엘리스(리그 오브 레전드)/배경

1 기본 배경

“미모는 곧 권력이며 그 어느 검보다도 빠르게 상대를 칠 수 있다.”

엘리스는 녹서스 불멸의 요새 깊숙한 곳에 있는 저택에서 빛을 차단하고 은둔해 사는 치명적인 포식자다. 필멸자 시절 그녀는 명문가의 안주인이였지만 끔찍한 거미 신에 물린 후 매혹적이면서도 무자비한 불멸의 존재가 되었다. 영원한 젊음을 유지하기 위해 엘리스는 거부하기 힘든 유혹을 펼치며 무고한 이들을 사냥한다.

수백 년 전 엘리스는 녹서스의 전통 있는 명문 키테라 가문의 딸로 태어났다. 그녀는 아름다움이 사람의 마음에 지대한 영향을 미친다는 사실을 일찍이 알아차렸다. 성인이 되자 그녀는 가문의 권력을 위해 자번 가문 사람과의 혼인을 계획했다. 자번 가에서는 우려의 목소리가 높았지만 엘리스는 상대 남성을 구슬리고, 혼사를 반대하던 이들을 자기 편으로 끌어들여 약혼을 성사시켰다.

엘리스의 예상대로 그녀가 남편에게 미치는 영향은 상당했다. 자번 가는 권세가 날로 드높아졌고, 그에 따라 엘리스도 명성이 자자해졌다. 엘리스의 남편은 자번 가의 얼굴과도 같은 사람이었지만 내막을 아는 이들은 엘리스를 진정한 실세라 여겼다. 남편은 주변의 이러한 인식을 처음엔 감내했지만 수 년의 시간이 흘러 녹서스 상류층의 웃음거리로 전락하기에 이르자 쌓여 있던 불만이 서서히 곪아 갔다.

증오가 원한이 되어 가던 어느 날 저녁, 평소처럼 냉담하게 저녁 식사를 하던 남편은 엘리스의 와인 잔에 독약을 넣었다고 밝혔다. 그리고 조건을 제시했다. 사회에서 발을 떼고 순순히 권력을 넘겨 주면 해독제를 주겠다고. 그러지 않으면 자신이 보는 앞에서 죽게 될 거라고. 고통스럽게, 천천히… 독약은 엘리스의 몸 속 곳곳으로 빠르게 퍼져 나가 살과 뼈를 안에서부터 밖으로 녹이기 시작했다. 남편이 해독제를 몸에 지니고 있을 거라 생각한 엘리스는 날카로운 칼을 몰래 손에 쥔 채 뉘우치는 연기를 했다. 용서를 빌고 흐느끼면서 엘리스는 남편이 눈치 채지 못하도록 온갖 꾀를 동원하여 가까이 접근했다. 그러는 동안 엘리스의 몸엔 독이 퍼질 대로 퍼져 끔찍한 병변이 피부를 변색시키고 통증이 사지를 휘감았다.

엘리스가 다가온 순간, 남편은 아내가 자신을 얼마나 멸시하는지 그제서야 깨달았다. 엘리스는 남편에게로 몸을 던져 칼을 꽂았다. 그런 후 해독제를 찾아 마셨지만 이미 몸은 망가질 대로 망가진 후였다. 흉측한 화장을 한 시체처럼 끔찍하게 변한 얼굴은 피부가 괴사하여 얼룩덜룩한 반점이 가득했다.

이제 엘리스는 자번 가의 안주인이 되었고 녹서스의 정치 본질이 그렇듯 제국의 약점을 제거했다는 찬사를 받았다. 하지만 미모가 곧 권력이라고 여긴 엘리스는 은둔 생활을 시작했고 외출 시엔 베일로 얼굴을 가렸다. 햇빛을 피하고 친구와 지인의 방문을 거절하는 날들이 이어지자 한 때 명망 있던 그녀의 가문은 사람들의 기억 속에서 시나브로 잊혀져 갔다. 엘리스는 저택의 텅 빈 복도를 홀로 거닐었고 어둠을 벗 삼아 깜깜한 밤에만 집 밖을 나서곤 했다.

