곡리혈사

이재일의 소설 ' 쟁선계 ' 에서 일어나는 사건. 혈랑곡주의 전인으로서 한로를 이끌고 강호를 주유하던 석대원은 광비대사에게서 화산을 찾아가 보라는 조언을 듣고 중추절에 맞추어 화산을 찾아가던 도중, 스승 주동민의 생일에 맞춰 매년 쇠락한 화산파를 찾던 제갈휘를 만나 친교를 다지게 된다.

제갈휘와 함께 다니던 석대원은 제갈휘가 비각과 초당과의 연관성을 밝히기 위해 찾은 곡리라는 작은 마을에서 초당의 어린 시절에 관한 여러 정보들을 얻는 데 성공한다. 하지만 비각도 나름 그 점을 예측하고 있었고, 제갈휘를 없앨 필요성을 느꼈었기에 비각의 사주를 받은 정파의 명숙들이 모여 제갈휘를 암습해 죽이려 했다.
백도 명숙들은 제갈휘의 사제이자 화산파의 유일하게 남은 후계자이며 제갈휘의 사부 주동민의 유일한 혈육인 주백상을 제외하고 스물여덟 명이 모였으며, 그 중에 한 지방의 패주 아닌 자 없었으니 제갈휘가 아무리 무양문 내에서 서문숭과 거의 비슷할 정도라고 평가받는 절대고수라 하여도 절체절명의 위기에 처할 수밖에 없었다. 만일 석대원이 그 자리에 없었다면 제갈휘는 이후 쟁선계에서 자취를 감췄을 것이고 초당을 통해 비각은 무양문을 송두리째 흔들어서 도려낼 수 있었을 듯.
처음 얼굴을 복면으로 가리고 제갈휘를 습격해 온 인물들을 제압한 제갈휘는 그를 빽빽하게 포위한 인물들에 둘러싸였고 뒤이어 도착한 모용풍이 순풍이라는 별호에 걸맞게 복면을 쓴 백도 명숙들의 신분을 낱낱이 드러냈는데, 그 중엔 개방의 제자들과 무당파의 무당오검 중 두 명, 그리고 모용풍과 오십 년 넘게 친우로서 지낸 강호오괴의 맏형인 기광 과추운이 있었다.
원래 제갈휘는 그 자리에서 싸우는 대신 몸을 빼어 도망치려 하였으나 갑작스레 등장한 주백상과 그가 외친 외침의 내용에 정신적으로 굉장한 충격을 받았고, 묘사를 보면 정신적으로 심각한 타격을 입은 듯 하나 석대원의 응급조치에 정신을 차린 후 더 이상 피하지 않고 무양문의 입장에 서겠다고 결심하며 자신을 덮쳐 드는 백도 명숙들과의 싸움을 시작하게 된다.
처음엔 한 명씩 일대일 결투를 하였으나 여덟 명 째에 나선 무당오검 중 두 명, 현송과 현수의 무당검진과 그 이후에 이어진 최후의 공격도 제갈휘가 격파해내자 남은 인물들은 일제히 합공을 시작한다. 석대원은 싸움이 시작되기 전에 끼어들려 하였으나 제갈휘가 그의 개입을 거절했었고, 결국 제갈휘는 자신을 합공하는 백도 군웅들과 고검이라는 별호처럼 고독한 싸움을 이어가야 했다.
격렬한 싸움 끝에 곡리에 모인 스물여덟 백도인들의 주장인 기광 과추운이 드디어 나서서 부딪혀갔고, 제갈휘는 마지막 내력을 끌어올려 과추운과 격돌하려 하나 옆구리에서 사부의 보검을 들고 자신을 향해 달려드는 주백상에게 차마 위해를 끼칠 수 없었고 주백상이 내지른 보검을 옆구리에 박음과 동시에 과추운의 온 힘을 끌어모은 일격에 당하고 만다.
거의 죽기 직전의 상태에 몰린 제갈휘를 향해 백도인들이 달려들었으나 그들의 일격은 결국 더 이상 보고만 있지 못한 석대원에 의해 무산되었고, 석대원과 과추운이 이야기하는 사이 과추운은 비각에 대한 단서를 흘리고 만다. 그리고 석대원은 비각의 주구로 움직이는 이들과 싸우기 위해 혈옥수를 끌어올린다.
그 결과, 곡리에 모인 이들은 전멸하였고, 무양문엔 제갈휘의 부음이라는 소식과 함께 그 소식이 전해졌으나...


사실은 훼이크, 제갈휘는 몸 곳곳에 상처를 입었으나 확실하게 살아 있었다. 그가 살아남음으로서 비각이 무양문에 심어놓은 고위 인사인 구비영 초당은 그 꼬리가 밟혀 정체가 들통났고, 결국 서문숭과의 일대일 결투를 통해 장렬하게 사망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