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오나(리그 오브 레전드)/배경


1 장문 배경

“태양처럼 빛나려면, 우선 태양처럼 타올라야 합니다.”

솔라리 성전사 레오나는 천공의 검과 여명의 방패로 타곤 산을 수호한다. 레오나의 몸은 태양의 불길로 가득하며, 피부는 별의 광채로 빛나고, 눈동자는 천체들의 기운으로 불타오른다. 황금 갑주와 어마어마한 고대의 지식으로 무장한 레오나는 어떤 이들에게는 깨우침을, 어떤 이들에게는 죽음을 선사한다.

타곤 산의 드높은 산등성이에서 사는 것은 매우 고생스러운 일이다. 많은 이들이 그런 삶을 자처하고 있다는 사실은, 고귀한 이상과 대의를 위해서라면 어떤 시련도 견뎌낼 수 있는 인간의 저력을 보여주는 증거인 셈이다. 타곤 산은 맨 밑의 기슭조차도 바위투성이라서 오르기가 힘들다. 그런데 그런 산을 터전 삼아 살아가는 이들의 고난이라면 말할 것도 없으리라.

단순히 지형 자체가 위험한 것만이 아니다. 타곤 산의 봉우리는 반짝이는 안개로 둘러싸여 있는데, 그 안개가 산줄기를 타고 내려올 때마다 온갖 이계의 존재들이 뒤따라온다. 그 종류만 해도 상상을 초월한다. 몸에서 빛을 발하는 괴물이 닥치는 대로 살육을 저지르기도 하고, 허공에서 들려오는 음성이 필멸자들의 귀에 무시무시한 비밀을 속삭여 광기로 몰아가기도 한다.

라코어족은 그런 위험을 감수하며 매일같이 인간의 한계에 도전하고 있다. 그들은 산에서 자라는 식물과 귀중한 가축들로 근근이 연명하면서 전투 기술을 연마한다. 멸망의 날에 일어날 전쟁을 대비하기 위해서다. 라코어족은 현재의 세계 이전에 여러 문명이 존재했으며 그 모두가 대재앙으로 멸망했다고 믿는데, 예언자들의 말에 따르면 이번 태양이 파괴되고 나면 더 이상 새로운 태양은 떠오르지 않을 거라고 한다. 그들이 ‘마지막 태양의 부족’이라는 뜻의 ‘라코어’라는 이름으로 불리우는 것도 그 때문이다. 라코어족의 전사들은 태양의 불을 꺼뜨리려 하는 자들과 전투를 치를 만반의 준비를 갖추어야 한다.

라코어족에게 전투란 태양의 불길을 지키기 위한 헌신의 행위이다. 그들은 일말의 자비심도, 망설임도 없이 적을 죽일 수 있어야 한다. 레오나 역시 예외가 아니다. 레오나는 걸음마를 떼는 것과 동시에 싸우는 법을 익혔고, 검과 방패의 사용법을 손쉽게 숙달했다. 그녀는 산봉우리를 휘감은 수수께끼의 안개를 타고 내려오는 온갖 흉폭한 괴물들, 인간이 아닌 존재들, 눈이 없는 창백한 이방인들과 숱하게 맞서 싸웠다. 그러면서 한편으로는 그 안개의 비밀이 궁금하기도 했다. 어린 레오나의 마음 한편에는 그 너머에 도대체 무엇이 있을까 하는 호기심이 늘 맴돌고 있었다.

그러던 어느 날, 레오나는 산비탈에서 헤매던 기묘한 소년과 마주쳤다. 소년은 피부가 황금빛으로 은은하게 빛났고, 머리에는 뿔이 있고, 박쥐 같은 날개를 달고 있었다. 서로 언어가 통하지는 않았지만 소년이 길을 잃고 겁에 질려 있다는 건 분명했다. 레오나가 태어나면서부터 배운 대로라면 즉시 공격해야 마땅했다. 하지만 그토록 무력한 처지에 놓인 존재를 죽이자니 차마 손이 움직여지지 않았다. 결국 레오나는 소년을 산꼭대기로 가는 길까지 바래다 주고, 그가 찬란한 햇빛 속으로 걸어들어가 사라지는 뒷모습을 지켜보았다.

