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용

楊勇
(? ~ 604)

수나라의 황족. 수문제의 장남.

수문제는 양용에게 군국에 관한 정사에 참여하고 결정하도록 했고 때때로 덜거나 덧붙이는 일이 있었지만 수문제는 모두 받아들였는데, 양용의 성격은 관대하고 후덕했지만 생각과 감정에 맡기고 교만하면서 꾸미는 행동이 없었다.

양용은 속으로 총애하는 여인이 많았고 591년에 소훈 운씨를 총애했다가 그의 비 원씨가 이로 인해 마음의 병을 얻어 이틀 만에 사망하자 독고황후에게 책망받았으며, 수문제는 절약하고 검소했지만 양용은 촉 사람이 만든 방패를 문장으로 꾸미자 수문제가 이를 좋아하지 않고 훈계했다. 동지 때 문무백관이 양용에게 오자 음악을 베풀고 축하를 받았는데, 수문제가 이를 알고 동지에 조회에서 하례하고 토산물로 공물을 만들어 따로 동궁에 올리는 것을 정지시켰다.

양광이 궁녀를 양용의 집에 보내 술을 마시게 하는 등 계획적으로 사치스럽다는 이미지를 뒤집어씌우면서 독고황후가 양용이 태자로 있기에는 나라가 위태로울 것이 판단해 양광, 독고황후는 양용을 태자 자리에서 폐위하려는 모의를 한다. 양광은 이 일을 알고 걱정하고 두려워했지만 계책이 없어 왕보현에게 여러 가지 저주하는 물건을 만들어 좋은 운수가 돌아오도록 하는 비방을 했으며, 후원에 낮고 누추한 서인촌을 만들어 그 안에서 자고 쉬면서 베옷을 입고 풀로 만든 자리를 깔면서 이 문제를 감당해내길 바랐다.

이 일로 인해 수문제가 양용이 불안해하는 것을 알고 양소를 보내 살피도록 했는데, 양소가 동궁에 도착해서는 누워서 쉬면서 들어가지 않았다. 양용은 허리띠를 묶고 그를 기다렸지만 양소는 고의로 오랫동안 나아가지 않아 양용이 노하면서 이를 악물고 말과 얼굴빛에 드러냈으며, 이로 인해 수문제는 양소가 험담하는 소리를 듣고 양용을 의심했다.

독고황후가 사람을 보내 동궁을 엿보고 미세한 일도 모두 상주해 알리도록 했으며, 속이고 꾸며서 그의 죄를 만들자 수문제는 양용을 멀리고 정탐꾼을 가득 두어 동정을 살피게 했다. 결국 태자에서 폐위되어 내사성으로 옮겨 5품 관직에 해당하는 양식을 받았으며, 604년에 수문제가 죽고 수양제가 즉위하면서 수양제의 부하인 우문지급에게 살해당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