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하네스 베르메르

요하네스 베르메르 (Johannes Vermeer, 1632~1675)

'요하네스 페르메이르'로 표기되기도 한다.

네덜란드의 황금시대라고하는 17세기를 대표하는 작가 중 하나이다. 델프트에서 출생했으며, 자신의 고향에서 사망하였다.작품은 35점으로 많지 않다.
19세기 중엽, 밝고 깊은 색채와 정밀한 구도로 세계적인 화가로 재평가되었다. 유명작품으로 진주 귀걸이를 한 소녀, 우유를 따르는 여인이 있다.
상인의 일을 겸했기 때문인지 상인 계층의 일상을 주 소재로 삼은 작품이 많다.[1]

1653년 21의 나이로 성 루가 길드[2]라는 화가조합에 가입하였다.
1655년 자신의 아버지가 사망한 후 점포를 이어받아 그림매매나 그림 감정을 하였고 여관도 운영하였다.
1672년 네덜란드와 프랑스의 전쟁으로 미술시장은 무너져 베르메르의 주 수입원이었던 그림매매가 이루어지지 않는등으로 경제적으로 매우 어려워졌다.
1675년 43세의 나이. 심장발작으로 사망하였고 델프트의 구교회에 묻혔다.

청금석을 주원료[3]로한 울트라마린을 굉장히 좋아했다[4]는 말이 있다.
재료가 보석인만큼 값이 매우 비쌌는데 이 색을 너무 좋아한 나머지 재산을 많이 쏟아부었다고 한다. 그만큼 빚을 많이 졌다고 한다..

알려지는 정보에 따르면 아내 카타리나와의 사이에서 자식을 12명이나 뒀다고 한다.정자왕

베르메르가 죽은 후 첫째 딸인 마리아가 아버지처럼 그림을 그려서 팔았다는 이야기가 있다. 그래서 베르메르의 그림들 중 마리아의 그림이 있다는 추측이 있다고 한다.
  1. 이외에 베르메르가 방직공 일도 했다고 하는데, 갚아야 할 빚진 돈이 있고 가족들을 먹여 살려야 했기 때문이다. 사실 네덜란드의 화가들은 대부분 투잡족 아니면 그보다 더 많은 일을 하는 사람들이 많았다. 경제적인 문제 때문이다.
  2. 화가조합에 등록된 장인에게 6년이상 그림을 배워야한다는 규정이 있어서 적어도 15세 때부터 그림을 배웠으리라고 추측됨
  3. 현재시중의 울트라마린은 대부분 합성원료로 만든다.
  4. 실제로 그의 작품에 청색계열의 색이 자주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