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요한 아침의 나라

The Land of the Morning Calm

▲ Fr. Norbert Weber, 고요한 아침의 나라에서(1925)[1]

1 개요

19세기 후반, 서구에서 조선(朝鮮)을 소개할 때 사용한 초기 번역어다. 현재도 별칭처럼 남아있다.

2 상세

조선은 1637~1876년 사이, 중국 외는 문호를 닫은 쇄국 정책을 펼쳤다. 다른 동아시아 국가와 비교해봐도, 중국과 일본이 서양과 어느 정도의 교류를 해온 반면 조선은 서양에 별다른 관심을 보이지 않는 점이 도드라졌다. 그로 인해 서구인들은 조선이 어떤 나라이고, 그 국민들은 어떤 사람인지 200년이 넘은 하멜이나 마르티니의 오래된 단서에 기대어 '신비한 동방의 나라'를 상상하는 수밖에 없었다.

미국인 그리피스(W.E. Griffis)는 1882년 《조선, 은자의 나라(Corea, the Hermit Nation)》에서 그런 조선을 서양에 처음 소개하며 오리엔탈리즘이 섞인 서구인의 한국관을 해소하고 한국의 역사와 풍속을 상세히 설명했다. 다만 당시 그리피스는 일본에 거주하며 한 번도 조선을 찾은 적이 없었고, 참고 문헌의 문제로 상당한 한계를 보였다. 그는 초판 서문에서 다음과 같이 언급했다.

My purpose in this work is to give an outline of the history of the Land of Morning Calm-as the natives call their country-from before the Christian era to the present year.

Griffis, W. (1882). Corea, the Hermit Nation. London: W. H. Allen, p.VI. #

그리피스의 언급은 의아함을 자아낸다. 조선의 어원은 한국의 고유어를 한자로 음차한 것으로 추측되지만, 2000년이 넘은 문제로 사실 여부는 명확하지 않다. 글자 뜻 그대로 직해한다 해도 조선의 선(鮮)은 고요할 선(禪)이 아니므로 깨끗하다, 선명하다, 생생하다 등으로 읽는 것이 보통이다. 실제로 그리피스 또한 본문에서는 재차 다음과 같이 언급한다.

The native name of the country is chó-sen (Morning Calm or Fresh Morning), which french writers, spell Tsio-sen, Teo-cen, or Tchao-sian. (강조는 인용자)

Griffis, W. (1882). Corea, the Hermit Nation. London: W. H. Allen, p.3. #

그리피스가 의도적으로 그 뜻을 왜곡, 적어도 취사한 사실을 유추할 수 있는 것이다.[2] 그가 그런 선택을 한 이유는 무엇일까. 그것은 두말할 필요 없이 조선의 은둔국 이미지를 '고요하다'는 문학적 수사로 삽입하기 위함이었다. 이는 문명을 개화하여 태양처럼 떠오른 왕국(Sunrise Kingdom)인 일본에 대비되는 것으로 나타났다.

Corea cannot long remain a hermit nation. The near future will see her open to the world. Commerce and pure Christianity will enter to elevate her people, and the student of science, ethnology, and language will find a tempting field on which shall be solved many a yet obscure problem. The forbidden land of to-day is, in many striking points of comparison, the analogue of Old Japan. While the last of the hermit nations awaits some gallant Perry of the future, we may hope that the same brilliant path of progress on which the Sunrise Kingdom has entered, awaits the Land of Morning Calm.

Griffis, W. (1882). Corea, the Hermit Nation. London: W. H. Allen, p.10. #

천문학자 퍼시벌 로웰(P.L. Lowell)은 1883년 한양에서 약 3개월간 체류하며 자신의 경험을 기록했다.[3] 2년 뒤인 85년에는 기록을 정리하여 《조선, 고요한 아침의 나라(Choson, the Land of the Morning Calm)》를 출간하였다. 그리피스의 이름을 직접적으로 언급하지는 않았지만, "“morning calm” they called it; and it seemed not so much a name as its very essence"라고 말하며 '고요한 아침의 나라'라는 명칭을 처음으로 제목에 쓴 것이다. 그는 이 책에서 백과사전식으로 조선의 풍물을 기록하고 조선 풍경을 담은 사진 25매를 함께 엮어냈다.

정리하면, 한국을 가리키는 "고요한 아침의 나라(The Land of the Morning Calm)"는 일본을 가리키는 "떠오르는 태양의 나라(The Land of the Rising Sun)"에 상응했던 것으로, 서구인들은 조선(朝鮮)의 훈(訓)을 자국어 낱말로 풀어썼던 것이다. 또한 여기에는 조선에 대한 그들의 이미지가 함축되어 있었다. 이와 같은 맥락에서 이지은은 《왜곡된 한국 외로운 한국》에서 한국인이 한국을 ‘고요한 아침의 나라’라고 스스로 부르는 것은 서양인의 눈을 내면화해 자기 자신을 타자화하는 일이라고 지적한 바 있다.

이후에도 영국의 새비지 랜도어가 1895년 《한국 혹은 조선: 고요한 아침의 나라(Corea or Cho-Sen: The Land of the Morning Calm)》라는 제목으로 기행문을 출간하고, 독일의 선교사 노르베르트 베버가 1915년 《고요한 아침의 나라에서(Im Lande der Morgenstille)》라는 이름으로 여행기를 출판하였다. 또한 게이드와 스콧이 1919년 조선을 방문하고 《옛 한국: 고요한 아침의 나라(Old Korea: The Land of Morning Calm)》라는 이름의 회고록을 1946년 출판하는 등 '고요한 아침의 나라'라는 별칭은 한국의 대명사처럼 자리 잡았다.
  1. 1911년 조선에서 선교 활동을 하며 사라지는 민속 문화를 안타깝게 여긴 베버 신부가, 1925년 2차 방문을 하며 찍은 기록영화이다
  2. 이는 석화정에 의해 "originating from a Westerner's imaginative translation"이라 표현되었다
  3. 로웰도 일본에서 더 오래 거주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