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통

張統

생몰년도 미상

모용부의 인물.

요동 사람으로 낙랑군, 대방군을 점거하면서 고구려와 몇 년간 싸웠지만 해결하지 못했는데, 313년에 미천왕의 공격을 받아 낙랑군이 멸망했고 왕준의 설득으로 백성 1천여 가구를 인솔해 모용외에게 귀부했다.

모용외가 낙랑군을 기존의 평양 부근이 아닌 요서 쪽에 낙랑군을 새로 설치하면서 낙랑태수가 되었으며, 장통이 지배하고 있던 낙랑군과 전연에 귀부해 위치한 낙랑군이 이름이 같아서 혼동할 수도 있다. 그러나 홍양길의 십육국강역지에서 여기서 말하는 군과 현은 모두 한 낙랑군의 옛 지역이 아니라고 했으며, 이를 통해 모용외가 장통을 위해 만들어 준 낙랑군은 교치 군현인 것을 알 수 있다.

319년에 고구려에서 여노자를 보내 우하성을 점거하자 모용외의 지시로 우하성을 공격해 여노자를 포함해 1천여 호를 포로로 잡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