균역법

均役法

1 개요

조선 영조 때 군역(軍役)의 부담을 줄여주기 위해 실시한 제도.

2 내용

이전부터 논의되어오던 제도이나 실행되지 못하고 있다가 영조 27년인 1751년 9월에 공포되었다. 인정(人丁) 단위로 2필씩 징수하던 군포(軍布)를 1필로 감해주고, 대신 균역청을 설치하여 줄어든 세원을 보충하는 정책을 실행하도록 했다. 왕족이나 권문세가, 지방 관아에서 삥을 뜯던세금을 매겨오던 어전(漁箭)[1], 염분(鹽盆)[2], 곽전(藿田)[3], 태전(苔田)[4]과 선박에 대해 국가에서 세금을 거두게 하였다. 그리고 토지마다 1결당 2말의 결작미를 징수하였는데, 이는 군역의 부담이 전세로 바뀌게 된 셈이다. 일부 상류층을 대상으로는 선무군관이라는 지위를 주어 선무군관포 1필을 납부하게 하였다. 그리고 기존 왕실이 받아 사용하던 어장세, 선박세, 염세 등을 군포 수입으로 보충했다.

군포 1필이 감해졌으나, 군포를 징수하는 과정에서 벌어진 부조리[5]는 그대로였기 때문에 백성들의 불만을 근본적으로 없애지는 못했다. 결국 흥선대원군 시기에 이르면 아예 양반들에게까지 군포를 징수하는 호포제를 실시하게 된다.
  1. 물속에 설치하는 대나무로 된 어망
  2. 소금을 굽는 가마
  3. 미역을 따는 곳
  4. 김을 양식하는 곳
  5. 가령 군포 부담을 못이기고 야반도주한 사람이 발생하면 이웃이나 친척에게 그 사람 몫까지 징수해버리는 경우가 대표적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