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이즈/리그의 심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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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보: 라이즈
날짜: CLE 10년 9월 24일

관찰

라이즈가 대리석 복도로 성큼성큼 들어선다. 신중한 표정에 강인한 인상의 턱선이 두드러진다. 걸음걸이만큼이나 눈빛 역시 긴박하고 단호한 기색이 묻어난다. 여행자 같은 소박한 옷차림은, 여위었지만 강단 있는 몸을 한치도 빼놓지 않고 뱀처럼 휘감은 정교한 문신과 극명한 대비를 이룬다.


건장한 등에는 두루마리를 하나 걸쳤는데, 다루는 품을 봐서는 아주 소중한 물건인 것 같다. 손에 들고 있는 돋을새김의 주문책이나 허리춤에 달려 있는 양피지 조각들도, 등에 걸친 두루마리만큼 경건하게 다루는 기색은 아니다. 한 쌍의 문이 있는 아치형 입구 아래에 잠시 멈춘 라이즈는 거기 새겨진 글을 읽는다. "진정한 적은 그대 안에 있나니." 방랑 마법사는 손을 뻗어 문을 열고 대담하게 안으로 들어선다.


회고

라이즈는 어둠 속에서 경계를 늦추지 않은 채 침착하게 서서 기다렸다. 공기 중에 떠도는 냄새를 맡아보니, 분명 어떤 존재가 느껴졌다… 분명 유령은 아니었다.

"손님인가?" 어둠 속에서 목소리가 울려 퍼졌다. "이상하네. 난 불청객이라면 질색인데 말야!"

온 몸의 근육이 마치 용수철처럼 팽팽하게 긴장했다. 어둠 속에서 느슨한 드레스를 입은 아름다운 여인의 나긋나긋한 자태가 드러났다. 그런데 목덜미에서부터 손가락 끝까지, 온 몸이 문신으로 뒤덮여 있지 않은가.

"릴리스?" 숨이 턱 막혀서 간신히 말을 뱉어냈다. "어떻게 날 찾아낸 겁니까?"

릴리스는 가냘픈 손을 뻗어 라이즈의 드러난 가슴팍을 기다란 손톱으로 가볍게 쓸어 내렸다.

"라이즈." 교태 어린 목소리였다. "넌 나한테서 숨을 수 없어." 가까이 다가와 라이즈를 끌어안은 그녀는 "비밀이 하나 있는데."라며 뺨에 바싹 다가붙으며 속삭이는가 싶더니, 돌연 "절대 놓아주지 않을 거라고!"라고 소리지르며 도발적으로 라이즈의 귓불을 깨물었다. 라이즈는 몸이 부르르 떨렸다.

가볍게 물린 귓불에 문득 예리한 통증이 느껴졌다. 쿵 하는 소리와 함께 휘청이며 땅에 고꾸라지던 라이즈는 반사적으로 아무 그림도 새겨지지 않은 깨끗한 손을 뻗었다. 이게 내 손이라니, 믿을 수가 없었다. 맨 살을 보지 못한 지도 이미 몇 년이나 흐르지 않았던가.

"침입자!" 릴리스가 거칠게 내뱉았다.

"죄송합니다. 아가씨." 라이즈는 스산한 오두막집의 금방이라도 쓰러질 듯한 현관을 가까스로 디디고 서며 말했다. "너무 지쳐, 오늘 밤 몸을 누일 곳을 찾고 있었습니다. 울부짖는 늪은 어둠이 내린 후엔 있을 데가 못 돼서요."

"내 집에 구역질 나는 나그네를 들일 생각은 없어." 완강하게 팔짱을 끼며 릴리스가 대답했다. 산들바람이 불어와 흐트러진 머리카락이 나부꼈다.

조소하듯, 라이즈는 말했다. "저를 우습게 보지는 마십시오. 전…"

"우습다고?!" 날카로운 목소리로 말을 끊더니, 릴리스가 손가락을 뻗었다. 팔을 따라 새겨진 문양에서 에너지가 새어 나와 둘 사이를 가로질렀다. 처음에는 가벼운 충격이 왔지만, 곧 폐에서 공기가 확 빠져 나오며 라이즈는 정신을 잃고 말았다. 정신이 들고 보니, 진흙탕에 드러누운 채 헐떡거리고 있었다. 온 몸이 얼얼했고 머리부터 발 끝까지 덜덜 떨렸다. 자신을 내려다 보고 있는 릴리스의 석양을 등진 실루엣이 눈에 들어왔다. 문신을 아로새긴 염료를 따라 에너지는 여전히 빠르게 흐르고 있었다.

"내가 예의를 좀 가르쳐 주겠어, 이 부랑자야." 이제 차분해진 목소리로 릴리스가 말을 이었다.

"부탁입니다, 아가씨." 숨을 몰아 쉬며 라이즈는 말했다. "목숨만은 살려 주십시오."

릴리스가 코가 닿을 만큼 아주 가까이 몸을 기울이자, 라이즈의 얼굴 위로 그녀의 머리카락이 쏟아져 내렸다. 라이즈의 가슴을 덮은 셔츠 위로 릴리스의 손톱이 파고들었다. "이 귀여운 것, 왜지? 왜 널 살려두어야 하는데?"

