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라키 마타에몬

荒木又右衛門
(1594 ~ 1634. 8월 28일)

전국시대 말기와 에도 시대 초기의 검객으로 이름은 야스토모(保知). 야스카즈(保和)가 이름이라는 이야기도 있다.

1594년에 핫토리 히라사에몽의 차남으로 12살에 친척인 핫토리 히라베의 양자로 입양되었으며, 이후 입양된 곳을 떠나 이가에 거주해 성을 키쿠야마(菊山)로 고쳤다가 다시 아라키로 바꿨다. 15세에 야규신카게류에 입문해 야규 쥬베의 문하생이 되었다는 설이 있지만 허구일 가능성이 높으며, 이전에는 양부 히라베에게 츄조류(中條流), 숙부에게서는 신토류(神道流)를 배운 적이 있다.

코오리야마 번에서 검술 사범으로 있다가 의형제인 와타나베 카즈마의 누나에게 장가를 들었으며, 1630년 7월 21일에 카즈마의 동생인 겐다이후가 같은 번의 검술 사범인 가와이 신사에몽의 아들 마다고로에게 살해되자 카즈마의 복수를 도와주기 위해 1633년 3월에 검술 사범에서 물러났다. 1634년에 가키야 부근의 결투에서 36명을 베었다는 이야기가 전해지고 있지만 실제로는 1634년 11월 3일에 일행 4명과 함께 마다고로를 포함한 10명을 기습하면서 무기를 꺼내지도 못하게 공격해서 2명을 죽인 것이다.

마다고로가 지나가는 길에 대한 정보를 접하고 우에노 시가 변두리의 네 거리에서 잠복했다가 그들을 습격해 동료들에게 지시해 가사이 신사에몽이 창을 꺼내지 못하도록 했다가 그의 넓적다리를 벤 다음에 죽였으며, 사쿠라이 한베에가 자신을 수행하는 산스케에게 창을 받기 전에 동료들이 그를 상대해서 익숙치 못한 칼로 싸우게 했다가 한베에를 죽였다.

한베에의 부하인 이치소의 공격으로 목검으로 허리를 강타당했지만 타박상만 입었고 계속 공격을 했지만 그 와중에 칼이 부러졌고 30분 정도 지나서 싸움이 끝났으며, 마타에몬과 동료들이 도와주면서 카즈마가 단독으로 마다고로와 싸워 복수하는 것에 성공하게 했다.

이후 토도가에 손님으로 보호되었다가 1638년 8월에 돗토리 번주인 이케다 미츠나가의 청으로 마타에몬의 신변은 인수받게 되었으며, 경호를 위해 총 90정과 160명의 인원이 파견되었고 8월 11일에 도착했다. 8월 28일에 세상을 떠났고 이 때문에 독살설이 제기되면서 돗토리 성 내에 숨겨졌다가 1643년 9월 24일에 죽었다는 설도 있다.

돗토리 성 내에 숨겨졌다는 설은 가와이당의 암살을 두려워 해 급사라고 발표했거나 돗토리 번으로의 이적 이야기가 결정되지 않아 죽은 것으로 해놓고 교섭이 중지되었다는 이야기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