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븐 알하이삼은 (965~1040)은 중세 이슬람 과학자이다.
1 생애
965년에 현재의 이라크 바스라에서 태어났으며, 주로 이집트의 카이로에서 살다가 76살의 나이에 죽었다.
이븐 알하이삼은 살아생전 자신이 배운 과학적 지식을 현실에 적용시킬 수 있다는 확신을 가지고 있었고, 나아가 나일 강의 홍수를 조절할 수 있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파티마 왕조의 여섯 번째 칼리프였던 알하킴 비 아므르 알라에게 나일 강의 홍수를 조절하는 일을 하겠다고하였으나 얼마 후 그는 그 일이 불가능하다는 것을 알게 되었고, 왕의 일을 못하겠다고 거부하였다. 그 일로 인해서 자신의 목숨에 위협을 느꼈기 때문에 알하이삼은 미친 척했고, 칼리프가 죽을 때까지 10년간 가택 연금되었다.
이 동안 그는 광학에 대한 책인 (광학의 서)를 서술했다. 가택 감금이 끝난 후에도 그는 물리학, 천문학, 수학에 관한 연구들을 했고 논문을 썼다. 그는 후에 이슬람 스페인에 여행을 갔는데, 이 기간 동안 그는 천문학, 수학, 물리학, 의학, 당대 실험 과학 방법에 대해 충분한 시간을 가지고 연구를 할 수 있었다.
2 업적
알하이삼은 광학, 천체물리학, 과학적 방법론에서 많은 업적을 남겼다. 알하이삼이 광학에 이루어 놓은 업적에 의해 실험이 새로이 강조되기도 하였다. 그의 연구 결과는 물리학, 특히 광학에 엄청난 영향을 끼쳤고, 광학의 이론과 실험의 새로운 시대를 열었다고 할 만큼 높은 존경을 받고 있다. [또한, 그의 업적을 라틴어로 번역한 책인, 《광학의 서(키탑 알마나지르)는 서양 과학에 큰 영향을 끼쳤다. 그의 천문학과 광학 이론은 형이상학과도 긴밀하게 연관되어 있으며, 서양 중세 광학 이론의 근본이 되었다. 그의 연구는 후에 많은 학자들에게 영향을 끼쳤는데, 로저 베이컨은 《광학의 서》에서 큰 영향을 받아 자신의 저작에서 알하이삼의 이름을 인용하였고,
요하네스 케플러도 그의 영향을 받았다. 알하이삼의 거울의 광학에 대한 연구는 대부분 구형거울, 포물경과 구면 수차에 대한 것이었다. 그는 입사각과 반사각이 항상 일정한 것이 아니라는 관찰을 했고, 렌즈의 배율에 대해서도 밝혀냈다. '알하젠의 문제'라고 불리는 문제도 그가 거울 광학에 남긴 업적 중 하나이다.
알하이삼은 (광학의 서) 외에도 여러 편의 논문을 썼다. 《빛에 대한 논고》는 《광학의 서》의 보충판으로, 다양한 투명도의 매질을 통한 빛의 밝기와 분산의 성질에 대한 더 나아간 연구 내용을 포함하고 있으며, 시지각의 환영과 눈 해부학에 대한 조사를 수행하기도 했다. 그는 최초의 암상자와 카메라 옵스큐라를 만들고,
대기 밀도와 무지개에 대한 기상학을 연구했다. 다양한 천체 현상들을 조사하기도 하였으며, 굴절과 반사광학, 구면 광학, 구면 거울, 확대경에 대해 연구하기도 했다.
자신이 집필한《지혜의 균형》에서도 알하이삼은 고도에 따른 대기의 밀도에 대해 논한다. 그는 대기 굴절에 대해서도 연구하였고, 땅거미가 오직 태양이 지평선으로부터 19도 아래에 있을 때 중단되고 시작하는 것을 발견하고 그것을 기반으로 대기의 높이를 재려고 시도했다. 그는 태양광선이 대기에 의하여 꺾이는 현상으로부터 대기층의 두께를 설명하였고, 입사각과 반사각의 비례가 일정하다는 것을 증명하였다. 그의 이론은 유럽에 큰 영향을 끼쳤고, 프톨레마이오스 이래 광학이론에 중요한 공헌을 한 과학자로 평가받고 있다.
이밖에도 그는 공학외에도 자신이 집필한《천문학의 전형》에서도 천체들이 물리학의 법칙을 따른다는 것을 발견한다.
또 최초로 질량 사이의 인력에 대한 이론을 논의했으며, 이로써 그는 중력에 의해 일어나는 거리에 따른 가속도를 인지하고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월광에 관하여》는 중력 중심에 대해 다루는 논문인데, 12세기 압드 아르라흐만 알카지니의 작업을 통해 알려진 것을 제외하고는 이에 대해 알려진 것은 많지 않다. 이 논문에서 알하이삼은 지구의 중심으로부터의 거리에 따라 물체의 무거운 정도가 다르다는 이론을 만들어 낸다.
알하이삼은 이밖에도 점성술에서 천문학을 구별하였고, 점성술에 대해 이의를 제기했다. 그는 당대의 점성술사들이 경험보다는 추측에 근거한 방법들을 사용하였고, 이슬람의 정통 교리를 어기는 관점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에 점성술을 비판했다.
또, 알하이삼은 《은하수에 관하여》라는 논문을 저술하였다. 이 논문에서 알하이삼은 시차와 우리 은하에 관한 문제들을 해결하였다. 고대에 아리스토텔레스는 은하수가 “크고 많으며 서로 근접해 있는 몇 개의 별들이 내뿜은 불길에 의한 점화”로 인해 발생한다고 믿었으며, “점화는 세계 각 지역 중 하늘의 움직임과 연속적인 곳의 대기의 상층 부분에서 일어난다”고 믿었다.
알하이삼은 이것을 반박했고, 은하수가 시차를 가지지 않기 때문에 지구에서 매우 멀리 떨어져 있고, 대기에는 속해 있지 않다고 결론지었다. 그는 이 논문에서, 만약에 은하수가 지구의 대기에 위치하고 있으면, 누군가가 다른 고정된 별들과의 상대적인 위치 차이를 발견했어야 한다고 하였다.
그는 은하수의 시차를 측정하기 위한 두 가지 방법을 제시했다. 어떤 이가 서로 다른 두 시간에 같은 장소에서 은하수를 관찰하거나, 서로 다른 두 장소에서 동시에 은하수를 관찰하는 방법이었다. 그는 은하수의 시차를 관찰하고 측정하기 위한 최초의 시도를 하였고, 그것을 통하여 은하수가 시차를 가지지 않기 때문에 지구의 대기에 존재하지 않는다고 결론을 내린 논문을 발표하기도 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