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버라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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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iberace
1919년 5월 16일 ~ 1987년 2월 4일

1 개요

1919년에 위스콘신 주 밀워키에서 이탈리아 출신 이민자인 아버지와 폴란드계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난 미국의 피아니스트, 가수, 배우이다. 본명은 브와지오 발렌티노 리버라치(Wladziu alentino Liberace)이다. 미국 내에서는 화려한 의상과 연출 등의 쇼맨십으로 한 시대를 풍미했던 피아니스트로 유명하다.

2 생애

리버라치는 어린 시절부터 클래식 피아노 레슨을 받았으나 1930년 이후 클래식 피아니스트의 길을 포기하고 대중 음악 분야로 돌아섰다. 그리고 클럽 등지에서 클래식과 대중음악을 융합한 연주를 하여 입소문을 타고 유명해진 그는 1950년대에 TV 쇼에 출연하였고, 그 이후 미국 최고의 스타 중 한 명이 되었다. 백악관에서도 초청장이 날아와 그는 당시의 미국 대통령이었던 해리 트루먼 대통령 앞에서 자신의 연주실력을 뽐내었다.

그 후 영국의 방송에서도 출연하면서 세계적 스타의 반열에 오르기 시작하였다. 이 떄부터 그는 점점 더 화려하고 개성적인 의상과 연출을 고집하기 시작하였다. 특히 하얀 피아노 위에 고풍스러운 촛대를 올리는 것은 이미 그의 상징 중 하나로 굳어졌다. 이런 점에 의해서 화려함에만 집착한다고 정통 클래식 음악 종사자들은 리버라치를 좋게 보지 않았으나 대중들의 생각은 달랐다. 엘비스 프레슬리와 같은 화려한 의상과 연출 등이 각광을 받았던 당시의 코드에 부합했던 리버라치는 화려함을 고집했어도 여전히 인기가 많았다.

한편 70년대에 언론이 그를 동성애자라고 보도했는데 리버라치는 자신이 동성애자라는 것을 절대적으로 부인했다. 그리고 그런 보도를 한 언론사들을 고소하였다. 그러나 1982년에 전 운전기사이자 연인이었던 스콧 토슨이 리버라치에게 과거 연인 시절의 교제에 대한 위자료청구소송을 제기하여 결국 동성애자라는 것이 밝혀지고야 말았다.

말년에도 도저히 그의 인기는 사그러들 줄 몰랐다. SNL이나 오프라 윈프리 쇼에도 출연했으며 1985년에 개최된 레슬매니아 1에도 깜짝 출연하는 등 여전히 메인 이벤터 역할을 하고 있었다. 그러나 이 때쯤해서 그는 에이즈에 걸리고 말았고 계속 앓다가 1987년 2월 4일에 별세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