채찬

蔡瓚

생몰년도 미상

후한 말의 인물. 자는 무규(茂珪).

후한 말에 여러 채씨들이 가장 번성했는데, 언국의 상을 지냈고 채모와 같은 할아버지였다고 한다.

풍속통의에 따르면 동래태수 채백기(蔡伯起)의 아들로 왕부가 남양태수에 임명되면서 채백기의 아들을 등용시키려 했는데, 채백기는 채찬이 아직 어리다고 해서 등용되지 않았다. 동생인 채염이 등용되고 1년 후에 등용되었는데, 채찬은 14살이 되도록 사람들에게 모습을 드러내지 않고 항상 병을 핑계로 약을 지으러 다녔다.

18살이 되어서 세상에 나와 평춘현에서 평춘장을 맡다가 20세 때 자신은 약관의 나이로 평춘장은 맡을 수 없으니 숙위 자리를 부탁한다는 상서를 올렸으며, 상서가 나이를 늘려 등용되고 나이를 줄여 힘든 곳을 피하는 폐해를 조사해 채찬의 관직을 파면할 것을 청하자 채찬은 무당좌위로 좌천되었다.

160년에 거기장군 풍곤이 남쪽에 무릉의 만족을 정벌하러 가면서 군곡후가 되었으며, 채찬은 집으로 돌아와 은둔생활을 하다가 군공으로 산양장을 제수받고 하비상에 이르렀다.

창작물에서

같은 꿈을 꾸다 in 삼국지에서는 채모의 종제로 이준경이 형주에 외교를 하러 오면서 채모가 사람을 보내 이준경을 초대했는데, 이준경이 찾아오자 와병 중이신 종형을 대신한다면서 이준경을 접대했다. 후원에 있는 독립된 내실에서 이준경에게 채모와 단독으로 면담하도록 했지만 안내역으로 나선 황충, 이준경의 호위인 허저, 주태 등이 함께 들어가려고 하자 난감한 표정을 지었다.

밖의 소동을 들은 시비 하나가 나와서 귀에 뭐라고 속삭이자 채모가 모든 분들의 입실을 허락하면서 오늘의 대화가 밖으로 흘러가서는 안될 것이라고 전했으며, 밖으로 이 일이 흘러나간다면 채가의 이름으로 가만두지 않겠다고 경고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