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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년 KBS에서 방영된 사극 '정도전' 에 등장하는 공요군
功遼軍, 말 그대로 요동을 공격할 군대. 서기 1388년(고려 476년, 우왕 14년) 요동을 정벌하기 위해 고려에서 편성한 군대로 최영을 총사령관으로 조민수가 좌군도통사, 이성계가 우군도통사를 맡아 각각 좌군과 우군을 담당하였으며 이지란, 정지, 변안열, 배극렴, 박위 등 북으로는 여진족, 남으로는 왜구들을 때려 잡으며 전장에서 잔뼈가 굵은 내로라 하는 장군들도 대거 공요군에 소속되었다. 그러나 당시 이성계는 사(四)불가론을 내세우며 요동 선제 공격을 반대하였는데, 이 사불가론을 살펴보면 대략 다음과 같았다.
1. 소국(고려)이 대국(명)을 치는 것은 옳은 행동이 아니다.
2. 농번기인 여름에 군대를 일으키는 것은 옳은 행동이 아니다.
3. 지금 대군을 일으켰다가는 왜구에게 틈을 보일 수 있다.
4. 장마철에는 활의 아교가 풀릴 수 있고 병사들 사이에서 전염병이 창궐할 수 있다.
하지만 이와 같은 사불가론을 내세우며 끝까지 요동 공격을 반대하던 이성계의 주장은 받아들여지지 않았고, 결국 공요군은 예정대로 편성되어 출전할 준비를 끝마치게 된다. 마침내 1388년 음력 4월, 지원병과 전투병력을 포함한 총 5만여 명의 병력과 2만여 필이 넘는 군마가 포함된 공요군이 편성되었다. 당시 사정이 여의치 않았던 고려로서는 있는것 없는것 모두 다 끌어모아 조직한 군대였던 만큼 이 공요군에 고려의 국운이 걸려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하지만 자신만만하게 출정한 공요군은 지속적으로 내리는 폭우로 인해 점차 지치고 기세가 떨어졌으며, 군량미 마저 제대로 조달이 되지 않자 영양실조에 걸린 병사들 마저 속출하였다. 설상가상으로 탈영병이 속출하고 역병이 돌 조짐까지 보이는 상황이니 이성계와 장군들은 보다못해서 회군하자고 몇번이나 상소를 올렸다. 하지만 전후 상황을 파악하지 않고 진군만 독촉하는 우왕과 최영의 태도에 크게 빡친 이성계는 마침내 회군을 결정하게 되고(위화도 회군) 이내 말머리를 돌려 개성으로 진격하여 함락시키기에 이른다. 결국 고려의 국운을 걸고 조직한 군대가 고려를 멸망시켜버린 셈.
여담으로 만약 이성계가 위화도에서 회군하지 않고 그대로 공요군을 이끌고 요동으로 진격했으면 어떻게 됐을까 라는 소위 if 떡밥에 대해 논쟁이 꽤 있는데, 당시 명나라는 원(元)의 잔존 세력이었던 북원을 공격하여 1387년 나하추의 항복을 받아내 결정적인 타격을 입히면서 하루가 다르게 강성해지고 있었던 시기였기 때문에 설사 전쟁을 했더라도 이기기 힘들었을 것이라는 게 중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