케이틀린(리그 오브 레전드)/리그의 심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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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보: 케이틀린
날짜: CLE 20년 12월 31일

관찰

케이틀린이 대전당에 들어서자, 모자에 달린 렌즈들이 주위를 꼼꼼히 살펴볼 수 있게끔 윙윙 소리를 내며 찰칵찰칵 뻗어 나와 초점을 맞춰준다. 길다란 라이플을 가볍게 어깨에 걸치고 있는 품이 오랫동안 다뤄와서 손에 익은 티가 난다. 자동으로 움직이는 장치들과 매력적인 몸매가 돋보이는 의상이 보는 이들의 시선을 붙든다.

케이틀린은 수사관다운 날카로운 눈매로 대전당에 놓인 물건들의 배치를 확인한다. 그리곤 회고실로 이어지는 대리석 문을 단호한 표정으로 면밀히 살핀다. 이제 필요할 경우 이 곳에서 범죄가 발생했는지 판가름할 수 있다는 자신이 들자, 그녀는 문을 밀고서 안으로 들어선다.

회고

정신이 번쩍 들도록 서늘한 어둠이 살갗에 내려앉는 것이 꼭 잠복 근무를 서고 난 새벽, 몸에 내려앉는 이슬처럼 느껴졌다. 이런 생각에 화답이라도 하듯, 빗방울이 등 뒤에 깔린 돌멩이들을 두드리는 경쾌한 소리가 들려왔다. 깜짝 놀란 케이틀린은 휙 몸을 돌리다 뭔가 딱딱한 데에 팔꿈치를 세게 부딪쳤다. 자세히 들여다보니 내셔 남작을 닮은 길쭉한 생물이 섬세하면서도 근사한 그래피티 작품으로 그려져 있는 지저분한 벽돌 벽이었다. 머리 속에서 반사적으로 의혹이 고개를 들자, 벽에서부터 옆으로 난 길다란 골목길을 눈으로 쭉 훑었다. 그리곤 흠칫 놀라며 터져 나오려는 가쁜 숨을 가까스로 꿀꺽 삼켰다. 회복의 길. 여기서 그렇게 많은 시간을 보냈음에도, 발을 들일 때마다 등줄기가 오싹하는 곳이었다. 시선을 위로 들자 우뚝 솟은 콘스턴스 타워의 첨탑의 익숙한 불빛이 도시를 비추며, 데마시아 사람들에게 도덕성의 끈을 절대 늦춰선 안된다고 타이르는 듯 했다. 이번엔 정말 잡았다 싶었던 의문의 C가 도망가는 데에 바로 이 탑이 톡톡히 한 몫을 했다는 건 정말 아이러니한 일이 아닐 수 없었다.

그 날 일은 하나도 빠뜨리지 않고 모두 다 기억하고 있다. 이젠 세상을 떠난 사랑하는 사람의 사진을 거울에 붙여놓고서, 그 때 내가 이랬다면 결과가 달라졌을 거라고 늘 생각하는 미련 많은 여인인 양 케이틀린의 머리 속에서 한 시도 떠나본 적이 없는 기억이다. 추격전은 데마시아의 북적이는 명예 광장에 있는 기술자 조합 회관의 로비에서부터 시작됐다. 상급 마법 기계공학 박판 제작을 공부하던 학생 하나가 조합에 가입하려면 뭐가 필요한지 모라즈 워싯에게 물어보려고 우연히 회관에 들른 것이 발단이었다. 이 학생은 평범한 사무직원 워싯이 목요일 아침마다 상관들 몰래 소위 ‘선택적 스트레스 치료’라는 걸 받느라고 자리를 비운다는 건 당연히 몰랐다. 케이틀린은 이 ‘선택적 스트레스 치료’라는 표현을 하도 많이 들어서, 실은 이게 아내와 아이들이 알면 곤란한 모종의 행동이라는 걸 잘 알고 있었다. 데마시아가 시민들에게 들이대는 엄격한 잣대에 비춰볼 때 어쩌면 밤늦게까지 술을 마시며 리그 경기를 보느라 어디 숨어 잠이나 자고 왔을 가능성도 없진 않지만, 데마시아가 도덕성의 보루라고 우쭐거리기엔 부끄러운 일이라는 사실은 변함이 없었다. 어쨌거나 이 학생이 워싯의 사무실 문을 벌컥 열고 들어가자 워싯의 책상이 엉망진창으로 흐트러지고 창문은 활짝 열려 있는 게 아닌가. 학생이 워싯의 상관을 찾아 이 사실을 알렸고, 덜컥 걱정이 든 그 상관이 관할 경찰에 신고를 했다.