그런데 레오나가 라코어족 마을로 돌아가보니, 그녀는 태양에 대한 임무를 저버린 죄로 고발당한 상태였다. 아까 그녀가 괴물을 안전하게 돌려보내는 모습을 아트레우스라는 이름의 소년이 목격했던 것이다. 아트레우스에게서 그 사실을 전해들은 그의 아버지는 레오나가 부족의 신앙을 거스른 이단자라고 비난했다. 레오나는 아무런 반박도 하지 않았다. 라코어족의 율법에 따르면, 이런 경우에 내려지는 처분은 딱 하나였다. 고발인과 피고발인 사이의 결투. 정오의 태양 아래, 땅에 커다란 구덩이를 파서 만든 격투장 안에서, 레오나는 아트레우스와 승부를 겨뤄야 했다. 둘의 기량은 막상막하였다. 레오나의 전투 기술은 막강했지만, 아트레우스 역시 최고의 전사가 되려는 일념으로 훈련에 매진해왔다. 격투장 주위에 모여든 사람들은 어느 쪽이 이길지 감히 예측할 수 없었다. 레오나는 검과 방패를, 아트레우스는 긴 창을 들고 마주 섰다.

둘은 맹렬히 타오르는 태양 아래에서 치열하게 싸웠다. 둘 다 여러 차례 부상을 입고 피를 흘렸지만 어느 쪽도 치명타를 입히지는 못했다. 그러다가 해가 지평선으로 기울어갈 즈음, 솔라리의 원로 한 명이 황금 갑주를 입은 전사 셋을 데리고 나타나 결투 중지를 요청했다. 솔라리는 태양을 숭배하는 교단으로, 그들이 세운 엄격한 교리는 타곤 산 전체의 사상과 질서에 영향을 미치고 있었다. 그 원로는 자신이 예지몽과 고대의 예언에 이끌려 라코어로 찾아왔다고 말했다. 솔라리에 전해지는 예언에 따르면 타곤 산에서 태양보다 밝게 타오르는 딸이 태어나 하늘에 화합을 가져오리라고 했는데, 레오나가 바로 그 딸이라는 것이었다. 레오나가 율법을 위반한 방식까지도 예언에 나온 내용 그대로 들어맞는다고 했다.

라코어족 예언자들은 결투에 간섭하는 행위는 금지되어 있다고 경고했다. 하지만 그 원로는 레오나가 지금 당장 자기와 함께 가야 한다고, 솔라리의 일원이 되어서 교육을 받아야 한다고 주장했다. 라코어족은 독립적인 집단이었기에 외부의 명령을 따르지는 않았다. 하지만 솔라리의 신성한 신탁을 무작정 무시할 수는 없는 일이었다. 결국 라코어족은 레오나를 새로운 삶으로 보내주기로 결정하고, 부상당한 레오나를 구덩이에서 끌어올려서 솔라리 원로의 손에 맡겼다.

솔라리의 사원은 타곤 산의 동쪽 산허리에서 성채처럼 우뚝 치솟아 있었다. 금빛 줄무늬가 아로새겨진 대리석과 화강암 표면으로 지어진 그 첨탑은 햇빛 속에서 반짝반짝 빛이 났다. 레오나는 이곳에서 생활하면서 솔라리의 교리 일체를 교육받았다. 솔라리는 태양이 모든 생명의 근원이며 다른 빛은 모두 거짓이라고 믿었다. 그들의 신앙과 율법은 매우 엄격했고 타협이라곤 없었다. 하지만 원로가 알려준 예언에 감명 받은 레오나는 엄격한 환경에서도 잘 적응했고 학생으로서도 뛰어난 성과를 거두었다. 그녀는 사막을 헤매던 사람이 물을 마시듯 열성적으로 새로운 신앙 체계를 흡수했다. 또한 솔라리의 전사단과 함께 매일 전투 훈련을 받고, 이미 출중했던 검술 실력을 성스러운 경지까지 끌어올렸다. 그 전사단은 라코어 말로 ‘지평선의 추종자들’이라는 뜻의 ‘라호락’이라는 이름으로 불렸는데, 얼마 뒤 레오나는 라호락 전사단을 통솔하는 자리에까지 올라갔다. 그녀는 타곤 산의 주민들 사이에서 공정하고 헌신적이며 열성적인 태양의 숭배자로 알려지게 되었다.

