師曠
생몰년도 미상
춘추시대 진(晉)나라의 인물.
진영공 때 태어났고 음악을 주관하는 관직을 지내 음률을 분간하는 것에 능했으며, 병서 만 편을 지었고 진평공 때 음양에 관한 학문으로 세상에 이름을 날렸다. 연기를 쐰 것으로 인해 장님이 되자 온갖 근심을 잊고 천문, 음률에 정신을 쏟았다.
기원전 559년에 진도공이 위(衛)나라에서 군주를 쫓아낸 일에 대해 묻자 사광은 군주가 백성들을 잘해야 된다는 요지의 의견을 이야기했으며, 기원전 555년에 초나라가 정나라를 공격하자 초나라의 군사가 실패할 것을 예측했다. 기원전 547년에는 진나라 공실이 매우 미약해질 것을 예측했으며, 기원전 543년에는 어느 노인이 자신이 태어난 해로부터 얼마나 지났는 지는 알지만 나이를 알지 못하자 이에 대해 알려주었다.
진평공 앞에서 사광은 청상을 연주했고 진평공은 청상이 가장 슬픈 곡조라고 하자 사광은 청치가 더 슬프다고 했는데, 진평공이 청치를 연주하라고 하자 사광은 군주의 덕이 박하면 들을 만하지 못하고 덕이 박함에도 듣는다면 두려운 재앙이 닥친다고 했다. 그러나 진평공이 연주하라고 해서 사광은 청치를 연주했으며, 또 진평공이 청각에 대해서 듣고서는 청각을 연주하게 하자 사광이 청각을 연주하면 큰 화를 당할 수도 있다고 경고했다.
그러나 진평공은 자신이 늙었고 좋아하는 것이 음악이라 듣고 싶다고 하자 사광은 청치를 연주했다.
청각을 연주한 후에는 구름이 서북쪽에 일어나서 다시 연주하자 큰 바람이 이르고 큰 비가 내렸으며, 또 휘장이 찢기고 제기가 깨지면서 행랑의 기와가 떨어졌다. 앉아있던 사람들은 모두 흩어져 도망가고 진평공은 두려워서 행랑에 엎드렸으며, 결국 진나라에서는 큰 가뭄이 들어 3년 동안 땅에서 아무 것도 나지 않고 진평공은 병이 들게 되었다.
위영공이 사연과 함께 진나라로 와서 술자리를 벌였는데, 이 때 사광은 사연이 연주한 음악에 대해 망국의 음악이라면서 이를 들으면 영토가 줄 것이라고 해서 중지시켰다가 진평공이 사연에게 계속 들려달라고 해서 어쩔 수 없이 사연이 계속 음악을 연주했다.
관련 사료
- 태평광기
- 왕자년습유기
- 춘추좌씨전
- 한비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