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호(북위)

崔浩, ? ~ 450년

청하(淸河) 최씨 출신으로, 3세기 중엽 중국 오호십육국시대 말기의 인물이다.

아버지인 최굉(崔宏)은 북위 초기에 제도의 정비 과정에서 지휘자 역할을 하였으며, 태조(太祖) 도무제(道武帝) 때 정책 고문을 맡았다. 최굉은 북위 태종(太宗) 때 유일한 중국 한족 출신의 대신이었다.

최호는 유학, 사학, 서도, 천문, 술수 등에 능하여, 어린 나이에 직랑(直郞)으로 임명되었으며, 북위 태무제, 431년에 한족이 될 수 있는 최고의 관직 사도(司徒)에 임명되었다. 최호는 황제의 두터운 신임을 바탕으로, 20년 동안 북위 조정에서 중요한 업무을 당담하였다.

그러나 태무제 429년에 북위의 국사 편찬 작업의 총책임을 맡았는데, 북위 선비족 조상들의 부정적인 부분에 대하여 여과없이 사실적으로 묘사하여 태무제와 선비족에게 숙청되었다.(일명 국사 필화사건) 이때 최호의 일족과 내외손 관계에 있었던 화북 한족 귀족 128명이 함께 숙청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