칠흑 같은 어둠 속을 배회하던 어느 날, 역시 베일을 쓴 어떤 여인이 엘리스에게 다가와 밀랍칠을 한 흑장미 인장을 손에 쥐어 주고 ‘백색 부인’이 재능을 높이 쳐 줄 것이라고 속삭였다. 대체 무슨 말이냐고 엘리스가 물었지만 여인은 ‘다시 온전해질 것’이란 약속만을 남긴 채 발길을 돌렸다. 엘리스는 당치 않다고 생각하면서도 미모를 되찾을 수 있다는 희망과 허영심에 흑장미 문양을 찾아 헤맸다. 몇 주 동안 거리를 헤집고 다닌 끝에 그녀는 녹서스 영토 밑 지하묘지로 들어가는 그늘진 아치형 입구에 흑장미 문양이 새겨져 있는 것을 발견했다.

문양을 따라 들어가 당도한 곳은 흑장미란 비밀 조직의 근거지였다. 흑장미는 어둠의 마법을 시험하고 숨겨져 있던 지식과 비밀을 공유하는 조직이었다. 엘리스는 흑장미의 단골 손님이 되어 조직원 사이에선 베일을 벗었고, 나이를 잊은 듯한 미모와 엄청난 권력을 소유한 백색 부인과 급속도로 가까워졌다. 엘리스는 조직의 분위기에 순응하면서도 약속 받은 대로 온전한 미모를 반드시 얻어내고 말겠다고 다짐했다.

어느 날 백색 부인은 유령이 출몰한다는 그림자 군도에 대한 이야기를 꺼내며 자신의 시종이 그곳에 있는 거미 신의 굴에서 목숨을 잃을 때 뱀 형태의 단검을 가지고 있었다고 말했다. 그리고 강력한 마법의 힘이 충만한 그 단검이 다시 손에 들어오면 엘리스의 미모를 마법으로 되찾아 주겠다고 제안했다. 엘리스는 바로 제안을 받아 들이고 흑장미의 핵심 일원들과 함께 그림자 군도를 찾았다. 피로 대가를 치르게 될 것을 알면서도…

엘리스는 바다 건너 군도까지 자신과 일행을 배로 기꺼이 태워다 주겠다는 사람을 찾았다. 빚더미에 앉아 돈이 절박하게 필요한 선장이었다. 항해가 시작된 지 수주가 흐른 후, 검은 안개가 피어 오르는 바위 투성이 섬이 시야에 들어왔다. 엘리스는 잿빛 모래가 깔린 해변에 발을 딛고 내려와 유령이 출몰한다는 섬의 깊숙한 곳으로 일행을 이끌었다. 도살장으로 양을 모는 양치기처럼… 섬 안엔 악한 유령이 들끓었고, 일행 중 다수가 유령에게 끌려갔다. 거미줄이 칭칭 감긴 굴에 도착했을 때 남은 사람은 겨우 대여섯 명뿐이었다.

굴에 가까이 다다르자 단단한 껍질에 둘러싸인 거대 괴물 같은 생명체가 어둠 속에서 날카로운 이빨을 드러내며 튀어나와 혼비백산하는 엘리스 일행을 잡아먹기 시작했다. 일행이 거미줄에 걸려 버둥거리거나 죽임을 당하고 있을 때 엘리스는 바싹 마른 사체의 손에 쥐어진 단검을 보았다. 백색 부인이 찾던 바로 그 단검이었다. 단검을 낚아채는 순간, 거미 신이 그녀의 어깨에 독이빨을 내리꽂았다. 충격에 앞으로 고꾸라지자 단검의 칼날이 그녀의 심장을 관통했고, 칼날의 강력한 마법이 혈관을 타고 흘러 거미 신의 독과 섞이더니 몸이 변형되기 시작했다. 마법의 기운이 섞인 거미독은 피부를 재생시켜 전보다 훨씬 더 아름다운 모습으로 그녀를 바꾸어 놓았다. 상처가 사라지고 피부는 흠잡을 데 없이 매끈해졌다. 하지만 치명적인 독성을 완전히 막을 수는 없었다. 그녀의 등이 움찔거리더니 여덟 개의 거미 다리가 피부를 뚫고 자라난 것이다.

고통 속에서 헐떡거리며 일어난 엘리스는 다가오는 거미 신을 발견했다. 둘은 같은 힘을 나누어 갖고 있었고, 예기치 못한 공생을 통해 어떻게 이득을 취할지 즉각적으로 알아차렸다. 엘리스는 군도의 유령들로부터 아무런 방해도 받지 않고 배로 다시 돌아와 녹서스로 항해를 시작했다. 모두가 잠든 한밤 중 부두에 닿았을 때 배 안에 살아있는 생명체는 오직 엘리스뿐이었다.

