劉克良
미상 ~ 1592년
조선 중기의 무신이자 노비에서 양반의 신분까지 오른 입지적 인물.
연안 유씨의 시조
자 중무(仲武), 시호 무의(武毅)
1 출생의 비밀
어려서 고학으로 무과를 준비했던 점을 보면 집안 환경은 평민치고는 나름 여유가 있었던 것으로 여겨지지만 무과 급제후 자신의 어머니에게 출생의 비밀이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바로 어머니가 전 영의정 홍섬의 아버지인 홍언필의 노비였다는 사실이다. 사실인즉 홍언필이 아끼던 옥잔을 실수로 깨트리게 되었고 이에 두려움을 느낀 유극량의 어머니가 탈출을 해서 평민과 결혼 했다는 사실이었다.
당시 국법으로 양인 이상만 과거를 치를수 있기에 그의 과거 합격이 취소될 수 있는 상황. 사실을 알게된 그는 홍섬에게 찾아가서 어머니의 죄를 자신이 받을테니 자신을 대신 노비로 써달라고 했다. 이에 홍섬은 그의 기개를 가상히 여겨서 관직생활을 해 나갈 수 있게 도와주게 된다. 하지만 노비라는 출신때문에 관직 생활에 어려움을 느끼게 된다.
2 임진왜란과 전사
선조시기 일본의 동태를 살피던 조선은 뛰어난 무장들을 남쪽의 지휘관을 파견하게 되는데 이중 유극량은 전라좌수사로 임명된다. 하지만 그의 출신이 한미해 일개 군관이나 시정잡배들과도 너나들이 하는 바람에 명이 제대로 안선다는 지적을 받아 체직되고 그 후임으로 이순신을 임명하게 된다.
임란이 일어나자 이일과 신립이 순변사, 도순변사로 임명되어 파견될 때 유극량도 별도로 조방장으로 임명되어 죽령(竹嶺)으로 파견되어 진을 쳤다 충주가 함락된 이후 샛길로 빠져나와 직산을 거쳐 임진강 방어선에 합류했다. 충청감사 윤국형은 문소만록에서 직산에 도착한 유극량에게 직산에 머물러 지키라는 지시를 내렸으나 제대로 전해지지 않아 그대로 임진강으로 향했다고 진술했다. 당시 임진강 방어사는 신할이었는데 신할이 선제공격을 주장하고 이에 “적이 우리 군사를 유인하고 있으니 함부로 움직이지 말고, 5, 6일간 우리 군사의 힘을 길러 사기가 올라간 다음에 적을 치자.”고 하였다.
하지만 신할은 유극량을 겁많은 늙은이라고 몰아 붙이며 공격을 강행했다. 어쩔 수 없이 함께 공격에 참여한 유극량은 복병에 걸려 조선군이 참패하는 와중에 자신의 위치를 사수하며 끝까지 싸우다 전사했다.
3 평가
노비출신에서 양반의 직위에 오르게된 입지적인 인물로 임란이라는 전시에 그런 사례가 많이 등장했지만 평시에 등장했다는 점을 눈여겨 볼만하다. 또한 이조판서 홍섬이 그를 보고 계속 관직을 하게 만들었다는 사실을 볼때 그의 능력을 높이 평가했다는 점을 알 수 있다. 임진강 전투에서 무모한 공격을 만류했다는 사례를 봐서 군인으로서의 자질또한 상당했던 걸로 보여진다.
동시대 인물 유몽인의 어우야담에는 생전 치부를 잘해 많은 재산을 모았다고 한다.
2차매체에서의 등장은 잠시나마 조연으로나 나오면 다행일정도로 비중이 부족한데다 이순신이 등장하는 2차매체에선 간접적인 피해를 자주 받는다. 이순신의 전라좌수군 세력 확장을 강조시키기 위해 유극량 시절 좌수영의 기강을 개판으로 묘사하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불멸의 이순신에선 아무 활동도 안한채 바로 파직된 원균보다 뒤떨어지는 인물마냥 취급받았다. [1]
비운의 군인 유극량을 가장 비중있게 다룬 창작물이 있으니 소설 7년전쟁. 제 3권에 '노장 유극량'이라는 챕터가 따로 있을 정도로 유극량에 대해 호의적으로 다루고 있다.- ↑ (42회中) 신호: 뭘 그리 발끈하고 그러나, 어제 오늘 일도 아니거늘... 다른 수사들도 다 마찬가지 아니었나! / 정운 :원수사는 달랐어요! 전하께선 뭘 믿고 저런놈을 좌수사로 임명하신겐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