童恢
생몰년도 미상
후한 말의 인물. 자는 한종(漢宗). 동중옥[1]의 아들.
낭야 고막 사람으로 어릴 때 주군의 관리가 되었으며, 사도 양사가 동회가 청렴하고 공평하게 법을 집행한다고 해서 벽소되었다. 양사가 면직되자 속관은 사표를 내고 떠났지만 동회는 양사의 탄핵에 대해 소송했으며, 양사의 탄핵이 멈추면서 속관이 양사에게 돌아가고 동회는 지팡이를 짚고 떠났으므로 사람들은 아름답게 여겼다.
삼공부에 벽소되었다가 불기령이 되었으며, 민간에서 호랑이에게 해를 당하자 호랑이 2마리를 생포했으며, 동회는 법에 따르면 살인한 자는 죽는다면서 만일 살인한 자라면 마땅히 머리를 숙이고 죄를 자복할 것이고, 스스로 생각해서 아니라면 마땅히 큰소리치며 원통하다고 할 것이라고 했다.
호랑이 한 마리가 머리를 숙이며 눈을 감는 얼굴에 두려워하는 것 같으므로 곧 죽였으며, 한 마리는 동회를 보고 으르렁거리자 놓아주고 이에 백성들이 노래를 지어 칭송했다. 청주에서 동회는 우수한 치적을 올렸으며, 동회는 단양태수에 올랐다가 갑자기 병사했다.- ↑ 童仲玉, 기근이 일어나자 재산으로 이를 구제했으며, 고향 사람 100명이 살아남았고 동중옥은 일찍 죽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