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종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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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前 YTN 뉴스 간판 앵커. YTN 돌발영상을 만든 사람.

2 학창시절

1987년 고려대학교 법학과에 입학하여 1993년 졸업하였다. 학생운동을 외면하진 않았지만 적극적으로 참여하지도 않았다고 한다.

법학과에 진학했지만, 원래부터 법에 관심이 없었다. 그래서 1993년 2월 고대법대를 졸업하고 아버지께 피디가 되겠다고 말씀드렸다고 한다. 그러자 아버지께서 YTN 신입기자 모집 광고문을 들고 와 시험 보라고 하셨는데, 당연히 떨어지겠거니 하고 응시했다가 그만 1994년 9월에 합격해버렸다고 한다.

3 YTN 기자 시절

YTN 제2기 공채 기자가 된 후, YTN 보도국 기동취재팀 사회.경제.국제부 기자, YTN 보도국 프로듀서 등을 지냈다. 시사 고발 프로의 하나로 유명했던 YTN 《돌발영상》은 그의 대표적 작품이다. 돌발영상은 YTN을 그저 그런 평범한 케이블방송에서 색깔있는 보도채널로 시청자에게 각인시키는 촉매제였다. 2003년 12월 돌발영상 제작 공로로 ‘올해의 YTN 대상’을 받았다. 그리고 2004년에는 한국방송기자클럽이 수여한 제35회 한국기자상을 수상하였다.

2008년 8월까지 YTN의 간판 뉴스인 《뉴스창》(오후 7시~8시30분)을 진행했다. 이 당시 YTN의 간판으로 여러 사람들에게 알려졌다.

4 YTN 해직과 그 이후

2008년 8월 YTN 노조 위원장으로 당선되었다. YTN 노조위원장으로서 이명박 정권의 언론장악에 맞서 싸우다가 해직되었다.[1] 심지어는 구속까지 당했지만 구속적부심을 통해 풀려났다.

당시 YTN 사장이었던 구본홍은 해고무효소송을 조정으로 해결하기로 노종면과 구두 합의했었고, 그래서 노종면의 복직은 코 앞에 다가오고 있었다. 그러나 갑자기 청와대가 사장을 배석규로 교체하면서 노종면에 대한 복직약속은 없던 것이 되어버렸다. 그리고 2014년 11월27일 대법원은 그의 해고가 정당하다고 판결하였다.[2] 이로써 그는 정치적인 해법이 아니라면 사실상 YTN에 복귀할 수가 없게 되었다. 한때는 YTN의 간판 앵커였던 사람이 지금은 7년째 YTN의 간판 해직자로 일컬어지고 있는 것이다.

복직싸움을 계속하면서 대안방송의 산파역을 해왔다. 2012년 1월부터 6월까지 대안방송 <뉴스타파>의 초대 앵커를 맡았고, 18대 대선 직후 시민들이 자발적으로 성금을 모아 만든 대안 인터넷방송 미디어협동조합 국민TV[3]에 실무진으로 합류했으며, 2014년 4월 1일부터 12월 23일까지 국민TV의 제작국장을 역임하는 동시에 국민TV의 뉴스 프로그램 '뉴스K'의 앵커를 겸했다.

그러나 2014년 12월 23일 돌연 사의를 표명했고, 2015년 1월 4일 국민TV 이사진은 그의 사표를 수리했다. 친노 성향의 서영석 당시 이사장과 갈등이 있었다는 설이 제기되었으나, 노종면 본인은 이를 부인하였다.

미디어협동조합이 2016년 8월 24일 이사회를 열고 그를 무보수 봉사직인 방송정책TF단장 겸 비상근 보도데스크로 영입했다. 방송정책TF는 이사회 자문기구로 이번에 신설됐다. 1년 반만에 돌아온 셈이다.#
  1. 그와 함께 우장균, 권석재, 정유신, 조승호, 현덕수 등 총 6명의 와이티엔 직원이 해고됐다. 그의 해직을 두고 YTN 기자들은 "노종면은 100명 분의 일을 해내는 사람인데..."하며 안타까워 했다고 한다.
  2. 노종면, 조승호, 현덕수의 해고는 인정하고 우장균, 권석재, 정유신 등 3명의 해고만 무효라고 판결했다.
  3. 초대 이사장은 김성훈 전 농림수산부장관이었고, '나는 꼼수다'의 김용민 PD도 여기에 참여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