케이틀린은 마침 시내에서 C가 남긴 수수께끼의 카드를 조사하는 중이었다. 연쇄 강도 행각의 현장에 남겨둔 거의 비슷하게 생긴 카드 중 네 번째 증거물이었다. 네 장 모두 C라는 단 한 글자만 쓰여 있을 뿐이었고, 이번 건 프렐요드의 얼음 무희 수정 회관에 있던 천상의 수정을 탈취한 자리에 대신 놔둔 카드였다. 케이틀린은 이 C라는 자가 미묘하게 색조가 다른 종이를 사용해서 다음 번엔 발로란의 어느 지역을 노리고 있는지를 암시하고 있는 것이라 믿었다. C가 쓰는 잉크와 글씨체에 분명 각각 어떤 의미가 담겨 있는데, 아직 그게 뭔지 풀어낼 수가 없었다. 하지만 데마시아 왕궁에서 밀손의 대검을 훔쳤을 때의 사건으로 미루어보면 이 자가 범행 현장에 다시 나타날 것이 틀림 없었고, 조합 회관 사건이 전해졌을 땐 마침 그 곳의 경찰관과 대화를 나누고 있던 참이었다. 직감이 발동한 케이틀린은 경찰관과 함께 움직였고, 현장에 도착했을 땐 로비에 덩치 큰 경비원들이 쫙 깔려 있었다.

워싯의 상관은 최소한 워싯이 특별 출입 허가를 가지고 있던 선임 기술자 사무실을 확인해 볼 정도의 정신머리는 있는 사람이었다. 아니나다를까, 그 사무실은 이미 난장판이 되어 있었다. 게다가 금고 문이 활짝 열려 있고 수년 전 리그 챔피언 뽀삐가 데마시아로 배달했던 보물, 수호자의 투구가 사라져 버렸던 것이다. 이 투구는 마력 튜닝을 위해 기술자 조합에 맡겨졌던 것인데, 조합의 멍청한 관리들은 이 작업을 수주한 것조차 비밀리에 부치고 있다고 케이틀린을 거듭 안심시켰었다. 금고에는 케이틀린이 해독할 수 없으리라 비웃는 듯한 카드 한 장이 보란 듯 남겨져 있었다.

보안 팀은 즉시 건물의 출입을 봉쇄했다. 사건 경위에 대한 보안 팀장의 설명을 듣던 케이틀린의눈에 아까부터 이상한 표정으로 자길 뜯어보는 보안 담당자 한 명이 들어왔다. 그다지 의심을 살만한 행동까지는 아니었지만 5분여 동안이나 그 쪽으로 자꾸 신경이 분산돼서, 케이틀린은 남자에게 말을 걸어보기로 했다. 그런데 그 쪽으로 네 걸음을 채 떼기 전에 남자가 계단을 달려 올라가기 시작하는 것이 아닌가.

케이틀린은 계단 열 개를 단숨에 뛰어올라 남자를 쫓아갔다. 마침내 옥상에 다다랐을 땐 남자가 콘스턴스 타워 꼭대기에 매단 줄을 잡고서 훌쩍 몸을 날리는 것이었다. 길슨의 견습 회관 옥상까지의 거리를 미리 계산하고 탈출로를 마련해 둔 게 분명했다. 이렇게 남자를 놓쳐버릴 순 없기에 케이틀린은 라이플을 겨눠 들고 남자의 다리를 조준했다. 줄을 타고 날아가는 지금으로선 어디로도 피할 수가 없고, 타이밍 역시 더할 나위 없어서 절대로 놓칠 턱이 없었다.

그리곤 방아쇠를 당겼다.

