度尚
(117 ~ 166)
후한 말의 인물. 자는 박평(博平).
산양 호륙 사람으로 상우현장을 지내다가 회계태수 위의에게 주준을 천거하기도 했으며, 우교령을 지내다가 162년 겨울 10월에 무릉만이 봉기해 강릉을 노략질하자 주목의 천거로 형주자사가 되었다. 164년에 여러 부족의 만이를 모집해 애현 지역의 도적들을 공격해서 대파해 수만 명의 항복을 받아냈다.
계양의 도적인 복양, 반홍 등이 도망쳐 깊은 산 속으로 들어가자 끝까지 쫓아가 수백 리를 가서 그들의 세 주둔지를 파괴하고 귀한 보배를 많이 획득했으며, 복양, 반홍의 무리가 오히려 왕성하자 도상이 그들을 공격하려고 했다가 사졸들이 교만해지고 재물이 풍부하게 되자 싸울 생각이 없어졌다.
도상은 그들을 느슨하게 해주면 싸우려 하지 않을 것이며, 압박하면 반드시 도망할 것이라 생각해 복양과 반홍이 도적 노릇을 한 지 10년이라 공격, 수비가 능하고 우리 군사가 너무 적기에 쉽게 진격할 수 없으니, 여러 곳에서 징발한 병사들이 모두 도착하면 그 때 힘을 합해 공격할 것이라고 선언했다.
군사들에게 명령을 내려 멋대로 사냥해도 좋다고 허락하고 병사들은 기뻐해 높은 사람이건 낮은 사람이건 모두 나갔으며, 도상은 비밀리에 친한 사람들을 잠입시켜 그들의 군영을 불살라 쌓아둔 진귀한 것이 모두 타버렸다. 사냥하러 나갔던 자들이 그 모습을 보고 눈물을 흘리지 않은 자가 없었다.
도상은 한 사람씩 위로하면서 불이 난 것을 자기의 허물이라고 깊이 자책하면서 그 기회를 이용해 복양 등이 가진 재보는 여러 세대 동안 부유하게 살기에 족하다면서 여러 경들이 힘을 합치지 않을 뿐인데, 잃어버린 것은 적고도 적으니 어찌 마음에 걸릴만한 것이 되겠냐고 말했다.
이에 군사들이 분발해서 뛰었고 도상은 말에 먹이를 먹여 이른 아침에 식사하게 하며, 다음날 아침에 지름길로 도적의 주둔지로 향했다. 복양, 반홍 등은 자신들의 거점이 깊고 견고하다고 생각해 다른 방어시설은 설치하지 않아 관리, 병사들이 날카로운 기세를 타고 그들을 격파해 평정했으며, 도상은 출병한 지 3년 만에 수많은 도적들이 모두 평정되자 우향후에 책봉되었다.
165년에 형주의 병사 주개, 계양의 도적 호란 등이 계양을 함락하고 영릉을 공격하자 영릉태수 진구가 이를 막았는데, 도상은 징소되어 경사로 들어왔다가 165년에 중랑장에 임명되어 보병, 기병 2만여 명을 거느리면서 여러 군의 병사들과 함께 힘을 합쳐 이들을 격파하고 호란 등 3천여 명을 죽였다.
형주자사에 임명되었고 호란의 잔당이 창오로 달아났다가 교지자사 장반에게 격파당해 다시 형주의 경계로 돌아왔는데, 도상은 도적을 다 토벌하지 못했다는 죄목을 받을 것을 두려워해 거짓으로 창오의 도적들이 형주의 경계로 들어왔다고 보고했다. 장반이 체포되었다가 풀려나면서 도상을 조사해야 한다고 하자 도상은 소환되었으며, 도상은 그 사실이 드러나 죄를 받게 되었다가 이전에 공이 있어서 용서받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