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오쩌둥 암살 음모 사건

1 개요

1950년 중국공산당의 조작 사건.

1950년 중국 정부는 10월 1일 국경절 행사에 천안문 광장에 마오쩌둥과 지도자들을 암살하려고 시도했다면서 7명을 체포했다고 발표했다. 체포된 사람들 중에는 일본인 야마구치 류이치와 이탈리아인 안토니오 리버가 포함되어 있었다. 야마구치 류이치는 1938년에 중국으로 건너와 중화민국의 국제문제 연구소에 근무하다가 이후 그만두고 당시에는 중국과 일본사이의 무역일을 하고 있었다고 하며 안토니오 리버는 중화민국 정부의 항공대 교관을 지냈고 한때 일본 육군 특무부대의 포섭으로 스파이 활동을 하다가 전쟁 이후에는 무역업에 종사했다고 한다.

중국정부는 야마구치 류이치와 안토니오 리버가 박격포를 이용해 국경절 행사에 참여하는 마오쩌둥과 지도자들을 포격하여 암살하려 했다고 주장했다. 이들은 군사재판을 거쳐 이듬해인 1951년 8월 17일에 처형되었다. 또한 나머지 사람들은 무기징역등을 선고받았는데 이들중에는 로마 교황청 사절단 소속의 사제도 포함되어 있었다. 이들은 후에 국외 추방으로 마무리되었다.

야마구치의 부인은 일본으로 귀국한후 이 사건이 중국의 조작이라고 주장했지만 중국과는 외교관계가 단절된 상황이라 달리 어찌해볼 방법이 없었다.

1.1 의문점

  • 야마구치 부인에 의하면 야마구치와 리버가 마오쩌둥을 암살하기 위해 사용하려고 했다는 박격포는 구식이었고 쓸수 없는 고물에 불과했다. 본래 이 박격포는 리버가 1930년에 중화민국에 팔려던 무기의 시제품이었지만 제대로 작동하지 않았다고 한다. 게다가 사건 당시에 박격포는 중요한 부품 몇개가 빠져있었는데 이 부품들은 로마 교황청 사절단 숙소의 창고안에서 발견되었다고 한다.
  • 중국정부가 야마구치의 집에서 압수한 자료중에는 천안문쪽을 향하여 포물선이 그려진 스케치가 있었다고 한다. 중국정부는 이것을 박격포의 궤도를 그린것이라고 발표했으나 야마구치 부인에 의하면 그 포물선은 베이징의 소방서가 야마구치를 통해 구입한 일본제 소방차가 방수 펌프를 가동할때 나오는 물줄기의 흐름을 그린것이라고 주장했고 이것은 나중에 사실로 밝혀졌다.
  • 중국정부는 야마구치와 리버를 사주한 미국 군인이 있었다고 주장했는데 그는 바로 딕시 사절단장을 지낸 데이비드 베럿 대령으로 이미 1950년 2월에 베이징을 떠난 상태였다. 또한 야마구치와 리버는 서로 옆집에 살던 사이라 친분은 있었지만 1950년 5월 이후로는 서로 왕래가 없었다고 한다. 야마구치 부인은 이들이 암살 음모를 꾸몄다면 5월 이후로 왜 왕래가 없었겠냐고 주장했다.
  • 상식적으로 생각해 보았을때 국경절 행사에 천안문 광장에는 수많은 인파가 몰릴것이 분명한데 그런 상황에서 눈에 띄는 박격포로 천안문 루상에 오른 마오쩌둥을 노려서 암살한다는게 가능한건지는 의문이 있다.
  • 결정적으로 중화인민공화국은 자신들이 배후로 지목한 데이비드 베럿을 20년 후에 저우언라이 명의로 축전까지 보내며 초청하는 등 사실상 자신들의 주장이 구라임을 입증해버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