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름 | Rodney William Marsh |
생년월일 | 1944년 10월 11일 |
국적 | 잉글랜드 |
출신지 | 하트포드셔 주 햇필드 |
포지션 | 포워드 |
유소년 경력 | 웨스트햄 유나이티드 FC (1959~1960) 풀럼 FC (1960~1962) |
소속팀 | 풀럼 FC (1962~1966/1976~1977(임대)) 퀸즈 파크 레인저스 FC (1966~1972) 맨체스터 시티 FC (1972~1976) 코크 하이버니언 FC (1976) 탬파베이 로우디스(NASL) (1976~1979) 탬파베이 로우디스(AISA[1]) (1986~1987) |
국가대표 경력 | 9경기 / 1골 |
감독 경력 | 뉴욕 유나이티드(ASL) (1980) 캐롤라이나 라이틴(ASL) (1981~1983) 탬파베이 로우디스[2] (1984~1986) |
1 개요
잉글랜드의 전 축구선수이자 축구감독.
2 커리어
2.1 선수 시절
2.1.1 데뷔 ~ QPR 시절
1943년에 하트포드셔 주 햇필드에서 조선소 일꾼인 아버지 윌리엄의 아들로 태어나 어린 시절을 동런던에서 보냈다. 그는 어린 시절에 아버지의 폭력으로 불우한 생활을 지내다가 학창 시절에 축구를 시작하여 훗날 첼시의 레전드가 되는 론 해리스와 뛰었고, 이후 웨스트 햄의 스카우터인 월리 세인트 피어에 의해 1959년에 웨스트 햄 유소년 팀에서 1년을 뛰다가 이후 풀럼의 유소년 팀에서 2년을 뛴 뒤에 풀럼과 계약을 맺어 프로 무대에 데뷔했다.
풀럼에서 활동하는 동안 잦은 부상으로 3년 내내 63경기밖에 못 뛰다가 1965/66 시즌 막판인 1966년 3월에 당시 3부 리그 팀인 QPR의 감독 알렉 스토크에 의해 15,000파운드의 이적료를 받고 QPR에 입단했으나, 영입할 당시의 큰 기대와는 달리 피터버러 유나이티드와의 데뷔전에서 무득점에 경고 1번만 받았다고 한다.
그러나 일주일 뒤에 홈인 로프터스 로드에서의 첫 경기에서는 달랐는데, 밀월 FC와의 경기 시작 3분만에 첫 골을 터뜨려 6-1로 승리를 움켜잡았다. 이렇게 이적 18경기만에 8골을 터뜨리면서 마시는 팬들에게 사랑받는 스타로 급부상했다.
다음 시즌인 1966/67 시즌에 마시의 득점력은 상승세를 더해갔는데, 당시 팀이 넣은 리그 108골 중에 마시는 무려 30골을 터뜨리며 2부 리그 승격의 일등공신이 되었고, 이때의 리그컵에서 팀을 우승으로 이끌면서 3부 리그 역사상 최초로 리그컵 우승이라는 타이틀을 거머쥐게 되었다. 이 시즌 내내 마시가 기록한 44골은 현재도 팀 단일 시즌 사상 최다 득점 기록으로 남아 있다.
1967/68 시즌에 마시는 부상으로 15경기밖에 뛰지 못했지만 14골을 터뜨리면서 팀을 1부리그로 승격시키는 데 결정적인 공헌을 세웠으나 1부 리그 첫 시즌인 1968/69 시즌에 그는 4골밖에 넣지 못하는 안습한 득점력을 내보이면서 팀은 2부 리그로 도로 굴러떨어졌다. 그러나 이후 2년에 걸쳐 팀은 마시의 44골 득점력에 힘입어 2부 리그의 강호로 올라섰다.
이런 활약에 힘입어 그는 1971년 11월에 잉글랜드 국대에 선발되어 스위스와의 경기에 출전해 첫 대표팀 승선의 기쁨을 맛보기도 했다. 이렇게 승승장구한 마시의 활약에 대해 빅클럽들은 그를 내버려 두지 않았는데, 이런 빅클럽 중 맨체스터 시티가 거액 20만 파운드를 내밀면서 마시의 영입에 나서자 이를 수락한 마시는 맨시티로 건너갔다.
6년 동안 QPR에서의 통산 기록은 총 211 경기, 통산 득점 기록은 106골이다.
2.1.2 이후
그러나 맨시티 이적 초기에는 순탄치 않았는데, 이적 초기에는 별다른 활약을 보여주지 못하여 팀은 1972/73 시즌에 우승을 못 하게 되자 맨시티 팬들은 그를 향해 야유를 퍼부었다. 그러나 귀신같이 적응을 마친 마시는 또다시 득점포를 가동시켜 QPR 때처럼 팬들의 마음을 사로잡기도 했다.
맨시티에서의 4년동안의 여정 이후 아일랜드의 코크 하이버니언을 거쳐 미국으로 건너가 탬파베이 로우디스에서 새로운 도전에 나섰고, 1976/77 시즌에 풀럼에서의 임대 기간 동안 백전노장 조지 베스트와 호흡을 맞추기도 했다.
1979년에 현역에서의 은퇴 이후 1986년까지 3팀을 거치며 감독 생활을 하다가 1986년에 선수 겸 감독으로써 실내축구팀 탬파베이 로우디스에서 뛰다가 44세 때인 1987년에 완전히 은퇴했다.
2.2 은퇴 이후
은퇴 뒤에 1990년대 초반까지 조지 베스트와 방송 활동 등지에 나간 것을 시작으로 스카이 스포츠의 해설위원으로 활동하는 등 방송 활동을 활발히 지속해왔고, 1994년에는 QPR의 사장으로 잠깐 재직한 바 있다.
2007년에 영국 ITV의 리얼리티 서바이벌 예능 프로 <I'm a Celebrity...Get Me Out of Here!>에 출연한 바 있었고, 2010년에는 80년대 팝스타인 셰릴 딜런과 <Celebrity Coach Trip> 등의 예능에 출연한 바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