날카롭게 가슴을 파고 드는 고통에 라이즈는 숨을 훅 들이켰다. "한 평생을 당신을 찾아 헤매왔어요." 더듬거리며, 그가 말을 이었다. "그런데 지금 죽게 된다면, 가슴이 찢어질 겁니다."

릴리스가 약간 몸을 들어 앉더니 미소를 지었다. "재밌는데." 대답을 듣자마자, 라이즈는 기운이 쇠진하여 의식을 잃고 말았다.

다시 눈을 떴을 땐 푹신한 매트리스에 대자로 뻗고 엎드린 채였다. 움직여 보려 했지만 단단히 묶여 있어 아무 소용도 없었다. 옆에 있는 베개에는 면도날처럼 날카로운 가시들과 보랏빛 액체가 담긴 그릇이 가지런히 놓여 있었다.

"일찍도 일어나셨군." 릴리스가 구슬로 된 커튼을 들추고 들어오며 교태를 부리듯 중얼거렸다. 그러더니 침대 위로 올라와 라이즈의 등허리를 타고 앉았다. "말해 봐, 방랑자." 준비해 둔 도구에 손을 뻗으며 빈정댔다. "내 어디에 그렇게 반한 건데?" 그러면서 가시 촉을 잉크 그릇 깊숙이 담갔다.

"어렸을 때부터 마법을 공부해 왔습니다." 라이즈는 베개에 얼굴을 파묻고 간신히 말했다. 목 뒤쪽에 찌릿하는 통증이 오자, 자연히 몸이 움찔거렸다.

"꿈틀대지마!" 릴리스가 어깨를 찰싹, 소리 나게 때리며 버럭 소리질렀다. 라이즈는 이를 악물고 참아냈으나 고통은 멈추지 않았다. 피비린내 나는 작업이 이어질수록, 타는 듯한 감각이 전신으로 퍼져나갔다.

"제 스승님께서는 항상 인내하라고, 자기 자신을 제어하라고 가르치셨습니다. 또 제 감정에 굴복해서는 안 된다고도 말씀하셨죠." 릴리스가 이제 바늘을 바꿨다. 벌어진 상처에 피와 잉크가 고이는 것이 느껴졌다. "그 분들은 저를 골칫덩이 취급했고, 급기야는 더 이상 가르쳐주지도 않으셨습니다." 그는 말을 이었다. "그런데 당신은 다른 방법을 아니까요."

"사기꾼들." 릴리스가 내뱉듯 말하더니, 드레스 자락으로 라이즈의 등을 타고 흐르는 피를 훔쳐 냈다. 그녀가 몸을 굽히자 뜨거운 숨결이 목에 느껴졌다. 속삭임이 들려 왔다. "하지만 우리가 더 잘 알잖아, 안 그래? 마법은 에너지야. 열정, 황홀경, 그리고 분노 그 자체지. 그런 것들이 우리의 힘을 이끌어내는 거고." 그녀가 입술을 핥았다. "내가 방법을 알려주지."

이윽고 릴리스는 라이즈를 자유롭게 풀어 주었다. "이제 돌아 누워." 다른 바늘을 손가락 사이에 살짝 쥐고서, 그녀가 쏘아 붙였다. "아직 안 끝났어."

몸이 고통으로 욱신댔지만, 라이즈는 마지못해 그 말에 따랐다. 저 위 서까래에 융단보다도 커다란 양피지로 만든 정교한 두루마리가 걸쳐져 있었다. "저게 뭡니까?" 문득 정신을 차린 라이즈가 질문을 던졌다.

릴리스의 얼굴이 돌연 사색이 되더니, 방이 어둠으로 물들어 갔다. "네가 훔쳐 갔지!" 팔을 마구 흔들며, 악을 쓰는 그녀의 눈에선 눈물이 넘쳐 흐르고 있었다. "어떻게 그럴 수가 있어?! 이 배신자! 배신자!" 릴리스가 여남은 번이나 때린 후에야 라이즈는 그녀를 붙들어 말릴 수가 있었다.

"선택의 여지가 없었습니다!" 라이즈가 울부짖었다. "내 말을 안 듣지 않았습니까! 당신은 우리 모두를 파멸로 몰고 갔을 겁니다!"

비웃음이 담긴 질문이 돌아왔다. "왜 리그에 참가하려 하는 건데, 라이즈?"

라이즈가 놓아주자 릴리스는 뒤로 물러났다. 그는 등에 매달린 두루마리 위치를 바로잡았다. "이걸 안전하게 보관해야만 합니다."

릴리스가 미소 지었다. "속마음을 드러내니 기분이 어떤가?"

이제 단호한 표정으로 돌아온 라이즈가 대답했다. "해야 할 일을 할 뿐입니다."

리그 오브 레전드로 통하는 문이 열리고 빛이 쏟아져 들어오자, 라이즈는 손을 들어 얼굴을 가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