쥘 비앙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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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뮬러 원 영구결번
#00000 '''No. 17'''
이름줄스 비앙키(Jules Bianchi)
국적프랑스
생년월일1989년 8월 3일
사망2015년 7월 17일(만 25세)
출생니스
레이스34경기
월드 챔피언0회
그랑프리 우승0회
포디움0회
폴포지션0회
패스티스트랩0회
누적 포인트2pts
첫 레이스2013년 호주 그랑프리
마지막 레이스2014년 일본 그랑프리
소속팀마루시아 F1(2013~2014)

팀을 살린 기적의 사나이
그러나 불의의 사고로 생을 달리한 차세대 유망주

1 소개

2012년 포스인디아 테스트 드라이버를 거쳐 2013년 마루시아를 통해 F1에 데뷔했던 프랑스 국적의 레이싱 드라이버. 페라리에서 공을 들여 키우던 유망주였으며 비앙키가 명을 달리하지 않았다면 키미 라이코넨이 2016 시즌까지 페라리에 남지 못했을 것이라는 예상을 하는 팬들도 있었다. [1]
데뷔 2년차인 2014 시즌 모나코 그랑프리에서 당시 매 그랑프리 꼴찌를 담당하는 마루시아 레이스카를 타고 9위로 체커를 받으며 팀 창단 이후 최초의 포인트를 선사하며 뜨거운 주목을 받았다. 게다가 저 9위도 패널티로 인해 1계단 하락한 순위였다! [2]
이후 마루시아를 계승한 매너 레이싱의 파스칼 베를라인이 2016년 7월 열린 오스트리아 GP에서 1포인트를 획득하기 전까지 비앙키는 매너의 최초이자 마지막 포인트를 가져다 준 드라이버였었다.

2 사고와 사망

그러나 그 이후 열린 일본 그랑프리에서 레이스 도중 사고로 리타이어한 자우버 소속 아드리안 수틸의 차량을 수습하던 리커버리 차량과 빠른 속도로 충돌, 머리를 심하게 다쳐 급히 응급실로 후송되었다. 보통 F1 차량은 웬만한 사고에서도 드라이버를 안전하게 보호하는 장치들이 많지만, 차량이 리커버리 차량 (정확하게는 크레인 차량)의 밑으로 들어가면서 그대로 헬멧을 강타당해 심각한 뇌손상을 입었다. 그 날 일본 그랑프리는 즉각 중단 후 마무리되었다.[3] 여담으로 이 때 사고 이후로 태풍의 영향 때문에 후송용 헬기가 뜨지 못해 엠뷸런스에 비앙키를 태운 다음 병원에 후송했는데, 그 때문에 시간이 많이 지체되었기 때문에 무리해서 일본 대회를 강행한 FOM 측은 이후 안전을 고려하지 않았다고 많이 까였다. 이후 여러 보도가 있었지만 줄스 비앙키는 혼수상태에 빠지고 말았고 이후 일본에서 고향 니스로 옮겨져 치료를 받으며 희망을 기다렸으나 2015년 7월 17일 고향 니스에서 숨을 거두었다. 수틸은 본인의 사고에 영향을 받아 비앙키의 사고가 일어난 것에 죄책감으로 매우 괴로워했으며[4] 이후 비앙키의 장례식에도 참석해 비앙키의 마지막 가는 길을 추모했다.

F1 관계자와 팬들은 모두 깊은 슬픔에 빠졌고 사망 직후 열린 헝가리 그랑프리에서 그동안 함께 레이스를 했던 동료 드라이버들은 레이스 시작 전 그리드 위에 모여 서로 어깨동무를 하고 원을 그리면서 추모했다.

3 그 외

줄스 비앙키의 사망은 1994년 아일톤 세나가 레이스 도중 충돌 사고로 사망한 이후 F1에서 발생한 최초의 드라이버의 사망사고였다. 이후 이 사고의 원인을 조사하고 책임을 묻는 과정이 진행되었고 FIA는 여러 후속 조치를 마련해 안전 규정을 대폭 강화하게 되었다. 대표적으로 당시 주된 원인중 하나로 지목되었던 레이스 스타트 시간이 조정되어 기존 시간보다 1시간 일찍 시작하도록 조정되었다.

그리고 그동안 말로만 이뤄졌던 오픈 콕핏 차량들에서 드라이버의 안전을 보다 강화하는 장치들의 논의가 본격적으로 물살을 타게 되었다. 2009년 헝가로링에서 있었던 마싸 스프링 크레쉬 사건 이후로도 미적 거리던 각 팀과 FIA가 움직이기 시작한 것이다! 2015년까지는 이렇게 할까 저렇게 할까 수준의 논의만 반복되어 지다가, 2016년에는 봄 테스트중 스페인에서 페라리가 헤일로 시스템을 들고 나와 테스트런을 마쳤으며, 레드불에서도 중국 GP가 끝난 이후 헤일로의 대안 솔루션을 완성해 가고 있으며, 다음 경기인 러시아 그랑프리에서 첫 선을 보였다. 이후에도 몇몇 그랑프리에서 대부분의 팀들은 헤일로 시스템 테스트를 하였다.
  1. 실제로 페라리에서 비앙키의 사고 이후 그동안 F1에서 심심치 않게 나오던 3카 이야기를 언급하며, 만약 페라리가 3번째 차를 달리게 했다면 그 주인은 쥘이었을 것이라고 공식 인터뷰를 했었다.
  2. 팀을 창단했던 버진시절부터 단 1포인트도 획득하지 못한 마루시아에서 무려 5초 가산 패널티를 받고도 얻어낸 성적
  3. 태풍 판폰으로 인한 폭우가 원인이다.
  4. 수틸이 지켜보는 가운데 비앙키의 사고가 일어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