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갑영

鄭甲泳

1 개요

대한민국의 교육자. 김한중에 이어 17대 연세대학교 총장에 올랐다.

2 생애

1951년 8월 22일 전라북도 김제시에서 태어났다. 전주고를 졸업하고, 1971년에 연세대 상경대학 경제학과에 진학했다. 1975년 졸업하고 한국은행에 입행하여 근무하던 중 펜실베이니아 대학교 대학원에 진학해 경제학 석사, 1985년에는 코넬 대학교에서 경제학 박사 학위를 받았다. 전공은 산업조직론과 국제경영학이다.

박사 학위를 취득한 후 1986년 귀국하여 연세대학교 상경대학 경제학과 조교수로 부임하였다.
1999년 연세대 경제연구소 소장, 2000년 동서문화연구원장 등을 거쳤고 2004년에는 연세대 정보대학원장과 교무처장에 올랐다. 2006년에는 원주캠퍼스 부총장으로 영전했다. 2008년에 이임했고 2012년에 연세대 총장으로 선임되었다.

저서로는, 교양서로 《카론의 동전 한 닢》 등이 있으며, 전공서로 《미시경제학》(성백남 공저) 등이 있다.

3 연세대 재임 시절

3.1 총장 취임 이전

총장 취임 이전 원주캠퍼스 부총장[1]으로 재임, 원주캠퍼스에 전국대학 최초로 RC (Residential College) 프로그램을 도입하여, 기숙사를 추가 신축하여, 신입생 전원이 기숙사에서 생활하면서 학업을 할 수 있는 기반과 제도를 마련하였다. 성공적인 RC 프로그램 추진으로, 원주캠퍼스 생활 및 학업 환경이 많이 개선되었다. 또한, 향후 송도 국제캠퍼스에서 실시된 RC 프로그램 추진의 좋은 벤치마킹이 되었다. 2008년 대학 교회를 완공하고 봉헌하였다.

3.2 국제캠퍼스 이전 추진

2011년 말 연세대 총장으로 선출, 2012년부터 본격적인 임기 시작. 2006년 이래로 누가 갈 것인가를 두고 폭탄 돌리기가 이어지고 있던 송도 국제캠퍼스 이전 문제를, 아직 입학하지 않은 2013년 1학년 신입생들을 보낸다는 방안을 내놓아 해결(?)했다. 당시 시점에서 학교 안에 존재하여 의사 표명을 할 수 있는 세력들로서는 '어쨌든 내가 가는 건 아니니까...' 하는 심리가 작용하여 반대가 약해질 수밖에 없었던 점을 예리하게 찌른 셈. 정 총장의 의도는 적중하여, 2012년 4월 초 당시 총학생회 주도로 모인 항의 집회가 백양로에서 벌어졌지만 이후 반대 운동은 동력을 상실하였다.

3.3 백양로 지하공간 공사

2012년 하반기부터는 연세대 신촌캠퍼스 정문에서 본관 앞까지 이어지는 주도로인 '백양로'의 지하공간을 개발하는 공사를 추진했다. 이 과정에서 학생과 교수들의 단식과 농성 투쟁을 비롯한 강력한 반발이 있었음에도 강경하게 추진. 총학생회에 대해서는 그간 오랜 기간 문제가 제기되어 온 자치공간 확충을 백양로 지하공간에 반영하겠다고 약속했지만, 2015년 하반기 완공된 지하공간의 모습은 2012년 당시 학생사회가 우려했던 바와 똑같이 상업공간과 주차장, 그리고 학생이 아닌 교직원만이 이용할 수 있는 고급 레스토랑과 컨벤션 룸으로 가득 차 있었다. 하지만 우려의 목소리들을 반영해 현재는 학생들도 레스토랑을 이용할 수 있으며, 예약만 한다면 학생의 경우 저렴한 가격에 돈을 내는 게 문제라면 문제겠지만 스터디룸을 사용할 수 있다. 2016년 현재 일부 학생들의 불만은 여전하지만 대다수 학생들이 그러려니 하고 다니는 상태.