그러던 어느 날 레오나의 인생이 급변하는 사건이 벌어졌다. 솔라리의 일원인 다이애나라는 이름의 소녀를 사원으로 안내하라는 호출을 받았을 때였다. 다이애나는 솔라리 내에서 악명 높은 문제아로, 그녀가 빚은 말썽 때문에 화가 난 원로들이 종종 한탄하는 것을 레오나도 들은 적이 있었다. 다이애나는 몇 달 전 행방불명되었다가 이제 막 돌아온 참이었다. 머리카락이 순백색이고 이마에 아른아른 빛나는 룬문자가 새겨져 있었으며, 몸에는 기묘한 은빛이 흐르는 갑옷을 차려입고 있었다. 그녀는 솔라리의 근본을 뒤흔들 엄청난 소식을 가져왔다면서, 원로들에게 직접 알려줘야 한다고 고집을 부렸다.

레오나는 무장한 상태로 다이애나를 안내했다. 그 소녀의 태도가 어쩐지 수상쩍다는 직감이 들었기 때문이었다. 아니나 다를까, 원로들 앞에 선 다이애나는 루나리라는 이름을 입에 올렸다. 그건 달을 숭배하는 금단의 고대 종교였다. 다이애나는 솔라리의 교리가 불완전하다며, 자신은 세상을 바라보는 새로운 시선을 깨우쳤다고 이야기했다. 이 산꼭대기 너머에 존재하는 다른 세계에서는 해와 달이 서로 적이 아니고, 그곳에서야 비로소 진실을 알 수 있다는 것이었다. 레오나는 그 이야기를 들으면서 점점 분노가 끓어올랐다. 원로들은 다이애나의 이야기를 신성모독이라 단언하고 그녀가 이단자라고 선언했다. 그 순간 레오나는 자신의 칼로 저 이단자의 목숨을 끝장내야 한다는 것을 알았다.

다이애나는 원로들이 자신의 말을 부정하자 기가 막히다는 듯 울분을 터뜨렸다. 그리고 레오나가 어떻게 반응할 새도 없이, 그 소녀는 앞으로 뛰어오르면서 두 손을 뻗어 눈부신 섬광을 내뿜었다. 활활 타오르는 은빛의 불덩이들이 원로들을 집어삼키더니 눈 깜짝할 사이에 잿더미로 만들어버렸고, 싸늘한 번갯불이 회오리바람처럼 휘몰아쳤다. 레오나는 그 충격파를 맞고 방 밖으로 튕겨나가서 그대로 기절하고 말았다. 나중에 정신을 차려보니 다이애나는 온데간데없었다. 솔라리의 원로 역시 한 명도 남아 있지 않았다.

지도자를 잃은 솔라리의 신도들은 가장 신성한 성소에서 일어난 이 참사를 극복하려고 애썼다. 하지만 레오나는 자신이 해야 할 일이 단 하나뿐이라는 것을 알았다. 교단의 원로들을 살해한 이단자 다이애나를 찾아내서 처단하는 것. 추적은 어렵지 않았다. 레오나의 눈에는 다이애나가 남긴 발자국이 수은처럼 빛나 보였기 때문이었다. 그 발자국은 타곤 산의 능선을 따라 위쪽으로 이어져 있었기에, 레오나는 그걸 뒤쫓아 산을 올라갔다. 그런데 등반을 시작하고 얼마 뒤부터 주변에 기이하고 낯선 풍경이 펼쳐졌다. 마치 이 산에 존재하지도 않았던 길에 들어선 느낌이었다. 게다가 시간 감각이 이상했다. 숨을 한 번 내쉴 때마다 낮과 밤이 지나는 것처럼 느껴졌고, 머리 위에서 해와 달이 순식간에 뜨고 지는 게 보였다. 그래도 레오나는 한 번도 발을 멈추지 않고, 먹지도 마시지도 않았다. 그녀는 분노의 힘으로 자기 자신을 지탱하며 인간의 한계를 뛰어넘었다.

