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천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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金千興

(1909~2007)

한국의 국악인이자 조선왕조의 마지막 무동.

1 생애

호는 심소(心韶). 1909년 목수의 아들로 태어났고, 정동보통학교를 졸업 후 1922년에 이왕직 아악부 아악생양성소 2기생으로 입소했다. 1923년 순종 황제 오순탄신연에 무동으로 참가하였고, 해금을 전공, 양금을 부전공으로 하여 1926년에 졸업하였다. 그는 1940년까지 이왕직 아악부에 근무하며 아악수, 아악수장을 역임했다.

1940년부터 민간음악인들과 음악활동을 했고, 이화여전의 음악과 강사, 조선권번의 사무원으로도 활동했다. 광복 후 대한국악원 이사 겸 무용부장을 맡았고, 1951년 국립국악원 예술사가 된 후 2007년까지 연주원, 자문위원, 원로사범, 명예종신단원으로 활동했다. 이후 1964년엔 중요 무형문화재 제1호와 제39호로 지정되었으며, 이후 활동을 하다가 2007년 99세의 연세에 타계했다.

2 일화

1923년 이른 봄 그는 이왕직 아악부 2기생 중 무동으로 뽑혀 인정전 앞뜰의 순종 임금 50회 탄신 축하연장에 참석하여 순종을 알현하였다고 한다. 더불어, 1910년 경술국치와 함께 사라졌던 궁중무동춤이 다시 선보인 것도 이 때가 처음이라고 한다. 이때의 상황을 그는 이렇게 증언하였다.

“그 때 순종 황제의 용안은 화사하시면서도 핼쓱했었습니다. 워낙 병약하셨던 터라 시종들의 부액을 받으셨지만 너그러운 미소를 잃지 않고 진연이 끝난 아악부원들에게 가벼운 목례를 보내 주셨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