范丹
(112 ~ 185)
진류 외황현 사람으로 범염(范冉)이라고도 한다.
부융으로부터 추천을 받아 공조를 지낸 적이 있고 내무의 장을 지낸 적도 있으며, 젊을 때 위종좌사가 되어 격서 등을 가지고 독우를 만나는 심부름을 했기 때문에 이를 부끄러워 했고 진류의 대택[1]에 이르자 자기가 타던 말을 죽이고 벼슬아치의 두건을 벗어 강도를 만난 것처럼 꾸미고 도망갔다.
어떤 귀신이 그의 집에 내려와서 자기를 사운이라면서 강도에게 죽임을 당했으니 빨리 내 옷을 진류군의 대택으로부터 건저달라고 하자 집안 사람들이 두건을 건졌다고 하며, 범단은 남군으로 갔다가 장안으로 가서 마융의 문하에서 배웠다. 13년 후에 집에 돌아왔지만 지식과 덕행이 뛰어났던 범단을 알아보지 못했다고 하며, 진류군 사람들은 그의 지식과 덕행을 높게 여겼고 태위부에서 일하다가 당고의 금이 일어나자 은퇴했다.
은퇴한 후에는 점을 치면서 객사에 빌붙거나 나무 아래에서 노숙하거나 끼니를 걸러 평생을 가난하지만 청렴하게 살았으며, 그는 세상 사람들에게 정절선생(貞節先生)이라고 불렸다.
세설신어에서는 당고의 금이 일어나자 처자식을 태운 녹거를 밀고 다니면서 추수하고 남은 이삭 따위를 주워 끼니를 때웠는데, 이웃 사람인 윤대가 그의 아들에게 보리 1곡을 주면서 아버지에게 알리지 말라고 했다. 이 사실을 나중에 안 범단은 아들이 주운 5곡과 그 1곡을 윤대에게 돌려주면서 보리가 이미 뒤섞였기에 받지 않겠다고 전하라고 했다.
- ↑ 大澤, 큰 연못 또는 지명을 말하는 것으로 보이지만 어느 쪽인지는 불명으로 대택은 안휘성 숙현 부근을 옛날에 그렇게 불렀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