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대덕

陳大德

생몰년도 미상

당나라의 인물.

직방랑중으로 641년에 고구려에 사신으로 파견되었으며, 고구려에서 돌아와 8월 10일에 귀국했다. 진대덕은 고구려의 경계로 들어가 산천, 풍속을 알기 위해 도착하는 성읍마다 그 곳을 지키는 사람들에게 비단을 주면서 자신은 본래 산수를 좋아하니 이 곳에 명승지가 있다면 보고 싶다고 말했다.

그러자 지키던 사람이 기뻐해 진대덕을 이끌고 돌아다녀서 가지 않은 곳이 없었다. 진대덕은 고구려에서 중국인을 만나게 되면 그들의 이야기를 들었는데, 집은 어느 군에 있었다던가, 수 말년에 징집되었으나 전쟁 중 포로가 되었다던가, 고구려에서 떠돌아다니는 여자를 처로 삼게 해 거주하게 되었다던가, 현지인들과 섞여 사는 중국인 포로가 부근 인구의 거의 반이나 될 것이라던가 등이었다. 진대덕은 그들이 친척의 생사 여부를 물으면 걱정없다고 대답했으며, 그 말에 포로가 된 중국인들은 눈물을 흘렸다. 이렇게 며칠이 지나자 진대덕을 바라보고 곡을 하는 포로들이 가득했다.[1]

진대덕은 당나라에 귀국해 당태종에게 보고하면서 그 나라(고구려)에서는 고창[2]이 망했다는 소식을 알고 크게 두려워해 관리들이 부지런한 것이 보통 때보다 배가 되었다고 했다.
  1. 즉, 고수전쟁으로 포로가 된 중국인들이 엄청나게 많았다는 의미이다.
  2. 타클라마칸 사막의 오아시스에 세워진 나라였다. 즉, 서역국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