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군준비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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朝鮮國軍準備隊

조선공산당의 광범위한 조직 계획에 의거하여 장차 편성될 군의 모체가 될 의도에서 결성된 좌익 계열 군사 단체.

1 개요

이 단체는 ① 우리는 현재 가지고 있는 군사적 역량(軍事的力量)을 집결하여 국군 편성의 기초를 준비하고자 함, ② 우리는 군벌적발전(軍閥的發展)을 경계함, ③ 신정부 군대가 편성된 때는 그에 함유함, ④ 우리는 주의적(主義的) 혹은 파벌적 내쟁(派閥的內爭)을 배격함, ⑤ 우리는 자위치안(自衛治安)에 노력함 등을 강령으로 채택하고, 각 부서 및 책임자를 다음과 같이 구성하였다.

총사령 이혁기(李赫基), 부사령 유치옥(兪致玉), 참모장 최영(崔榮), 경리부 이재복(李載馥), 정보부 장도용(張道用), 훈육부 김한영(金漢永), 감찰부 송태익(宋泰翊), 서무부 김철구(金徹龜), 외교부 연정(延禎), 계몽부 이영호(李永鎬), 위생부 차성기(車星基) 이다.

이 단체는 1945년 12월 26일 서울 중앙중학교에서 전국대표자대회를 개최하였다. 이 대회에서 부대기를 수여함과 동시에 김일성(金日成)·김원봉(金元鳳)·지청천(池靑天)·무정(武丁)을 명예회장으로 추대하고 연합군과 내외 투사들에게 메시지를 보낼 것을 결의하였다.

그러나 이 자리에 참석했던 김구(金九)는 군사단체들이 무질서하게 탄생하는 것에 대한 염려를 신중하게 표명하면서 일국일군(一國一軍)의 정신을 강조하였다.

좌익계 군사단체로서의 조선국군준비대가 대한민주청년동맹(약칭 대한민청) 등 우익계의 청년단체들과 충돌하면서 활동하는 동안, 임시정부의 광복군 국내지대를 책임 조직한 오광선(吳光鮮)과 유동열(柳東說)은 1945년 11월 1일 대한국군준비위원회를 조직하였다. 이에 장차 불리한 처지에 처할 것을 예상한 이 단체에서는 오광선측에 통합을 제의하였다.

12월 30일 신탁통치문제를 계기로 쌍방 대표간에 통합문제를 놓고 형식상의 회합이 이루어졌으나, ‘대한(大韓)’이라는 칭호를 사용할 수 없다는 이 단체측의 간계로 회합은 흐지부지되고 말았다.

그 뒤 이 단체는 대한국군준비위원회에 대항하기 위하여 전국군사준비위원회를 조직했지만, 1946년 1월에 미군정의 해산명령으로 해산되었다. 이후 남로당에서는 국방경비대 창설 이후 입대 심사가 허술한점을 이용해 좌익계 인물들을 침투하였다. 한편, 1946년 2월, 국군준비대원 4명이 요인 암살을 위해 우미관 부근에서 밀회하다 종로경찰서에 의해 검거되기도 하였다.

1.1 참고 자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