번쩍하고 섬광이 일면서 침입자가 줄에서 떨어졌다. 총알이 이렇게 빨리 남자를 맞췄을 리가 없는데, 뭔가 이상했다. 허공에서 떨어져 내리는 남자를 보면서, 시간이 거북이처럼 느릿느릿 흐르는 기분이었다. 마침내 남자가 건물들 틈으로 사라지는 것까지 확인한 케이틀린은 황급히 다시 계단을 달려 내려갔다.

바로 그 곳에 지금 다시 서 있는 것이다. 남자가 떨어져 내린 회복의 뒷골목에. 남자가 여기 뒷골목으로 떨어진 걸 본 목격자들도 사방에 깔려 있지만, 정작 골목 안엔 아무도 없었다. 시신도, 핏자국 하나도, 아니면 남자가 살아 있다는 증거도. 심지어 그가 이 골목을 벗어나는 걸 본 사람도 하나 없었다. 그 날 밤, 억수같이 퍼붓는 비 속에 케이틀린은 몇 시간이나 버티고서 해답을 찾으려 이 곳을 샅샅이 뒤졌었다.

그 기억에 화답이라도 하듯, 비에 흠뻑 젖은 자갈길에서 사각 판 하나가 스르륵 미끄러지며 열렸다.

케이틀린이 놀라서 뒤로 펄쩍 뛰며, 익숙한 동작으로 어깨에 매고 있던 라이플을 바닥에 열린 구멍을 향해 겨눴다. 낄낄대는 저음의 웃음소리가 어둠 속에 울려 퍼졌다.

“나 참 교묘하지 않아?"

웃던 목소리가 말을 걸었다.

케이틀린은 잠깐 동안 얼떨떨해 있다가 서둘러 대답했다.

“천천히 거기서 나와!"

“에이, 그렇겐 못하지.”

목소리는 즐거워하는 기색이었다.

“셋을 세겠다. 잘 보이게 두 손을 들고 나오지 않으면, 이 총구가 뿜어내는 불로 그 안을 밝힐 수 밖에 없어.”

케이틀린은 이런 일쯤 하도 많이 겪어서 아무렇지도 않았다.

“하나…”

“그렇겐 못할 걸. 네가 그럴 배…”

“둘…”

“지금 날 쏘면 내가 그 때 어떻게 빠져나갔던 건지 절대 알 수가…”

“셋.”

이 말과 함께 케이틀린이 방아쇠를 당겼지만, 빈 탄실을 공이가 때리는 소리만 허공에 울릴 뿐이었다.

“리그에 들어오려는 이유가 뭔가, 케이틀린?"

목소리가 갑자기 엄숙하게 변했다.

“질문은 내가 한다! 넌 누구…”

케이틀린은 심문 당하는 건 질색이었다.

“리그에 들어오려는 이유가 뭔가, 케이틀린?"

목소리가 담고 있는 통제력을 알아채자, 케이틀린의 등골을 타고 소름이 쫙 끼쳤다.

“그 해답은 이미 알고 있잖아, 아니라면 날 여기 들여놓지도 않았을 테지.”

이 말을 하고 기다렸지만, 상대는 아무런 응답도 없었다.

“놈은 유일하게 내가 해결하지 못한 사건이야. 난 더 능력 있는 수사관이 되고 싶어. 놈을 기필코 잡을 거야. 그러기 위해선 리그가 필요하고.”

“속 마음이 그대로 드러나니 기분이 어떤가?"

목소리가 바로 귓가에서 속삭이며, 뒷골목에 나 있던 비밀 문이 탁 닫혔다. 홱 몸을 돌려봤지만, 눈에 들어온 거라곤 학회의 아름답게 장식된 대리석 문 뿐이었다. 등 뒤로는 챔피언이 되기 위해 걸어갈 길이 펼쳐져 있었다.

“내 속마음이 궁금하거든, 다음 번엔 그냥 물어보도록 하세요. 번잡하게 이런 것들은 다 필요 없으니까.” 지금도 여전히 감시 당하고 있다는 걸 잘 알고 있는 케이틀린이 오만하게 대답하고는 라이플을 어깨에 걸치고서, 리그 안으로 유유히 걸어 들어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