팽총

彭宠(?~29년)


팽굉(彭宏)의 아들로 자는 백통(伯通)으로 남양(南陽) 완지(宛地) 사람이다.

1 갱시제 수하

팽굉은 전한 애제(哀帝)때 어양(漁陽) 태수를 지냈었다. 팽굉은 위용있는 용모와 함께 엄창난 식성으로 아주 유명했는데, 왕망 정권이 이단자를 추출할 때 주살되었다. 팽총은 젊은 시절 군에서 관리를 지내다가 왕망 정권 때에는 대사공 왕읍(王邑)의 군대에서 일했다. 팽총은 낙양에 도착한 후, 자신의 남동생이 후한 군영에 있다는 소식을 듣고 주살될까봐 동향 사람인 오한과 함께 어양으로 도망쳐 말직 관리가 되었다. 갱시제가 칭제를 하고 한홍(韓鴻)을 보내 북방을 순시하도록 명했을 때, 한홍은 계지(薊地) 도착하여 동향인 팽총과 오한을 만나 즐겁게 이야기를 나누었는데서로 뜻이 잘 맞았다.팽총은 한홍의 추천으로 편장군(偏將軍), 어양 태수에 올랐다.

2 유수에게 귀의

그 후 유수가 갱시제의 사자로 계지를 순시할 때는 팽총에게 조서를 내려 알현하도록 청했다. 당시 하북에서 황제를 칭한 왕랑은 팽총을 자신의 편으로 끌어들이고자 힘쓰고 있었다. 그러나 오한의 권유로 팽총은 상곡군(上谷郡) 태수 경황(耿況)과 함께 유수에게 귀의하기로 결정하고, 수하 오한과 왕량(王粱)을 남쪽으로 보내 유수를 따르도록 하였다.

유수는 팽총을 건충후(建忠侯)로 봉하고 대장군(大將軍)의 관직을 내렸다. 유수가 왕랑을 공격할 때 팽총은 유수 군대의 식량 공급이 끊이지 않도록 도왔다. 유수가 왕랑을 격파한 뒤 동마(銅馬)의 농민군을 추격하다가 계지를 지나게 되자, 팽총은 나아가서 유수에게 배알했다. 팽총은 왕랑을 물리치는데 큰 도움을 주었으니 유수가 자신을 특별하게 여기고 후한 봉작을 상으로 내릴 것을 기대하였으나 유수는 평소와 다름없이 팽총을 맞앗다.

팽총은 실망하며 그 일로 인해 몹시 화가 났다. 유수가 그 사실을 알고 유주목(幽州牧) 주부(朱浮)에게 자문을 구하자 주부는 팽총을 왕망을 돕다가 왕망이 제위에 오르자 불평만 하다가 주살당한 견풍(甄豊)에 비유했다. 유수는 크게 웃으며 그렇지 않다고 말했다.

유수가 황제를 칭한 뒤, 팽총, 오한, 왕량은 똑같은 작위를 받고 삼공에 올랐다. 패총은 예전에 자신의 부하였던 오한과 왕량이 자신과 동등한 지위에 오르자 불공평하다고 여겼다. 그는 자신의 뜻대로 되지 않는 것을 울적해하며 탄식했다.

3 반란

전쟁이 끝난 뒤 북방의 각 군현은 매우 피폐해졌자먼 어양군만은 온전했다. 팽총은 소금과 철을 팔고 지조를 모으며 열심히 군현을 다스렸다. 그 결과 어양군은 나날이 부강해졌다. 주부는 유수의 면전에서 여러 차례 팽총의 험담을 하며 그가 용병을 모으고 반역을 꾀하고 있다고 고했다.[1]

유수 역시 전부터 팽총에게 맺힌 응어리가 있기에 주부의 말을 듣고 의심이 커졌다. 유수는 팽총에게 조서를 보내 알현할 것을 요청했다. 팽총은 주부의 농간임을 알아채고 상소를 올려 주부와 함께 황성[2]으로 가서 대질하게 해달라고 부탁했다. 또한 주부가 자신을 억울하게 모함하고 있으니 같이 가서 유수를 설득해달라고 오한과 개연(蓋延)에게 편지를 보냈다 그러나 유수에게 거절당하자 팽총은 더욱 놀랐다. 팽총의 아내는 이를 억울하게 생각하여 팽총에게 유수의 부름에 응하지 말라고 했으며, 팽총은 측근들과 상의를 한 끝에 황궁으로 가지 않기로 결정했다. [3]

유수는 팽총이 입궁하지 않자 팽총의 사촌 동생 자후란경(子后蘭卿)을 보내 설득하도록 명했다. 이미 마음을 굳힌 팽총은 사촌 동생을 구금하고 반란을 일으켰다.