마침내 레오나는 산의 정상에 도착했다. 기진맥진하고 굶주린 그녀의 머릿속에는 오로지 다이애나를 응징해야 한다는 생각뿐이었다. 그런데 산봉우리의 바위 위에 앉아 있던 누군가가 레오나를 맞이했다. 어렸을 때 레오나가 목숨을 구해주었던, 바로 그 황금빛 피부의 소년이었다. 게다가 산봉우리 너머로 펼쳐진 하늘에는 눈부신 빛과 불가사의한 색채가 퍼져 있었는데, 금과 은으로 된 휘황찬란한 건물들의 윤곽이 언뜻 비쳐 보였다. 홈이 새겨진 탑이며 반짝이는 첨탑과 같은 낯익은 건축물들을 본 순간, 레오나는 솔라리의 사원이 저 웅장한 천상의 도시를 모방하여 지어졌다는 것을 알아차릴 수밖에 없었다. 그녀는 황홀경에 빠져 자기도 모르게 무릎을 꿇었다.

그때 황금빛 피부의 소년이 옛 라코어 말로 레오나에게 말을 걸었다. 처음 만났던 날부터 내내 그녀를 기다렸다고, 너무 늦은 게 아니기를 바란다고. 소년은 자신이 신들의 마음과 기적을 보여주겠다며 레오나에게 손을 내밀었다.

레오나는 평생 그 어떤 상황도 회피한 적이 없었다. 이번에도 마찬가지였다. 그녀는 미소 짓는 소년의 손을 잡고서 그를 따라 빛 속으로 걸어들어갔다. 그러자 하늘에서 뜨거운 빛줄기가 내리쳐 레오나를 집어삼켰다. 무시무시한 힘과 잊혀진 고대의 지식이 그녀의 안에 가득히 들어차는 느낌이 들었고, 레오나의 갑옷과 무기가 우주의 불길에 녹아들더니 화려하게 장식된 전쟁용 판금갑옷, 금으로 세공된 햇살의 방패, 새벽빛이 깃든 검으로 변했다.

마침내 레오나가 산에서 내려왔을 때는 완전히 다른 사람이 되어 있었다. 겉모습은 예전과 똑같았고, 예전 기억도 온전히 남아 있었고, 자기 스스로 생각하고 움직일 수 있었지만, 무언가 거대한 존재의 일부분이 그녀의 몸을 그릇으로 선택하고 광대한 권능과 지식을 부여한 것이다.[1] 레오나는 그 지식이 자신의 영혼을 무겁게 내리누르는 것을 느꼈다. 이 깨달음을 공유할 상대는 단 한 명뿐이었다.

레오나는 반드시 다이애나를 찾아야 했다.

2 빛의 인도자

습격은 동 트기 전에 개시됐다. 그들은 재빨리 걸음을 옮겨 산기슭의 촌락에 들어섰다. 인원은 총 50명이었다. 늑대처럼 늘씬한 몸에는 저마다 털가죽으로 덮인 쇠사슬 갑옷을 입었고, 빛이 반사되지 않게끔 재를 발라놓은 도끼를 들었다. 그들은 오랜 세월 생과 사를 함께하며 싸워온 동지들이었다. 한 몸처럼 일사분란하게 움직이는 것도 당연했다. 그들의 선두에서는 우그러진 미늘 갑옷을 입고 어깨에 묵직한 대검을 걸멘 남자가 앞장서고 있었다. 용머리 모양의 투구를 쓴 그의 거친 얼굴은 수염으로 뒤덮였고 구릿빛으로 그을려 있었다. 평생 전장에서 뙤약볕을 견뎌온 자의 얼굴이었다.

지금까지 다른 촌락들은 쉽게 정복했다. 전투에 이골이 난 그들에게는 식은 죽 먹기였다. 약탈할 만한 물건은 많지 않았지만, 이런 이상한 땅에서는 그나마도 가질 수 있는 게 다행이었다. 이번 마을에서도 전투 자체는 걱정하지 않았다. 뭐라도 건질 게 있길 바랄 뿐이었다.

그런데 별안간 저 앞에서 눈부신 햇빛이 비쳤다.

말도 안 되는 일이었다. 동이 트려면 아직 한 시간은 더 남았는데.

