팔레 이데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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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alais Idéal

프랑스 드롬 주 오트리브에 있는 유명한 건축물

내용


팔레 이데알을 지은 페르디낭 슈발 이름이 좀..

우체부 페르디낭 슈발(1836~1924)은 르 마가진 피토레스크의 삽화에서 본 바깥 세상의 이미지를 모아서 다양한 시대와 나라의 건축 양식을 섞은 4면의 성 파사드에 포함시켰다. 여기에는 성경, 이슬람, 중국, 고딕, 힌두 등 다양한 기원의 각종 시각적, 종교적, 그리고 신화적 영향이 깃들어 있다. 건축은 물론 어떠한 예술교육도 받은 적이 없는 그는 낮에는 하루 30㎞를 걸으며 우편물을 배달하고 저녁엔 등잔불을 켜놓고 두세 시간밖에 안 자면서 궁전을 지어 역사에 남을 예술작품을 만들었다. 스스로 팔레 이데알(palais Ideal·이상의 성)이라고 이름 붙인 이 꿈의 궁전 벽에는 그가 쓴 글귀가 남아 있다.

“농부의 자식으로 태어나, 농부로 살아온 나는, 나와 같은 계층의 사람들 중에도 천재성을 가진 사람, 힘찬 정열을 가진 사람이 있다는 것을 증명하기 위해 살고 또 죽겠노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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빨간 원 안에 새겨진 글씨는 "Travail d'un seul Homme (한 남자가 만든 작품)"

슈발은 1864년에 환상적인 작은 동굴 속 바위 궁전을 짓는 꿈을 꾼 것이 팔레 이데알을 지은 바탕이라고 밝혔다. 덜 재미있는 설에 의하면 오트리브의 침식 풍경 속에서 우편배달을 하다가 돌에 걸려 넘어졌는데, 이때 영감을 얻었다고 한다. 1879년 그는 돌을 수집하기 시작했으며, 결과적으로는 외벽을 짓는 데만 20년의 세월이 걸렸다. 슈발은 사후에 자신이 지은 이 유일무이한 건물 속에 묻히기를 바랐지만 당국의 허가를 받지 못하자, 마을 묘지에 8년에 걸쳐 자신과 아내를 위한 영묘인 고요와 영원한 휴식의 무덤을 지었다.


그가 직접 만든 자신의 무덤.

팔레 이데알의 환상적인 구조를 두고 초현실주의자들은 꿈속의 삶이 실제의 세계로 들어왔다며 찬사를 보냈다. 앙드레 브레통과 파블로 피카소 등으로부터 인정을 받은 덕분에 관광 명소가 되었으며, 오늘날에는 연간 12만 명의 관광객이 팔레 이데알을 찾고 있다. 1969년 앙드레 말로는 팔레 이데알을 문화재로 지정하였다.
그리고 슈발은 죽기 전에 이런 말은 남겼다,무슨 뜻인지 해석해 주실분 구합니다

Je me suis souvenu que Napoléon ne existait pas ne existe pas ou est impossible il a raiso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