왕총아

王聰兒
(1775 ~ 1798)

청나라 중기에 일어난 백련교도의 난을 이끈 여성 지도자.

호북성 양양 사람으로 어려서는 부친을 따라 유랑하였으며 무술을 익혔다고 한다.

결혼하고 남편인 제림의 영향을 받아 백련교의 신도가 되지만 청나라 조정에서 1775년의 백련교를 이끄는 백련교주인 유송이 왕조의 멸망을 예언하자 이를 탄압하여 여러 신도들을 죽이자 1796년 3월에 요지부, 제국모 등과 함께 반란을 일으키며 양양, 지강 등에서 백련교도들이 호응했다.

15만의 군사로 청나라의 군사들을 상대로 정면으로 상대하는 것을 피하고 8개의 부대로 나누며 기습 공격을 하여 그들을 고전시켰으며 사천, 호북, 섬서, 감숙, 하남 지방 등으로 진격하자 태평, 달주, 동향 등에서도 호응하였으며 5월에 달주의 군사들이 청나라 군사들과 지방 향용에게 백수산에서 포위되자 이들의 포위를 풀었다.

가경제 3년인 1797년 2월에 왕문웅, 최문 등이 이끄는 청나라 군사들을 한중에서 격파하고 장안으로 갔지만 패하여 산양으로 진격했지만 연도에서 청나라의 군사와 지방 향용의 저지로 운서의 삼차하로 퇴각하여 그 곳을 통해 호북으로 가려고 했다.

그러나 삼차하에서 청나라의 군사와 지방 향용의 포위를 당해서 고립되자 1798년에 적에게 항복하지 않겠다면서 절벽에서 뛰어내려 자결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