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연

무신정권의 집권자
무신정권 말기
9대 김준10대 임연11대 임유무

임연
林衍, (? ~ 1270)

1 개요

고려무신. 무신정권의 집권자. 초명은 임승주(林承柱)이다.

흉악한 인상을 가졌으며, 빠르고 힘이 있어 몸을 엎드려 팔로 다니거나[1]기와를 지붕 위로 던지기도 하였다. 어머니는 진주 주리(州吏)의 딸이다.

2 성장

몽골군이 고려를 침공할 당시에 아이들과 병정놀이를 하며 놀고 있었는데, 고려의 대장군인 송언상이 고향 땅인 진천으로 오게 되었으며 진짜 전쟁처럼 지휘를 하며 놀고 있었다.

대장군인 송언상이 이를 보고 비범하게 여겨 그에 의해 개경으로 가 그의 종이 되었고 또한 학문과 무예를 배웠으나 그가 병사하자 고향으로 돌아와 홀로 학문과 무예를 익혔다. 1234년에 진천 지방에 몽골군이 들어와 행패를 부리자 청년들을 모아 진천 지방에 침공한 몽골군을 격파하자 그 공으로 대정에 임명되어 승주라는 이름은 대정의 이름에는 걸맞지 않다고 하여 이름을 연이라 해주어 이름을 임연이라 불리게 되었다.

이후에 임효후라는 자가 자신의 처를 간통하자 임효후의 처를 간통하면서 임효후가 유사에게 이를 고하면서 죄에 대한 판결을 받는다. 이 때 최항의 별장이었던 김준이 그 사람됨을 보고 자신을 구해주면서 김준의 수양아들이 되면서 1257년에 그의 추천으로 도령 낭장이라는 관직에 천거되었다.

3 최의 제거에 동참하다

최항이 죽고 최의가 홀로 최양백에게 맡기고 김준, 유경 등 최항의 측근이었던 자들이 정치에서 소외되었고, 1258년 1월에 김준을 천거한 송길유를 부정부패 혐의로 유배보낸 것을 통해 크게 불만을 일어나는 상황이었다. 3월에 신의군 도령 낭장 박희실, 지유 낭장 이연소가 비밀리 자신과 김준, 유경, 김승준, 이공주, 장군 박송비, 대정 박천식, 별장 동정 차송우, 낭장 김홍취, 김대재, 김용재, 김식재 등이 논의하여 4월 8일에 최의를 죽이기로 결심한다. 하지만 김대재가 장인인 최양백에게 참여하도록 권유하기 위해 이 계획을 얘기하는 바람에 최의를 살해할 계획이 누설된다.

하지만 김대재가 최양백에게 이 계획에 참여시키기 위해 얘기했다가 누설되어 김대재의 처가 최양백이 최의에게 얘기한 사실을 들었기 때문에 김대재에게 얘기하였고, 이를 김대재가 김준에게 전하였다. 이에 김준이 다시 박희실, 이연소 등에게 일이 누설되어 일을 지체할 수 없다고 얘기하여 이에 자신을 포함한 지난번에 모의한 자들과 별장 백영정, 대정 서정, 이제, 지유 조문주, 오수산 등이 소집되었다.

지유 조문주, 오수산과 함께 한종궤를 잡아 죽이고, 이일휴의 집에 찾아서 그를 베었다. 결국 신의군과 야별초들의 공격으로 붙잡아서 최의를 죽이는데 성공하자 무오정변에 참여한 공으로 1258년 3월에 위사공신에 책봉되면서 추밀원부사가 되었다.

1259년 5월에 자신의 고향이자 향리인 진주가 창의현으로 승격되었으며, 1261년에는 벽상공신에 봉해지면서 상장군이 된다.

4 김준 살해와 집권

최의가 죽고 김준이 실권을 잡자 초기에는 잘했지만 갈수록 백성들의 원성과 왕의 원망을 사게 되었다. 김준의 아들과 토지 문제로 다툰 것과 자신의 처가 김준의 노예를 죽였다가 김준이 자신의 처를 유배보내려고 하자 이 때문에 그를 미워하게 되었다.

1268년 12월에 왕인 원종의 명을 받아 최은, 김경, 낭장 강윤소와 함께 거사하여 김준을 죽이고 정권을 장악한다. 그 공으로 자신의 고향인 진주는 창의현에서 의령군으로 승격하게 되었다.

왕인 원종이 최은, 김경 등을 통해 이를 견제하려고 하였으며, 1269년 6월에 최은, 김경 등의 세력이 커지자 최은, 김경 등을 죽인다. 원종의 측근으로 김준의 가산을 몰수하고 최은, 김경 등에게 뇌물을 바친 어사대부 장계열, 대장군 기온 등을 유배보냈다.

5 몽골과의 대립

자신은 전대집권자들과 마찬가지로 몽골군에 대해서 강경하게 항전하자는 입장으로 원종은 온건한 입장이었는데 몽골이 수도를 강화도에서 개경으로 옮기라고 압박하면서 원종이 수도를 천도하려고 하자 이를 반대하였다. 원종이 이를 듣지 않자 전 장군 권수균, 대경 이서, 장군 김신우 등에게 그 죄를 물어 죽이고, 1269년 6월 18일에 삼별초 중의 하나인 야별초를 동원해 강제로 원종을 폐위시키고 선왕인 고종의 차남이자 원종의 동생인 안경공 왕창을 국왕으로 옹립하면서 교정별감이 되었다.

11월에 몽골이 자신의 나라에 와 있던 고려의 태자를 내세워 원종, 안경공, 임연에게 몽골에 입조하여 설명할 것을 압박하여 12월 19일까지 몽골에 오지 않으면 대규모의 군사를 파견하겠다고 협박하였다. 이 와중에 장군 유원적, 낭장 정수경 등이 자신을 죽이고 원종을 다시 복위시키려고 하자 장군 윤수를 통해 그 사실을 알게 되고 그들을 잡아죽였다.

몽골이 고려의 태자를 내세운 것은 원종의 세력을 강화시켜 고려에 대한 몽골의 영향력을 크게 하려고 한 것이었으며, 이 압력으로 어쩔 수 없이 11월 23일에 안경공 왕창(영종)을 폐위시키고 원종을 복위시켰다. 12월에 장군인 김문비, 조오의 아들 조윤번 등이 자신을 죽이려고 했다가 김문비가 자신에게 이 사실을 말하자 조오, 조윤온을 유배보내고 조윤번, 장호 등 7명을 죽였다.

1269년 12월 19일에 몽골이 입조하라는 것을 임연, 왕창은 거부하고 국왕인 원종이 단독으로 가서 원종이 몽골에 입조하였다. 임연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대몽항전을 하겠다는 의지로 삼별초 중의 하나인 야별초를 내륙 각지에 파견하고 육지의 인원과 물자를 섬에 대피시키는 임무를 수행하게 하여 몽골과의 장기항전을 재개 할 태세를 만들었다. 이는 몽골군이 요새전, 산악전, 수전에 약하다는 점을 이용한 것이었다.

6 최후

1270년 1월에 원종에게 개경으로 환도하여 해명하라는 명을 받지만 이를 거역하고, 여러 도의 백성들을 강제로 섬에 들어가 살게 하면서 한동안 근심하다가 2월에 등창으로 병사하였으며, 사후 참지정사를 더하면서 장렬공이라는 익호에 봉해졌다.
  1. 물구나무로 돌아다녔다는 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