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메니코 기를란다요

Domenico Ghirlandaio

1 개요

풀네임은 도메니코 디 톰마소 쿠라도 디 도포 비고르디(Domenico di Tommaso di Currado di Doffo Bigordi)이며부르기도 어려웠을듯... 1449년에 태어나 1494년 1월 14일에 사망했다. 비단장수인 아버지 아래에서 태어나 화가가 되었다. 원래는 금세공사일을 배웠지만 손재주가 좋아 가끔가다 그림도 그리던 것이 정식으로 회화를 배워 화가로 전업하게 된다.

생전에는 피렌체에서 잘 나가는 화가였다. 세련된 화풍, 섬세한 묘사 등이 돋보여 인기도 많았고 시스티나 소성당의 벽화를 맡기도 했다.

2 청출어람 : 제자가 미켈란젤로

사실 생전에는 인기가 많고 그가 그린 그림은 아직도 명화로 남긴 했지만 미술사 전체를 놓고 봤을 때는 그다지 큰 영향을 가지지 못했는데, 그런 그가 미술사에 영원히 이름을 남기게 된 이유는 하나다. 바로 르네상스 시대 3대 예술가라 불리는 미켈란젤로 부오나로티의 스승이기 때문."내가 미켈란젤로를 기를란다요"해서 진짜로 미켈란젤로를 큰 인물로 길러버렸다. 깔깔 정말 재밌다

미켈란젤로가 그에게서 수학한 것은 불과 1년에 불과하긴 했지만 이후 그의 회화를 보면 기를란다요의 영향이 조금은 보이고 있다. 하지만 미켈란젤로의 작품은 인기를 따라간 그의 안이한 스타일과 일단 인물의 역동성에서부터 차이가 나며, 복잡하긴 해도 철저히 해부를 공부하고 사실 그대로의 자연에 기초에 그림을 그린 제자와 비교했을 때 그냥 붓가는 대로 허술하게 그린 티가 난다.

...라고는 하지만, 동시대 다른 화가들과 비교했을 때 기를란다요는 보통 이상 가는 명화가였음에도 불구하고 하필 제자가 제자인지라 매우 불공평한 비교를 당하고 계신다 내가 호랑이 새끼를 키웠어. 미술사가들에게 잘근잘근 씹히는 것은 예사요, 시스티나 소성당에 괴수 제자가 벽화와 천장화를 그려놓았는데 자신도 그 옆에 벽화를 그려놓은지라 일반 사람들도 이 이야기를 듣고 둘을 비교하며 풋, 저건 뭔가요 정도의 반응을 보이며 비웃음을 당한다. 당장 위키피디아에도 흉이 잔뜩 적혀 있다.

비교해 보면 확실히 기를란다요 쪽이 더 못그린 것은 분명한 사실이지만 당대의 예술가 누구를 끌고와도 레오나르도 다 빈치라파엘로가 아닌 이상 미켈란젤로와 비교할 수 있는 사람은 없다. 그러한 점에 있어서는 다들 알지만 하필 두 사람이 사제관계인지라... 기를란다요는 지금까지 500년간 씹혀왔고 앞으로도 씹힐 운명이다. 지못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