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아벨리 변주곡(베토벤)

1 개요

베토벤이 작곡한 피아노 변주곡의 본좌. 작품번호는 120이며 기본 조성은 C장조이다.

원 제목은 33 Veränderungen über einen Walzer von Diabelli(디아벨리의 왈츠에 의한 33개의 변주곡).

건반악기 변주곡 분야에서 바흐의 골드베르크 변주곡과 쌍벽을 이루는 걸작이며[1] 베토벤이 작곡한 피아노곡 가운데 '하머클라비어 소나타'와 더불어 가장 규모가 큰 작품이다. 한편으로 제대로 된 연주와 감상을 위해 연주자와 청자 모두에게 많은 노력을 요구하는 작품으로 악명이 높다.

백문이 불여일견, 일단 들어보자. 연주자는 그리고리 소콜로프[2]

2 창작 배경

2.1 작품의 탄생과정

'디아벨리 변주곡'은 1819년에 작곡이 시작되어 4년 후인 1823년에 완성되었고[3], 다음 해 6월에 빈의 'Cappi und Diabelli'사에서 출판되었다.

당시 유명한 출판업자이자 아마추어 작곡가였던 안톤 디아벨리[4]는 1819년에 베토벤을 비롯하여 빈에 체류하고 있는 인기 작곡가들에게 자신이 작곡한 왈츠를 주제로 각각 하나의 변주곡을 써달라고 의뢰한다.
이 기획은 베토벤 외에도 50여명 가량의 작곡가(체르니, 훔멜, 크로이처, 리스트, 슈베르트, 루돌프 대공, 슈타들러 신부 등이 포함됨)가 섭외된[5], 한마디로 빈에 거주하는 인기작곡가들을 거의 다 섭외해서 1곡씩의 변주곡을 작곡하게 한 후 이를 정리해서 출판하겠다는, 대단히 거창한 프로젝트였다. 디아벨리가 당시 비인 악보 출판계의 큰 손이었기 때문에 이런 프로젝트가 가능했던 것.

그런데 베토벤은 디아벨리의 왈츠가 마음에 들지 않는다고 불평하고[6][7] 이 기획의 참여를 거절했지만 곧 마음을 바꿔 독자적으로 이 주제를 바탕으로 한 근사한 변주곡을 만들어보기로 하고 디아벨리와 출판계약을 맺는다.[8] 이런 우여곡절 끝에 탄생한 것이 바로 고금의 명작인 디아벨리 변주곡이다.

한편 베토벤의 변주곡과 별도로 디아벨리가 원래 구상했던 '조국 음악가 동맹' 기획은 그대로 추진되어 "애국 예술가 동맹((Väterandischer Künstlerverein)의 변주곡" 이라는 손발이 살짝 오그라드는 제목으로 출판되었다. 베토벤의 디아벨리 변주곡과 달리 이 거창한 기획 변주곡 모음집은 아쉽게도 오늘날 거의 연주되지 않는다. 이유는 들어보면 바로 알겠지만 50곡이나 되는 많은 곡수에 비해 정말 재미가 없다. 세부적인 작곡플랜이 없이 단순히 여러 사람의 변주를 모아놓은 탓에 악상의 통일성도 없고 변주양식도 다들 전형적인 19세기 초 비엔나 고전파 양식이라 엇비슷하게 들린다. 그래서 잘 연주가 되지 않고 설령 연주가 되더라도 50개의 변주가 한꺼번에 연주되는 경우는 정말 없다.[9]

베토벤의 디아벨리 변주곡은 출판 후 안토니 브렌타노(Antonie von Brenntano)[10]에게 헌정되었다. 그리고 초연에 대한 기록은 딱히 없는데 베토벤 생전에 연주가 이루어졌는지는 불명확하다(자료 추가 바랍니다).

2.2 작품의 제목에 대해

베토벤은 원래 이 거대한 변주곡의 제목을 Große Veränderungen über einen bekannten Deutschen Tanz (유명한 독일 춤곡에 의한 거대한 변주곡)으로 명명했다. 하지만 출판시에는 제목을 33 Veränderungen über einen Walzer von Diabelli(디아벨리의 왈츠에 의한 33개의 변주곡)으로 바꾸었고 오늘날에도 이 명칭이 통용되고 있다.

여기서 주목할만한 것은 베토벤이 자신의 변주곡을 통상적인 이탈리아식 용어인 파리아치오넨(Variationen) 대신 페어엔더룽엔(Veränderungen)으로 표현했다는 것이다. 이 페어엔더룽엔은 단순한 의미의 변화보다는 transformation(변성/전환)의 뜻이 강한데, 그가 굳이 이런 표현을 쓴 것은 그만큼 이 작품에서 단순한 주제의 변용보다는 좀더 본질적이고 심도있는 변화를 추구했기 때문으로 보고 있다. 하지만 한국말로 딱히 저 단어를 표현할만한 적절한 용어가 없는 관계로 변질곡? 변성곡? 그냥 통상적으로 변주곡으로 번역한다.