대장은 거친 손을 들어올려 부하들에게 멈추라는 신호를 보냈다. 길 저편에 누군가가 혼자 서 있었다. 여자였다. 대장은 드디어 약탈할 만한 가치가 있는 것을 발견했구나 싶어 빙긋 미소를 지었다. 그런데 가까이 다가가려는 순간 그녀의 몸에서 웬 불길이 화르륵 타오르는 것을 보고 그는 더 이상 웃을 수 없었다. 이제 보니 여자는 화려한 판금갑옷을 차려입었고, 적갈색 머리에 금빛 관을 썼고, 햇살 같은 빛이 번뜩이는 육중한 방패와 장검을 들고 있었다. 그뿐만이 아니었다. 어딘가에서 금색 갑옷과 긴 창으로 무장한 전사들이 나타나더니 여자의 양편에 나란히 늘어섰다. 여자가 입을 열었다.

“이 땅은 내가 보호하는 곳이다.”

레오나는 검을 들어올렸다. 그러자 라호락의 열두 전사들이 그녀를 중심에 두고 쐐기 형태로 정렬했다. 왼편의 여섯 명, 오른편의 여섯 명이 일제히 방패를 들어올려 동시에 땅을 내리찍었고, 레오나도 몸을 약간 틀면서 그들의 대형에서 정확히 꼭짓점 부분에 방패를 내리꽂았다. 그리고 방패의 원형 부분 밑에 새겨진 홈에 검날을 밀어넣었다.

칼자루를 움켜쥐자, 막강한 힘이 그녀에게 파도처럼 밀려들었다. 밖으로 나가고 싶어 꿈틀거리는 불길의 열기가 고스란히 느껴졌다. 레오나는 불길이 자신의 몸을 타고 편안하게 흐르도록 조절했다. 그녀의 눈동자 속에서 불씨가 깜빡이고, 가슴 속에서 심장이 고동쳤다. 산꼭대기에서 그녀와 조우했던 신령한 존재가 저 남자들을 정화의 불길로 태우려 벼르고 있었다.

용머리 투구를 쓴 남자가 대장이다. 저자만 쓰러뜨리면 나머지는 모두 쭉정이가 될 것이다. 마음 같아서는 불의 힘을 자유자재로 풀어놓고 싶었다. 저 남자들이 뼈와 재만 남도록 활활 태워버리고 싶었다. 저자들은 타곤 산의 거주민들을 무더기로 학살했다. 뿐만 아니라 신성한 태양석을 넘어뜨리고, 아무데나 배설을 하고 샘물을 오염시키면서, 솔라리의 성소들을 멋대로 더럽혔다.

용머리 투구를 쓴 대장이 껄껄 웃더니 어깨에 짊어졌던 대검을 휘둘렀다. 그러자 부하들이 그에게서 적당히 떨어졌다. 저렇게 커다란 무기를 가지고 제대로 싸우려면 넓은 공간을 확보해야 할 터였다. 남자가 짐승이 짖어대는 듯 걸걸한 음성으로 무어라 고함을 치자, 부하들이 함성을 질러 화답했다.

침략자들이 일제히 돌격해왔다. 왁왁대며 소리치는 놈들의 입에서 튀어나온 침이 땋아내린 턱수염에 덕지덕지 묻었다. 레오나는 후끈한 숨결을 내쉬고 불길이 핏줄을 타고 돌도록 순환시켰다. 그녀의 안에 있는 고대의 존재와 더욱 완전히 융합되도록, 인간을 초월한 감각과 통찰력에 눈뜨도록...

시간의 속도가 느려졌다. 레오나는 적의 심장이 뛰면서 발산하는 열기가 눈에 보였고, 그들의 혈관을 울리는 맥박 소리가 천둥처럼 요란하게 들려왔다. 전투에 대한 열망이 붉은 화염처럼 그들의 몸을 사로잡고 일렁이는 것까지도 훤히 보였다.

대장이 펄쩍 뛰어올라 레오나의 방패에 검을 내리쳤다. 그 순간 돌로 된 거인의 주먹에 강타당한 듯한 충격과 함께 방패 표면이 휘어졌고, 레오나는 한 걸음 뒤로 밀려났다. 그와 동시에 라호락 전사들도 방패로 만든 장벽이 흐트러지지 않게끔 레오나와 함께 뒤로 물러났다. 한편 레오나의 방패에서 발산된 뜨거운 섬광에 대장의 갑옷을 덮은 털가죽이 타들어갔다. 그는 깜짝 놀라 눈을 휘둥그레 뜨면서도, 거대한 검을 치켜올리고 다시금 공격 태세를 갖췄다.