3.4 용재관 철거 논란

백양로 지하공간 공사와 더불어 용재관을 철거하고 신경영관을 건립했다. 당시 경영대는 상경대와 한 건물을 쓰며 만성적인 강의실 부족 사태를 겪고 있어, 공간 확충의 필요성 자체는 공감대가 형성된 상황. 그러나 기존에 존재하는 유휴공간 활용의 효율화를 통해서도 공간 부족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는 반론도 제기되는 상황이었다. 사실 언젠가 지을 경영관이었지만, 총장 개인적으로는 현 용재관 부지의 신축을 고사했다고 한다. 차라리 펜타곤마냥 대우관을 리모델링 및 증축하는게 어떻겠냐는 프로포즈도 했다고. 차라리 현 용재관 부지의 신축을 밀어부치는 모양새였다면 상대동문회에서라도 환영받았을 것을, 여기저기 눈치보느라 상대동문회에서도 환영받지 못하는 총장이 되어버렸다. 참고로 과거 대우관 이전 상경대 및 경영학교실단으로 사용하던 백양관의 신증축도 대안으로 고려됐으나, 현재 학부대학과 학내 기관들이 즐비하게 위치하고 있는 공용건물인 점과 결정적으로 백양관 지하에 파워플랜트가 자리잡고 있어 리모델링 혹은 재건축시 신촌캠 50% 이상의 가동이 중단되기 때문에 해당 대안은 철회됐다.

더군다나 용재관은 연세대 초대 총장 용재 백낙준 선생의 업적을 기리기 위해 1957년 건립된 건물로서, 건물의 역사가 깊을 뿐만 아니라, ‘대한민국 건축사 면허 1-1호’를 보유한 한국 최초의 건축사 김재철 선생이 설계를 했다는 점과 연세대 영어영문학과 출신의 소설가이자 올해 9월 25일 침샘암으로 별세한 故 최인호 씨(68)가 쓴 ‘바보들의 행진’의 무대가 된 곳이라는 점 등 문화사적 의미가 깊은 등록문화재여서 논란이 되었다.[2]

하지만 2016년 현재 경영대 학생과 교직원들뿐만 아니라, 타단과대는 물론 심지어 주변의 이대나 서강대 등 타대생들까지 소문듣고 와서 경영대 도서관을 사용(아닌 애용)한다. 진달래는 지키지 못했지만 타 단과대 도서관 열람실 자리는 지키시는 그 분들의 이중성

3.5 청소노동자 인력감축 추진

2014년 말 국제캠퍼스 기숙사의 청소, 경비노동자들에 대해 대대적인 인력 감축을 추진, 노조가 이에 반발함에 따라 2015년 여름까지 이어진 긴 분쟁이 시작되었다.

기존 신촌캠퍼스의 경우 '연세대 비정규노동문제 해결을 위한 공동대책위원회(공대위)'라는 명칭으로 학생단체들 간 연대체가 구성되어 있어 비정규직 노동자들에 대한 강력한 지지 세력이 구축되어 있어 인력감축 단행이 쉽지 않았던 데 비해, 송도의 경우 새로 지어진 캠퍼스라 노조 자체도 역사가 1년 남짓으로 짧고, 학생들도 1년 있다 떠나는 신입생들 뿐이라 조직적인 연대가 구축되어 있지 않아 인력 감축이 비교적 간단할 것으로 예상한 것으로 보인다.

총무팀장의 말에 따르면, 국제캠퍼스에서 먼저 대규모 인력 감축의 선례를 마련해 놓으면 곧 이어 신촌캠퍼스에서도 백양로 지하공간 완공에 발맞춰 무인경비시스템을 대대적으로 도입하면서 경비인력을 감축한다는 계획이었다고.

이에 여성노조 산하 국제캠퍼스 비정규직 노조가 농성 투쟁에 돌입, 이듬해인 2015년 봄 민주노총 산하 신촌캠퍼스 비정규직 노조도 연계 투쟁에 돌입하게 된다.

결국 오랜 농성 투쟁과 학생 연대 활동 끝에 학교는 비정규직 노동자들에 대한 인력 감축 방침을 전면 철회했다.

