만 않으면 그야말로 고정표적 그 자체였다. 우선 T-35 자체가 느리고 지형을 까다롭게 가리는 데다가 선회속도도 느려서 독일군 전차의 입장에서는 천천히 여유를 가지고 움직여도 될 정도였다. 게다가 일단 일정거리 이내로 접근하면 부각의 문제상 중앙의 주포탑이 하방사격을 할 수 없어서 무용지물이 돼버리고, 부포탑의 경우에도 사각이 있기 때문에 부포탑 옆의 기관총탑이 담당하는 각도에서 전투하면 가만히 서서 적을 박살낼 수도 있었다. 물론 덩치가 커서 대전차포탄 1발에 박살나지는 않지만, 방어력을 강화할 수 없는 부포탑에 연속으로 포탄을 집중하면 쉽게 박살나며, 그렇지 않더라도 장갑이 얇기 때문에 어디를 때려도 장갑을 관통하는데다, 엔진룸 근방에 맞으면 그나마 움직이던 엔진이 박살나므로 그냥 서버린다. 따라서 전차 승무원의 능력이 출중하면 [[2호 전차]]로도 상대가 가능할 지경이었다. ~~그냥 뭐 재배치가 용이한 방어진지... 치고는 너무 비싸잖아..!~~ || [[파일:attachment/f0075523_4a439ed37baca.jpg|width=100%]] || || 쿠빈카 박물관의 T-35 || 덕분에 독소전 개전 초기에 대부분의 T-35가 박살났고, 그중 살아남은 T-35 전차 한 대는 [[우크라이나]]에서 봉기한 [[파르티잔]](UPA)이 노획해 사용했다. 이런 이유로 인해 T-35 1대가 간신히 살아남아 현재 쿠빈카 박물관에 전시되어 있다. == 매체에서 == http://wiki.warthunder.com/images/e/ea/T-35_Garage.jpg [[워 썬더]]에서 등장. == 둘러보기 == [include(틀:소련의 중전차)] [Include(틀:기갑차량 둘러보기)] [각주] [[분류:다포탑 전차]][[분류:중전차]] 이 문서에서 사용한 틀: 틀:2차 세계대전/소련 기갑차량 (원본 보기) 틀:기갑차량 둘러보기 (원본 보기) 틀:소련의 중전차 (원본 보기) T-35 문서로 돌아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