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녀칠세부동석

1 개요

예기 (禮記)의 내칙(內則)편에서 유래한 말.

아이가 여섯 살이 되면 수와 방향의 이름을 가르쳤고,
일곱 살이 되면 자리를 같이 하지 않고(男女七歲不同席)
여덟 살이 되면 소학에 들어간다.

2 사회적 배경

근본을 따져보면 이는 유교에서 출발한 남녀차별과 양성간의 성적 억압이 목적이라고 할 수 있는 걸로 보이지만, 하지만 위의 목적이 원래의 목표는 아니었다. 유교 자체는 사람이 가진 욕구를 부정하는 것이 목적인 사상체계가 아니다.

공자가 살았던 춘추시대 시기에는 남녀간의 문란한 관계 때문에 여러 문제가 발생한 경우가 많았다. 다시 말하자면 춘추시대 때 중국의 상황으로 공자가 등장할 수 있었던 배경이였다고 생각하면 된다.

예로 들자면 진나라에서 태자의 아내가 되기로 예정된 며느리를 가로챈 후 이 가로챈 아내가 낳은 아들을 태자로 만들기 위해 끝내 첫째 아들인 태자를 죽음에 이르게 한 진헌공의 예를 들 수 있다. 이 과정에서 진나라는 수십 년의 내전을 치러야 했고 진문공에 의해서 비로소 상황이 정리되었다. 즉 이후에 중국에서의 남녀칠세부동석은 중세유럽의 살리카법 같은 왕위계승법과 오스만 제국의 술탄에게 주어졌던 합법적 형제 살인권 등과 같이 더 이상의 왕실내분과 족보혼란을 막기 위한 일종의 안전핀으로 기능했던 것이다.

그리고 시간이 지나가면서 지배층의 윤리였던 것이 일반 서민에게까지 영향을 준 것이였다. 이것이 고려시대에 전해져 조선시대 중기에 우리나라에도 영향을 준 것이다.

이것이 현대 사회로 오게 되면서 조선시대같이 극단적인 경우는 사라졌지만,아직도 유교사회의 가정윤리에 있어서 기성세대들의 중요한 덕목중에 하나로 남아있다. 현대화된 가족 내에서도 남녀차별이 발생하는 이유이기도 한다. 젊은 세대도 아직 이성친구끼리 같이 어울려 놀기보다는 남자끼리나 여자끼리만 모여서 놀려는 성향이 있는 것을 봐선 이런 이념에서 자유롭지 못한 듯 하다.

3 7세의 근거

칠세인 이유는 한의학에서 유래했다는 추측이 있다.
중국의 의학 서적 <황제내경>은 여성의 생리변화를 이렇게 풀고 있다.

여자 나이 일곱 살이 되면 신장의 기운이 왕성해져서
이를 갈고(젖니에서 영구치로 간다는 뜻) 머리털이 자란다.
여자칠세 신기성 치경발장(女子七歲 腎氣盛 齒更髮長)

한의학에서는 기본적으로 신기(腎氣, 신장의 기운)가 성과 관련이 있다고 보았다. '신(腎)'은 서양 의학으로 치자면 뇌하수체의 내분비 기능에 비유할 수 있다. 즉 여자 나이 일곱 살이 되면 뇌하수체에 있는 내분비 중추의 발육이 왕성하게 진행되어 성선(性腺) 자극 호르몬이 분비되기 시작한다고 본것.

4 기타

일곱 살이 되면 자리를 같이 하지 않는다는 말을 '남자와 여자가 일곱 살만 되면 함께 앉지 않는다'는 식으로 풀이하는 사람들이 많다. 요즘은 반대로 '남녀칠세지남철' 이라는 우스개 소리도 있다.

남녀칠세부동석의 석(席)은 원래 돗자리와 같은 자리에 까는 물건을 뜻했다. 나중에는 까는 요를 의미하는 글자로 위에 초(艹)가 있는 석(蓆)이 쓰였지만, 처음에는 석(席)이 그냥 깔개를 가리켰다. 그러므로 남녀칠세부동석이란 말하자면 '일곱 살이 되면 함께 재우지 않는다'는 말을 가리키는 뜻이다. '남녀칠세부동석'이라는 말 다음에 '불공식(不共食)'이라는 말이 나오는 것을 아는 사람도 많지 않다. 이 말은 '함께 앉아서 밥을 먹지 않는다'는 뜻이다. 실제로 옛날에는 남자랑 여자는 밥상도 따로 차려서 먹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