“공격하라!” 나머지 침략자들이 방어선을 덮친 것과 동시에 레오나는 소리쳤고, 그 즉시 라호락 전사들이 금빛 창을 내뻗었다. 강철 창날이 번뜩이자 적들이 그대로 땅바닥에 나동그라졌다. 그 뒷줄의 적들은 자기 동료들의 몸뚱이를 밟고 넘으며 돌격해왔다.

적들의 두 번째 공격에 방패의 장벽이 흔들렸다. 하지만 깨어지지는 않았다. 놈들은 도끼로 방패를 힘껏 후려치고 밀어젖히면서 힘줄이 불거지도록 용을 썼다. 그들의 목구멍에서 그르렁거리는 신음이 새어나왔다. 레오나는 얼굴에 기다란 흉터가 있는 적 한 명에게 검을 휘둘렀다. 그가 외마디 비명과 함께 널브러진 즉시, 그녀는 방패를 휘둘러 그 옆의 남자를 쓰러뜨렸다.

그런데 라호락 전사들의 전열이 흐트러졌다. 레오나의 바로 옆에 있던 전사가 용머리 투구를 쓴 대장에게 공격당한 순간이었다. 그 거대한 검에 직격당한 방패가 쪼개져버렸고, 라호락 전사도 숨이 끊어졌다.

레오나는 대장 녀석이 세 번째 공격을 할 기회를 주지 않았다. 그녀는 대장을 향해 금빛 검을 내질렀다. 그러자 룬 문자가 새겨진 검날에서 휘황하게 빛나는 잔영이 나타나면서 화염이 뿜어져 나왔다. 삽시간에 불길이 놈의 몸을 감싸 갑옷을 녹여버렸고, 대장은 고통에 휩싸여 찢어지는 비명을 질렀다. 한편 레오나의 안에 깃든 우주의 기운은 그가 고통스러워하는 모습을 보고 환희에 찼다.

대장은 화상에도 불구하고 숨이 붙은 채 끝없이 비명을 질러댔다. 그가 비틀비틀 뒷걸음질 치다가 마침내 주저앉자, 주위에서 멍하니 지켜보던 부하들은 주춤거리다가 흩어지기 시작했다. 자기네 대장이 비참하게 당한 꼴을 보자 그들의 사기는 눈에 띄게 꺾였다.

“돌격!” 레오나의 명령에 라호락 전사들이 공격을 개시했다. 그들은 강력한 팔로 창을 휘둘러 무자비하고도 효율적으로 적을 해치워나갔다. 찌르기, 비틀기, 빼내기. 세 가지의 동작을 규칙적으로 반복하는 그들의 움직임은 마치 탈곡 기계처럼 질서정연하고도 가차없었다. 붉게 물든 창날들 앞에서 침략자들은 이제 완연히 공포에 질렸다. 그들은 살아남기에 급급해 뿔뿔이 도망쳤다.

그들이 타곤 산에 왜, 어떻게 오게 되었는지는 알 수 없었다. 이 산의 성소에서 증언을 하러 온 것은 아닐 테고, 등반을 하러 온 것은 더더욱 아니다. 저들은 순례자가 아니라 전사들이었다. 살려서 보내줬다가는 또 한 패로 뭉쳐서 살상을 저지르고 다닐 것이다.

레오나는 그걸 용납할 수 없었다. 그래서 검을 땅에 내리꽂고 자신의 내면 깊숙한 곳으로 정신을 집중했다. 이 산 너머에 존재하는 숭고한 힘을 한 곳으로 끌어모으면서 손을 하늘로 들어올렸다. 그와 동시에 가장 높은 산봉우리 위로 해가 떠올랐다.

레오나는 한쪽 무릎을 꿇고 주먹을 땅에 내리쳤다.
  1. 이는 판테온과 대비되는 문장이다. 판테온은 전쟁의 현신이 아트레우스라는 전사를 선택해 그 육신을 통해 강림했고 그와 동시에 아트레우스의 인격은 사라졌지만, 레오나는 인격이 사라지지 않았기 때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