백색 부인은 엘리스의 미모를 되살린 마법이 언젠가는 사라질 것이라고 경고했지만 엘리스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단검을 돌려주었다. 두 여인은 거래를 맺었다. 흑장미 조직은 거미 신에게 제물로 바칠 사람을 제공하고, 그에 대한 대가로 엘리스는 그림자 군도에서 발견한 모든 마법 유물을 넘겨 주기로 했다.

엘리스는 자번 가의 버려진 저택으로 다시 돌아가, 범접할 수 없는 아리따운 은둔자가 되었다. 불멸의 미모를 가졌다는 둥, 먼지 쌓인 허름한 저택에서 무시무시한 괴물과 살고 있다는 둥 별의별 소문이 다 돌았지만 그녀의 진짜 정체를 눈치 챈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그림자 군도로의 첫 항해 후 수 세기가 흐른 지금, 엘리스는 흰 머리가 보이거나 눈 밑이 거뭇거뭇해질 때마다 흑장미 조직에서 사람들을 유혹해 검은 안개가 드리운 군도로 배를 띄운다. 그녀와의 동행에서 돌아온 사람은 아무도 없고, 항해를 다녀올 때마다 그녀는 백색 부인을 위한 고대 유물과 함께 한층 더 돋보이는 미모와 생기를 가지고 돌아온다고 한다.

2 실크 가닥에 사로잡히다

바다 위에서 보낸 지난 몇 주 동안 너무 어지럽고 힘들었기에 마커스는 다시 땅을 밟게 되어 기뻤다. 현무암 해변에서 이어진 길은 기름기가 많고 끈적여서 발을 내디딜 때마다 위험했다. 양쪽에 난 굽은 나무들은 누렇게 바랜 수액이 눈물처럼 번지고 검게 그을린 껍질만 남은 초라한 형상이었다. 공포에 사로잡힌 동물들이 껍질을 갉아먹은 듯했다. 나무 사이로 은은한 불빛이 반짝이는 초들처럼 춤추며 늪지대 위를 비췄다. 방심하는 사람들을 죽음으로 이끄는 불빛이었다. 낡은 모슬린 천으로 만든 덮개 같은 것이 나뭇가지에 걸려 있었다. 마커스는 그것이 거미줄이라는 것을 바로 알아채지 못했다.

그림자처럼 숲으로 기어가는 보이지 않는 존재들의 움직임으로 길 양쪽에 난 덤불을 막은 뻣뻣한 고사리가 바스락거렸다. 배에 들끓던 쥐들이 그들을 따라왔는지도 몰랐다. 마커스는 부풀고 검은 털로 덮인 몸의 찰나의 움직임이나 나무 위를 잽싸게 달려가는 발톱 소리를 제외하고는 한 번도 쥐와 마주친 적이 없었다. 그는 그 소리로 미루어 보아 평범한 쥐보다 다리가 좀 많은 것 같다는 생각을 떨칠 수 없었다.

섬의 공기는 축축하고 무거웠고, 재단사가 신경 써 만든 그의 옷과 신발은 달라붙는 습기로 흠뻑 젖었다. 코 아래 향 주머니를 하나 갖다 대보았지만, 섬의 악취를 지울 수는 없었다. 이 악취는 녹서스의 벽 너머에 있는 지하 납골당에서 바닷바람이 불어올 때 풍기는 냄새를 상기시켰다. 고향을 생각하자 마음이 잠시 불편해졌다. 도시 밑 지하 무덤에서 벌였던 유흥은 법에 어긋나는 짜릿한 즐거움이자 검은 꽃의 비밀 상징을 따르는 이들을 위한 상이었다. 어두운 지하 무덤으로 그와 다른 추종자들이 모여들었다.

그곳에서 그녀가 기다리고 있었다.

이곳으로 이렇게나 많은 사람을 몰고 온 매혹적인 여인을 조금이라도 보기 위해 마커스는 앞을 내다보았다. 붉은 실크와 매혹적인 실루엣이 언뜻 비치는가 싶더니 이내 나무 사이로 흘러나오는 안개가 시야를 가렸다. 마커스는 그녀가 숭배하는 고대 신께 드리는 예배에 열광했으며 자신이 서른 명의 다른 추종자들과 같이 이 순례에 함께하기로 선택되었을 때도 기뻐해 마지않았다. 후드를 둘러쓴 말 없는 선원의 흔들리지 않는 시선을 받으며 사람을 잔뜩 태운 범선에 승선했던 자정만 해도 이 여정은 위대한 모험 같이 느껴졌다. 그러나 녹서스에서 너무 멀어졌다는 사실이 그의 열정을 시들게 했다.

