쉬친셴

1 그는 누구인가?

徐勤先(Xu Qinxian, 서근선)

1935년, 다우 현 후베이 성 출생. 중화인민공화국 인민해방군 베이징 군구 소속 제 38 집단군 사령관. 최종 계급은 예비역 중장[1]

천안문 6.4 항쟁 당시 정부에서 최초로 하달된 강제 진압명령을 거부했던 군인이다. 그는 지금은 분명히 전시가 아니다. 그러니 구두 명령을 집행할 수 없고 진압 작전에 참여할 수도 없다[2] 는 말로 베이징 군구 부사령관의 명령을 거부했다.

2 생애

쉬친셴 장군은 1935년 다우 현 후베이 성에서 한 빈농의 아들로 태어났다.

그가 16살이 되던 해인 1950년에 6.25 전쟁이 터지자 그는 군에 자원입대하였다[3]. 쉬친셴은 그 곳에서 실전을 치렀고 제 38 집단군의 전차장이 되었다.

1980년에 그는 제 1 장갑사단의 사단장이 되었으며 1984년 대규모 군사훈련에 참여했다. 그리고 1987년에 서친셴은 바오딩 시에 기지를 둔 제 38 집단군의 사령관이 되었다.

천안문 6.4 항쟁 당시 제38집단군 사령관으로서 베이징 군구의 출동 진압명령을 받았으나, 쉬 중장은 "인민해방군은 인민에게 총부리를 돌릴수 없다"며 출동을 거부했다. 베이징 군구 부사령관의 명령을 거부한 것. 이 때문에 직위해제 조치를 당했고, 이후 소식이 끊겼다. 이 때문에 서방에서는 사형에 처해졌다는 보도가 있었다.

하지만 사실은 명령불복종죄로 군사재판에 회부되었고, 5년형을 받고 이후 스자장시에 거주지 제한조치에 취해졌다고 한다. 사건 20여 년 후 홍콩언론인 <빈과일보>가 수소문 끝에 그를 찾아가 인터뷰했는데, 그는 군인연금도 끊기는 등, 상당히 어렵게 살고 있었음에도 "전혀 후회하지 않는다. 다시 그때로 되돌아가도 그렇게 하겠다"고 대답했다.
  1. 한국 계급으로는 소장이다
  2. 이런 명령은 당연히 문서화할 수도 없고 문서화하지도 않는다. 그도 이것을 알기에 이런 말로 대답했다.
  3. 사실 너무 어리다는 이유로 한번 거부되었으나 혈서를 써서 억지로 들어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