키니치 하나브 파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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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K'inich Janaab' Pakal(키니치 하나브 파칼)
603 ~ 683. 치세 615 ~ 683

마야 문명의 일원인 도시 국가 팔렌케의 왕. 'Pakal'은 '방패'라는 뜻이다.

팔란케의 왕 중에서 이름이 알려진 21명의 왕 중 한 명으로 왕계표 순서상으로는 정확히 알 수 없지만 알려진 것 중에서는 12번째이다.

본래 왕의 방계로 밀림에서 살다가, 왕실에 후사가 없자 귀족들에 의해 추대되었다고 한다. 칼라크물(Calakmul)을 비롯한 주변 도시 국가들의 압력을 이겨내고 정복 사업을 벌였으며, 대대적인 건축 사업을 통해 권위를 과시하였다. 그의 무덤은 왕묘인 동시에 신전('비문의 신전'이라는 이름이다)으로 건설되어 그가 갖고 있던 권위를 보여준다.

2 석관덮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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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의 무덤으로 알려진 비문 신전에서 발견된 석관 덮개의 문양이 마치 뭔가를 타고가는 사람을 새긴 것으로 보이자, 에리히 폰 데니켄은 이 석관 덮개의 문양이 UFO의 착륙장면을 묘사한 것이라고 주장해 초고대문명설의 논쟁을 시작했다.

그러나 이는 마야의 종교와 사상을 이해하지 못한 무지의 소치라는 것이 고고학자들과 역사학자들에 의해 밝혀졌다. 실제로 문양을 가로로 놓고 본다면 우주선 운운하는 소리가 나올수도 있지만 세로로 세워놓고 본다면 전혀 다른 해석이 나오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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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우주개발 초창기 우주인들은 G를 견디기 위해 비스듬히 누워서 우주선에 탑승했다.

마야의 왕을 상징하는 것일 가능성이 매우 높다. 무엇보다 왕릉에서 석관 덮개 그림이 나오면 누구 것일 가능성이 가장 높겠는가? 게다가 마야는 이집트와 같은 제정일치 사회는 아니었다.[1] 따라서 마야의 다른 유적들의 문양을 살펴보면, '위대한 왕'으로 대표되는 마야의 왕이 왕관을 쓰고 있는 모습과 인간형 용의 모습을 한 퀘찰코아틀이 엄연히 분리되어있는 모습을 살펴볼 수 있다. 다만 앞서 말했듯 파칼의 경우 제정일치적인 모습을 보여주었으므로, '신으로서의 왕'이 그려졌을 가능성도 있다.

  1. 정확히 말하자면 제정일치의 시도는 있었다. 10세기 멕시코 고원 지역 톨테카의 왕 토필친(Topiltzin)에 관련하여 이를 암시하는 신화가 남아 있는데, 결과적으로 토필친은 패배하여 동쪽으로 떠난다. 즉 제정일치를 통한 중앙 집권 강화가 실패했다는 것을 보여주는 것. 이 신화는 마야 지역에도 유사한 형태로 남아있다. 여담이지만 이 토필친이 동쪽으로 떠나며 나중에 다시 돌아올 것이라고 말했다는 신화가 전해져, 스페인의 침략 시기 흔히 알려진 '백인들을 신으로 모신 원주민들'의 모습이 나타나게 된다. 물론 실체는 좀 복잡하지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