마커스는 잠시 멈추어 걸어온 길을 되돌아보았다. 같이 온 추종자들이 흐리멍덩한 눈으로 도살장에 끌려가는 소처럼 그를 지나쳐 갔다. 저 사람들 뭔가 이상한데? 그들 뒤로 발이 길에 닿을 듯 말 듯, 미끄러지듯이 선원이 왔다. 선원의 옷은 움직임으로 물결쳤고, 이 역겨운 인물 근처에 있을 생각을 하니 마커스의 가슴에 숨 막히는 공포가 피어올랐다.

몸을 돌리자 바로 그녀와 얼굴을 마주하게 되었다.

“엘리스 님...” 마커스의 목에 숨이 걸렸다. 본능적으로 그녀를 밀치고 이 끔찍한 곳에서 도망치고 싶은 마음이 들었으나, 그녀의 숨 막히는 미모에 굴복해 거부하는 마음이 홀연히 사라졌다. 혐오라는 감정이 너무 순식간에 스쳐 지나간 나머지 자신이 진짜로 그렇게 느꼈는지조차 확신할 수 없었다.

“마커스.” 엘리스가 자신의 이름을 입에 올리는 소리는 신성하기까지 했다. 짜릿한 기쁨이 등줄기를 타고 흘러내렸다. 그녀의 미모는 마커스를 꼼짝 못 하게 했고, 마커스는 그녀의 완벽한 몸매를 바라보았다. 각지고 뚜렷한 이목구비와 어우러지는 탐스러운 붉은 머릿결의 소유자였다. 한때 그가 알았던 고귀한 신분의 소녀 같았다. 그녀의 탐스러운 입술과 어두운 광채를 내뿜는 눈을 보며 마커스는 앞으로 올 황홀한 희망에 불타며 그녀의 거미줄로 더욱 깊이 빠져들었다. 여덟 갈래가 나 있는 브로치로 고정된 진홍빛 흑 담비 망토가 그녀의 동그스름한 어깨에 둘려 있었다. 바람 한 점 없었으나 망토는 움직임으로 여울졌다.

“뭐가 잘못됐어, 마커스?” 허스키한 엘리스의 목소리가 부드러운 연고처럼 그의 공포를 달랬다. “네가 평온한 상태여야 해. 너 지금 평온하지, 마커스?”

“네, 엘리스 님,” 마커스가 대답했다. “저는 평온합니다.”

“다행이야. 우리가 이렇게 가까이 있는데 네가 불안하다면 나도 기분이 좋지 않을 테니까.”

그녀의 기분을 상하게 할 수 있다는 생각에 마커스는 크게 당황해 바로 땅에 엎드렸다. 그는 그녀의 다리를 팔로 감싸 안았다. 희푸르고 호리호리한 다리는 매끄럽고 차갑게 느껴졌다.

“엘리스 님을 위해서라면 뭐든지 하겠습니다.”

엘리스는 그를 내려다보고 빙그레 웃었다. 한순간 마커스는 그녀의 망토 아래로 길고 가느다랗고 반짝이는 무언가가 움직이는 것을 본 것 같았다. 뭔가 부자연스럽고 소름 끼치는 움직임이었지만, 그는 신경 쓰지 않았다. 엘리스가 흑요석 색의 뾰족한 손톱을 그의 턱 아래 갖다 대더니 그를 일으켰다. 마커스는 자신의 목에 상처가 난 것도 모르는 채 돌아선 엘리스를 따라나섰다.

그는 기꺼이 그녀를 따라갔다. 엘리스를 기쁘게 하겠다는 생각 외에 모든 것이 연기처럼 사라졌다. 나무들이 점점 듬성듬성해지고 길은 바위투성이 절벽 앞에서 끝이 났다. 오랜 세월을 견뎌낸 것처럼 보이는 절벽에 새겨진 상징들에 그의 눈이 매캐해졌다. 절벽 아래에는 뭐든지 집어삼킬 듯한 구멍 같은 그늘진 동굴이 입을 벌리고 있었다. 폐부에서 갑자기 공포가 밀려오면서 마커스는 자신의 확신이 무너지는 것을 느꼈다.