이 일을 계기로 국제캠퍼스에서는 '기숙사노동권수비대'라는 이름으로 비정규직 노동자들에 연대하는 학생들의 조직체가 자발적으로 결성되는 등[3] 오히려 학교의 의도와는 반대로 국제캠퍼스에서의 학생 자치활동의 불씨를 지펴준 셈.

더불어 이 투쟁을 계기로 신촌캠퍼스 상근직 노동자들도 민주노총 일반노조 산하 연세대 무기계약직 노조를 출범시키는 등, 노무관리라는 측면에서 봤을 때는 연세대 쪽에 연이은 악재를 탄생시킨 무리수였다고 할 수 있다.

정갑영 총장이 사상 유례없는 대대적 인력감축을 추진한 이유에 관해 여러 가지 해석이 나왔다. 그 중 가장 힘을 얻고 있는 해석은, 거의 30여년만에 나오는 연임 총장이라는 영예를 바탕으로 정계 진출을 꿈꾸던 정갑영 총장이 백양로 지하공간 준공이라는 업적을 내세워 총장 연임에 도전하려 했는데, 지하공간 공사에 투입된 막대한 비용으로 인해 트집이 잡혀 반대파에 발목을 잡혔다는 것이다. 이 비용을 만회하기 위해 비정규직 인력 감축을 비롯한 긴축 정책을 펴려 했다는 것.

3.6 학사제도 개편 시도

재수강 횟수를 3회로 제한하는 학사개편을 단행했다. 이렇게만 들으면 "응? 재수강 3번까지 할 수 있으면 충분한 거 아닌가?"라고 생각할지 모르지만, 이 제한은 한 과목당 3번까지 재수강할 수 있다는 게 아니라, 모든 과목을 통틀어 졸업할 때까지 단 3회만 재수강할 수 있다는 것이다.

이외에도 국제캠퍼스의 비인기학과를 통폐합하려 하다가 학생들의 반발에 부딪혀 철회하는 등, 정갑영 총장의 임기 내내는 학생들과의 갈등과 분쟁으로 점철된 나날이었다.

3.7 연임 시도와 좌절

2015년 말, 꿈에 그리던 연세대에서 30여년만에 탄생하는 연임 총장에 도전하게 된다.[4]

이를 위한 사전작업으로 이사회 정관을 개정을 추진했다. 즉 정관 상 정년이 65세로 규정되어 있는 것의 세부 조항을, 기존에는 임기 만료 시까지 65세를 넘기지 않을 사람만 후보로 출마할 수 있다고 되어 있었는데, 정갑영 총장이 이를 선거 출마 당시에 65세를 넘기지만 않으면 출마할 수 있다고 고친 것이다.

이 정관 개정 추진의 절차적 정당성을 비롯해, 학생 사회와 교직원들 사이에서는 총장 선출 절차의 민주성과 정당성을 둘러싸고 큰 논란이 벌어졌다.

결국 총장 연임에 실패하고 2016년 초 임기를 마감..그동안 저질러 온게 있는데 연임총장되는게 이상한거지
  1. 연세대 전체를 총괄하는 총장 다음 가는 직위인 부총장들 가운데서도 원주캠퍼스를 담당하는 부총장. 즉 독립적인 원주캠퍼스의 특성상 권한과 책임이 부총장 위주로 되어 있음
  2. 인용출처 #
  3. 최초 제안자들이 1학년 기숙사 사생들이었고, 이후 이들의 요청에 따라 신촌캠퍼스의 학생단체들이 결합
  4. 예전 문서에서는 연세대 사상 최초의 연임총장 도전이라고 되어 있었지만, 절대 사상 최초는 아니다. 이는 홈페이지 역대총장 명단만 봐도 확인이 가능한 내용으로 1980년대까지는 연임 총장이 존재한다. 1988년에 안세희교수가 총장직을 물러나면서 총장직선제가 도입되어 박영식교수가 총장으로 선출된 이후로는 연임자가 없었으니 까마득한 일이가는 하나, 분명 사상 최초의 연임 총장은 아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