3 곡의 구성 및 분석

각 곡에 대한 상세한 설명은 여기 잘 되어 있으니 이 링크를 참조하자.

이영록의 디아벨리 변주곡 분석

3.1 골드베르크 변주곡과의 비교

고래로 건반악기 변주곡 분야의 쌍벽인 바흐의 골드베르크변주곡과 디아벨리 변주곡을 비교하는 떡밥이 계속 회자되고 있는데, 작품성 측면에서 이 두 작품의 우열을 논하는 것은 무의미하다. 다만 이 두 변주곡은 기본적으로 추구하는 방향이 상당히 다른데, 골드베르크 변주곡이 30개나 되는 변주를 진행하면서도 엄격한 구성미를 갖추고 철저하게 주제에서 유래한 선율/리듬/화성 등의 음악요소의 일부를 공유하려고 했다면 디아벨리 변주곡은 좀더 즉흥곡 성향에 가까운, 보다 자유롭고 변화무쌍한 변주양상을 보이고 있다. 골드베르크가 '엄격 변주'의 정석이라면, 디아벨리 변주곡은 '성격 변주'의 정석으로 이해해도 무방할듯 싶다.

즉, 디아벨리 변주곡은 변주곡 원래의 취지를 벗어나지 않는 한도, 즉 주제의 음악적 요소들(조성, 선율, 리듬 등)을 완전히 버리지 않으면서 최대한 어디까지 주제로부터 벗어날 수 있는지, 주제의 흔적을 남기면서도 어디까지 다른 음악을 만들 수 있는지 등에 대한 극한의 음악적 실험을 추구하고 있는 작품이라고 보면 된다.[11]

4 평가

바흐골드베르크 변주곡과 이 디아벨리 변주곡이 이룩한 성취에 대한 위압감이 너무 커서인지 베토벤이 걸작을 남겼던 다른 분야(교향곡, 현악4중주, 소나타, 협주곡 등등)에서는 이후에도 많은 명작들이 탄생했지만 이 변주곡 분야만큼은 필적할만한 작품이 잘 나오지 않고 있다.[12]

한편 이 디아벨리 변주곡은 명성과 가치에 비해 의외로 연주횟수가 적고 대중적인 인기도 낮은 편인데, 그 가장 큰 이유는 이 작품의 연주나 감상이 너무 어려운 탓이다. 현대에 들어와서도 연주자들은 이 곡의 연주에 상당한 부담을 느끼는데, 큰 규모나 난해한 연주기술의 문제와 별도로 곡의 해석이 대단히 어렵기 때문이다. 일단 연주시간부터 연주자마다 48분~65분으로 편차가 심한 것만 봐도 얼마나 다양한 해석이 존재하는지 알 수 있다.[13] 예를 들어 분명 같은 악보로 연주했는데도 마우리치오 폴리니의 연주와 그리고리 소콜로프의 연주는 거의 다른 음악처럼 들린다. 폴리니나 소콜로프 급의 거장 연주자들의 연주 가운데 어떤 연주가 더 좋고 더 옳은지 논하는 것은 불가능하면서도 무의미한 일이기 때문에 호불호의 판단은 100% 청자의 몫이다.

이 디아벨리 변주곡은 현재까지도 딱히 표준이라고 할만한 연주법이 있는 것도 아니고 초심자들이 참조할만한 권위있는 해석이 존재하는 것도 아닌데다, 변주곡의 특성상 아름다운 선율미나 연주자의 기교를 자랑할만한 화려한 패시지가 넘쳐나는 것도 아니기 때문에 청중들에게 청각적으로 어필하기기도 쉽지 않다.[14] 연주자들이 이 곡의 연주를 꺼리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그래서 청중과 음반 제작자들의 눈에 띄어야 하는 신예 연주자가 이 곡을 레파토리로 삼는 경우는 별로 없으며 주로 거장 반열에 오른 연주자들이 이 난곡에 도전하는 편이다.