그러나 그는 안으로 들어가라고 손짓하는 엘리스를 거부할 힘이 없었다.

동굴의 내부는 기이할 정도로 어둡고 숨 막힐 정도로 더웠다. 푸줏간에서 버린 쓰레기처럼 고약한 악취를 풍기는 눅눅한 열기였다. 마음 깊숙한 곳에서 그에게 도망치라고, 이 끔찍한 곳에서 가능한 한 멀리 피하라고 외치는 소리가 들려왔으나, 마커스는 자신도 모르게 점점 더 동굴 깊숙이 발을 옮겼다. 어딘가 높은 곳에서 물방울이 그의 뺨으로 떨어졌다. 갑작스러운 타는 듯한 고통에 마커스는 움찔했다. 동굴 천장을 올려다보자 희미한 유충 같은 것들이 달려 있었다. 그 속에서 뭔가가 빠져나오려고 몸부림치는 것이 보였다. 갓 짜낸 거미줄의 투명한 표면에 이 실크 그물에 질식할지도 모른다는 공포로 말 없는 비명을 지르는 사람의 얼굴이 비쳤다.

“여기 대체 뭐하는 데야?” 마커스를 눈멀게 했던 허울이 벗겨졌다.

“여기는 내 신전이야, 마커스.” 엘리스가 어깨에 달린 여덟 갈래 브로치를 풀러 망토가 떨어지게 두면서 말했다. “거미 신님의 은신처지.”

엘리스의 어깨가 꿈틀대더니 등 뒤로 두 쌍의 가느다란 곤충 다리가 나왔다. 점점 가늘어지는 검고 긴 다리 끝에는 면도날 같은 발톱이 달려 있었다. 곤충 다리로 우뚝 선 엘리스 뒤의 어둠 속에서 기괴하고 거대한 형태의 무언가가 몸을 움직였다. 거대한 다리들이 부패한 몸을 앞으로 일으켜 세웠고, 동굴 너머의 희미한 불빛이 수많은 눈에 반사되어 깜박거렸다.

이 거대한 거미는 몸집이 어마어마하고 온몸이 털과 축축하고 기형적인 종양으로 뒤덮여 있었다. 악몽 같은 이 거미를 본 공포로 마커스를 사로잡았던 엘리스의 매력의 마지막 조각마저 산산이 부서졌다. 귀에 울리는 엘리스의 잔혹한 웃음소리를 뒤로 마커스가 동굴 입구 쪽으로 도망쳤다. 끈끈한 거미줄이 옆의 바위로 휙 날아왔다. 끈적대는 가닥이 몸부림치는 그의 팔다리를 공격하여 온몸이 얽히면서 도망치는 속도가 느려졌다. 발톱 달린 다리들이 딸각대며 쫓아오는 소리가 들렸다. 마커스는 엘리스가 자신을 건드릴 거라는 생각에 흐느꼈다. 더 많은 거미줄이 그를 옭아매더니 뾰족한 무언가가 놀랄 정도로 잽싸게 그의 어깨를 찔렀다. 마커스는 털썩 무릎을 꿇었다. 신경을 마비시키는 독이 몸에 퍼지면서 자기 자신의 육체에 갇힌 꼴이 되어버렸다.

그는 자신의 몸 위로 그림자가 드리워지며 말 없던 선원이 팔을 활짝 벌리는 것을 보았다. 풀썩 떨어지는 선원의 망토를 보며 마커스는 소리를 질렀다. 망토 아래 드러난 것은 사람이 아니라, 무수히 많은 수의 꿈틀대는 거미들로 이루어진 사람 형체에 불과했다. 거미 수천 마리가 마커스 위로 달려들었다. 온 몸을 뒤덮은 거미들 때문에 숨이 막힌 마커스의 비명은 신음이 되어버렸다.

엘리스가 시야에 나타났다. 등에서 나온 다리가 그녀의 몸을 높이 쳐들고 있었다. 아름답기는커녕 더는 인간의 형상을 하고 있지도 않았다. 얼굴은 절대 채워지지 않을 허기로 불타고 있었다. 기분 나쁜 거미 신 괴물이 뾰족한 턱으로 마커스를 들어 올렸다.

“마커스, 이제 네가 죽어줘야겠어.”

“왜죠...?” 마커스가 마지막 숨을 내쉬며 겨우 말했다.

바늘처럼 뾰족한 송곳니를 가득 드러내고 엘리스가 웃었다.

“내가 살아야 하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