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상민

1262507558167_1.JPG
연장이 난무하던 시대에 주먹 하나로 이름을 날린 前안토니파 보스

1980~1990년대를 주름잡던 조직 안토니파의 두목이었다. 고향에서부터 알아주는 싸움꾼이었다고 한다. 다름이 아니라 어린 시절 언어 장애가 있었는데 사람들이 놀리자 각종 무술을 익히면서 싸움을 시작했다고 한다. 그 당시 초등학생 때도 몇 살 위 형들을 다 주먹으로 제압하였고 중학교 시절때는 고향 서산을 비롯해 천안, 온양, 예천, 홍성, 당진 등 충남 일대 중학교를 장악해버렸다. 그리고 중학교 2학년때 서울로 상경했다.

서울에 올라가서도 싸움을 계속 했는데 이 때도 중학생들은 너무 쉽게 이겨서 고등학교 형들하고 싸웠다고 한다. 그러자 부모가 다시 서산으로 불렀는데 서울을 잊을 수가 없어서 가출을 했다고 한다. 서울에서 이쁜이파, 돼지파 등과 싸워서 승리하고 종로 일대를 손에 넣었다고 하는데 당시 나이가 20이 안됐었다고 한다.

본인의 말로는 연장을 전혀 사용하지 않았다고 한다. 자신의 주먹이 칼보다 더 무섭다고 생각하고 싸움을 했다고. 그리고 맞짱에선 거의 져본 적이 없다고 한다. 다만 전쟁을 나갈 땐 몸에 가죽 보호대를 착용하고 나갔다고 한다.[1]

명동의 김태촌과는 친분이 있는 사이라서 명동 진출이 비교적 수월했다. 안토니파의 원래 이름은 안돈이었는데 당시 영화 대부가 유행이어서 자연스럽게 안토니가 됐다고 전해진다. 당시 야쿠자와도 시비가 붙어서 싸운적이 있는데 다름 아닌 마약때문... 본인은 마약을 하지 않는데 야쿠자 쪽에서 위협을 가하자 역으로 관광보낸 다음 그 놈의 손가락을 잘라버렸다고 한다.

당시 주먹 세계에 있으면서 돈을 좀 벌었는데 자동차가 GM 올즈모빌 방탄차, 벤츠 500, 푸조였다고 한다. 하지만 정치권에 연루되면서 구속이 되었고 그 과정에서 살인 교사, 특수 강도, 마약, 외환 관리법 위반, 폭력 교사, 총포, 도검류, 화약법 위반. 공갈 협박 10가지의 죄목을 받게 되어 사형에 처해졌다. 하지만 가진 돈 30억을 풀었더니 5년으로 줄었다고 한다.

하루에 가만히 있기만 해도 3000만원씩 들어왔다고 한다. 품위 유지비로 한달에 3000만원씩 썼다고 한다.

97년 은퇴를 했는데 더 이상 주먹 세계에서는 낭만이 있지 않아서 환멸을 느꼈다고 한다. 하지만 가장 결정적인 계기는 바로 아내인데 아내가 자궁암에 걸리고 그만 하라고 부탁하자 과감하게 은퇴를 결심했다고 한다. 그리고 주먹계 은퇴.

최근에는 고향으로 내려가 이불 가게를 하면서 살고 있다고 한다. 그리고 청소년들을 대상으로 선도 사업을 하고 있고 그 수만 1000여명이 넘는다고 한다. 이러한 삶을 바탕으로 자서전 거물을 냈는데 이 때 번 돈을 선도 사업에 썼다고 한다.

조양은, 김태촌과는 다르게 건달세계에서 완전히 발을 뗀 것으로 전해진다. 그래서 영화나 TV같은 대중매체들도 최대한 거절한다고 한다.

아직 서산의 행운이불이라는 곳이 있으면 만나볼 수 있을 지도 모른다.

분명 조폭인데 설명이 묘하게 찬양조이다?

아들은 휴게텔 사장.
  1. 당연하다. 아무리 강력한 싸움꾼이라 해도 칼침 한 방 제대로 맞으면 저세상이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