단순히 감동이나 아름다움을 느끼기 위해 이 곡을 선택했다면 번지수를 한참 잘못 찾은 것이다. 별다른 사전정보 없이 단지 위대한 명작이라는 세간의 평만 믿고 이 곡을 한참 듣다 보면 괴상망측한 곡이 마구 쏟아져 나오는 통에 머릿속이 혼란과 어리둥절함으로 가득차게 될 것이다. 전문가나 감상자나 좀더 음악적인 이해를 갖추고 분석적인 차원으로 접근해야 그나마 이해할 수 있는 음악이 바로 이 디아벨리 변주곡이다.
  1. 후배인 브람스의 헨델 주제에 의한 25 변주곡과 이 두 곡을 묶어서 3대 변주곡이라고 부르기도 한다.
  2. 이 소콜로프의 연주는 연주시간이 1시간 정도로 표트르 안데르제프스키(Piotr Anderszewski)의 연주와 더불어 철학적이고 명상적인 연주의 대표주자로 거론된다. 반면에 이보다 연주시간이 10분이상 짧은, 속도감과 박진감이 넘치는 연주로 마우리치오 폴리니나 스비아토슬라프 리히테르의 연주가 많이 거론된다.
  3. 물론 4년 내내 작곡되었던 것은 아니고 1819년 초 의뢰받은 직후에 이미 23개의 변주곡을 완성했고 이후 뜸을 들이다 1823년 겨울에 다른 10곡이(1,2,15,23∼26,28,29,31곡)을 완성했다. 이 공백기간 동안 장엄미사를 비롯한 다수의 걸작들이 작곡되었다.
  4. 이 분이 나름 음악에 욕심이 있었던지 자신의 출판사에서 자작곡도 많이 출판했다. 하지만 현재는 정작 자신의 작품은 거의 알려져 있지 않고 단지 이 변주곡 제목의 주인공으로만 유명하다. 안습.ㅜㅜ
  5. 심지어 볼프강 아마데우스 모짜르트의 아들인 프랑크 크사버 모짜르트도 이 명단에 포함되어 있다.
  6. 베토벤은 이 왈츠를 구두방의 쪼가리 가죽(Schusterfleck)이라고 빈정댔다.
  7. 실제로 이 왈츠는 별 특징이 없는 평범한 춤곡이긴 하지만 이 점을 가지고 디아벨리를 비난할 이유는 없다. 애초에 주제 자체가 너무 뛰어나다면 변주가 돋보일 수가 있을까? 실제로 베토벤은 디아벨리의 왈츠보다 훨씬 단순하고 짧은 주제를 가지고도 훌륭한 교향곡이나 변주곡을 작곡했다는 점을 기억하자. 즉 훌륭한 변주곡을 만들기 위해 주제가 굳이 훌륭할 필요는 없으며 오히려 주제가 평범하다는 점이 베토벤의 도전정신을 더 자극했을 수도 있다.
  8. 일설에 의하면 베토벤은 이 프로젝트에 별 관심을 갖지 않았는데 디아벨리가 거액을 제시해서 변주곡 작곡이 성사됐다고 한다. 다만 확실한 근거가 있는 주장은 아니다.
  9. 직접 들어보고 판단하자.
  10. 한동안 베토벤의 불멸의 연인으로 거론되었던 분이다. 이미 브렌타노와 연애가 끝난지 한참 지난 상황에서 이런 대작을 그녀에게 거리낌없이 헌정한 것을 보면 헤어지고 나서도 그녀를 계속 잊지 못했던 것으로 추정된다. 베토벤은 이 분의 딸에게도 피아노 소나타 30번을 헌정했으며 가곡집 '멀리 있는 연인에게(op. 96)'는 이 안토니 브렌타노를 모티브로 한 작품으로 간주되고 있다.
  11. 후술하다시피 이런 점들은 디아벨리 변주곡의 연주와 감상을 매우 어렵게 만드는 요소 중 하나이다. 얼핏 들으면 제 멋대로 씌어진 곡들이 마구잡이로 등장하는 것처럼 느껴지는데, 이 작품에 구축된 구성적 묘미를 제대로 이해하려면 상당한 음악적 내공이 필요하다. 관심이 있다면 앞서 링크해 놓은 디아벨리 변주곡 해석을 자세히 읽어볼 것을 추천한다.
  12. 디아벨리 변주곡 이후 그나마 훌륭한 피아노 변주곡으로 브람스의 '헨델 주제에 의한 변주곡 op .24' 이나 라흐마니노프의 '코렐리 주제에 의한 변주곡' 등이 거론된다. 사실 변주곡 분야에서 유명한 작품이 적은 이유는 낭만주의 시기 이후에 변주곡이라는 장르 자체가 쇠퇴한 측면도 있다.
  13. 디아벨리 변주곡과 사정은 좀 다르지만 연주시간 편차가 심한 것은 골드베르크 변주곡도 마찬가지이다. 사실 장르를 막론하고 규모가 큰 곡들은 해석에 따른 연주시간의 편차가 많이 발생하는 경향이 있는데, 이런 점을 감안하더라도 디아벨리 변주곡은 정말 연주자에 따라 완전히 다른 음악이 창출된다고 말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
  14. 베토벤 피소 전집을 처음으로 완성한 베토벤 해석의 권위자 아루투르 슈나벨이 스페인 공연을 마치고 부인에게 써 보낸 편지내용이 이렇다. "디아벨리 변주곡을 연주할 때면 늘 청중들에게 미안함을 금할 수가 없다오. 연주회장에서 즐거움을 느끼는 사람은 나 뿐인 듯 한데 난 돈까지 받지 않소. 그런데 저들은 돈까지 내고 와서 괴로움을 당하고 있거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