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르게이 부브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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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1963년 12월 4일
인간새
세르히 나자로비치 부브카 ( 우크라이나어: Сергій Назарович Бубка )

부브카는 점프하지 않는다. 그저 하늘을 날 뿐이다.

우크라이나의 장대높이뛰기 선수이다. 소련이 붕괴하기 전에 소련 국가대표로 활동하였기에 러시아식 이름인 '세르게이 부브카' (또는 '세르게이 붑카') 로 더 많이 알려져 있다.

1985년 세계 최초로 6m 의 벽을 넘으며, 확실하게 전세계에 이름을 알렸다.
1991년 세계 최초로 6m 10cm 의 벽을 넘었다.
1993년 실내경기에서 6m 15cm 를 넘으며 '실내' 세계신기록을 기록하였는데, 이는 21년이 지난 후에야 프랑스의 르노 라빌레니에 의해서 갱신되었다. 관련기사
1994년 실외경기에서 6m 14cm 를 넘으며 '실외' 세계신기록을 갱신했는데, 이 기록은 20년이 넘도록 깨지지 않고 있다.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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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4년 올림픽은 냉전 때문에 반쪽으로 개최되었기에 참가하지 못했다. 1988년 서울 올림픽에 참가하여 금메달을 따내었으며, 이 때문에 한국에도 많이 알려져 있다. 참고로 이것이 그가 올림픽에서 차지한 유일한 금메달이다. 그리고, 1992년 올림픽에는 소련이 붕괴되면서 연합팀 소속으로 참가하였는데, 예선은 가볍게 통과했으나 결선에서 어이없이 3연속 실패하고서 '기록 없음'으로 결선 참가 선수중 꼴지를 기록했다. 1996년에는 자기의 고국인 우크라이나 국적으로 참가하려 했으나 발목 부상으로 출전을 포기했고, 2000년에도 다시 도전하였으나 역시 결선에서 3연속 실패로 끝이 났다.

위키백과의 기록을 보면 1984년 부터 1994년까지 10년간 자신의 기록을 자기 자신이 갈아 치우며 독주를 하였고, 1994년에 기록한 6m14cm 는 20년간 유지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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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여담

여담으로 부브카는 총 35회에 걸쳐서 세계신기록을 갱신했는데, 훨씬 더 높은 기록을 세울 수 있음에도 불구하고 자신의 기존 기록에서 1~2cm만 높혀서 기록을 갱신했다고 한다. 이는 당시 소련의 포상금 정책 때문이었다고 하는데, 당시 소련은 세계신기록을 얼마나 크게 갱신하느냐는 중요하지 않고, 단지 기록을 갱신하기만 하면 포상금을 지급했다고 한다. 그래서, 조금씩 자주 기록을 갱신하는 방법을 사용했다고 한다. 물론 이것도 자신이 넘사벽의 1인자이니깐 가능한 이야기이다. 실제로 부브카의 전성기 때는 다른 선수들은 은메달을 따내기 위해서 경쟁했고, 부브카는 다른 선수들 다 끝날때 쯤 등장해서 가볍게 금메달을 확보해 놓은 다음 자기 기록을 넘느냐 못넘느냐에 도전하는 식으로 경기가 진행되었었다.

부브카는 어린 시절 체조를 배웠다고 한다. 하지만, 너무나 키가 커지는 바람에 체조는 포기했고 수영을 시작했다고 한다. 수영도 적성에 맞지 않아 다른 경기를 찾아 보다가 10살때 장대높이뛰기를 처음 경험해 보고는 이것이야 말로 자기에게 적합한 운동이라고 결심했다고 한다.

부브카는 100m 최고기록이 10.05 초[2]이고, 멀리뛰기 기록은 7.80m 라고 한다.

2002년 우크라이나 국회의원에 당선되며 정계에 입문했다.

부브카의 시대가 지나고 난 뒤, 러시아서는 옐레나 이신바예바가 등장하여 여자 장대높이뛰기에서 비슷한 행보를 걸었다.
  1. 장대 높이 뛰기는 다른 어느 육상경기보다도 바람의 영향을 많이 받는다. 그래서, 바람이 없는 실내가 훨씬 유리하기에 실내/실외를 구분해서 기록을 관리한다.
  2. 참고로 1988년 서울 올림픽에서 '칼 루이스'가 갱신한 세계기록이 9초 92였다. 만약 부브카가 단거리 선수가 되겠다고 마음 먹었다면, 100m 종목에서 메달권에 들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