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행

1 조선 성종의 3남 이행(李烆)

1480?~1505

조선 중기의 왕족. 군호는 안양군이며 성종의 후궁 귀인정씨 소생이며 성종의 3남이다 .부인은 능천군 구수영의 딸인 구씨이다.

연산군의 재위기간 때 생모 폐비 윤씨 사사사건의 원인이 그의 모친과 성종의 후궁 엄씨의 참소에 있다고 판단하여 사건에 휘말려 행(안양군)과 봉(봉안군)에게 생모인 정씨를 때리도록 하였다.

봉은 자신의 생모인줄 알고 있었기 때문에 때리지 않고 가만히 앉아 울었으나 행은 누구인지도 모르고 때릴 정도로 우둔하였다. 생모의 시체는 젓갈로 담궈저 내버려졌다. 1504년 제천에 안치되고 가재는 적몰(籍沒) 된다음 1505년 봉과 함께 사사되었다. 시호는 공회이다.

2 조선 세종의 서자 화의군의 이름 이행

항목 참조.

3 조선 진종의 이름

효장세자 참조.

4 조선 중종때의 문신 이행(李荇)

1478~1534

조선 중기의 문신. 호는 용재. 김종직의 문인인 연헌 이의무의 아들이다. 1545년 을사사화의 주역인 이기(李芑)의 아우이다.

벗인 남곤, 박은(읍취헌)과 함께 시문으로 이름높았으며, 연산군 갑자사화때 함께 화를 입어 박은은 죽고 두 사람은 간신히 목숨을 건졌다. 중종때 관로가 비교적 순탄하여 대사간 등을 거쳐 대제학, 좌의정 등을 역임하다가 김안로의 모략으로 유배당하여 유배지에서 죽었다. 권신으로 후대인에게 평가절하되기도 하지만, 문형을 12년간으로 역임하여 대제학이라는 시스템을 정비한 공로가 있다. 문형은 홍문관 대제학, 예문관 대제학, 지성균관사를 겸임해야만 일컬어지는 칭호이다. 오늘날에 비교하면 성균관대사성은 대학 총장, 지성균관사는 대학 이사장에 해당한다.문형으로서의 자의식과 자부심이 상당하여, 후임 대제학감을 추천하는 것도 게을리 하지 않아, 소세양, 정사룡, 김안로 등을 키워주거나 추천하였다. 덕수이씨로서 후손에 택당 이식 등 현달한 인물들이 많이 나왔다. 율곡 이이는 아버지 이의무의 맏형인 이의석의 현손으로, 그와 율곡은 6촌 재종조와 재종손의 관계가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