3.1 계성 전투

건무 2년(26년), 팽총은 정예병 2만 명을 거느리고 계성의 주부를 공격했다. 주부는 팽총에게 편지를 보냈는데, 그는 팽총이 용두사미로 중간에 포기한다면 안타깝게도 반란을 일켰으니 묻힐 땅조차 없을 것이라고 하는 동시에 엄청난 욕과 박정한 표현을 써서 오히려 반감을 부추겼다. 그러면서 편지에 한 예를 들었다.

옛날 요동에 한 사람이 살았는데, 어느 날 그의 집돼지가 머리만 하얀 돼지를 낳게 되었는데, 그 지역에서 그런 돼지는 매우 보기 드물었다. 그래서 그는 돼지새끼를 진귀한 보물로 여기고 황제에게 바치고자 하였다. 그는 돼지를 가지고 하동 일대에 도착했다. 그런데 알고 보니 그곳 돼지는 모두 머리가 하얀 색이었다. 결국 그는 매우 실망하며 고향으로 되돌아갔다.
즉, 팽총은 자신의 공이 매우 대단한 줄 아는데, 그런 생각은 돼지를 바치고자 했던 요동 사람과 다를 바 없다는 뜻이었다.
팽총은 주부가 자신의 공로를 요동의 돼지 한 마리에 비유하자 더욱 화가 났다.

분노에 찬 팽총은 맹공을 퍼부었고 그는 상곡군 태수 경황에게 사자를 보내 반란을 도울 것을 제안하지만 거절당하고 경황은 사자를 죽인다. 그러나 팽총은 그대로 포위 공격을 했고 계성은 위급해진다. 주부는 유수가 계성을 매우 중요하게 여기고 친정을 나올 것이다라고 생각하고 구원을 요청하였으나, 유수는 유격장군(流擊將軍) 등륭(鄧隆)을 구원병으로 보낸다. 여기에 실망한 주부는 유수에게 원망하는 서신을 보내자 유수는 자신이 적미군을 무찔렀을 때와 마찬가지로 지금 팽총의 반란군은 급조된 병사들이므로 곧 내분이 일어날 것이며, 지금은 군량이 부족하여 보리를 거두고 출정할 것이라고 알린다.

등륭의 구원병이 이르자 등륭은 군대를 주둔시키고 유수에게 보고한다. 하지만 보고를 받은 유수는 대노하여 군대는 분명 패배할 것이라고 예측한다. 유수의 예측대로 팽총은 대군을 등륭과 대치시킨 후에 암암리에 3천 경기병을 보내 후방을 습격하자 등륭은 대패하여 달아났다. 한편, 주부는 등륭의 군대와 거리가 멀어 제때 돕지 못하고 성안으로 퇴각하고 만다.

건무 3년(27년) 봄, 팽총은 흉노에 미인과 채색 명주를 보내 화친한다. 그러자 흉노 선우는 8천 기병을 보내 도와준다. 거기에 팽총은 산동에 할거 중인 장보(張步)와 인질을 교환하여 연횡을 맺은 뒤 병사를 일으켜 계성을 공격한다. 계성 안의 양식은 떨어져 인육을 먹는 지경에 이르자 결국 팽총에게 함락된다. 주부는 다행히(?) 경황의 도움으로 가까스로 성을 빠져나간다.

주부는 도망치는 길에 처자식이 짐이 되자 모두 죽여버리고 길을 떠나고, 곧 낙양에 도착하자 상서령 후패(侯覇)는 유수에게 상주문을 올려 주부는 팽총의 반란을 부추겨 유주를 어지럽히고 성을 잃고도 죽음으로 충성을 다하지 않았다며 포박하여 주살할 것을 청한다. 그러나 유수는 그를 관직을 옮기는 것으로 일을 마무리 한다.[4]

3.2 건국

팽총은 계성을 함락시킨 뒤 스스로를 연왕(燕王)으로 칭하고 유수에게 대항한다. 그러나 반란을 일으키기 전부터 불안했던 그는 반란을 일으킨 뒤에도 안정을 찾지 못한다. 반란을 일으키라고 거들었던 팽총의 부인도 연일 악몽에 시달렸고, 그의 집에서는 괴상한 일이 끊이질 않자 팽총은 점쟁이를 부른다. 점쟁이는 군대 내에 살기가 있어 내란의 기운이 있다고 하자 팽총은 자후란경을 의심하고 내부에서 반란을 일으키지 않도록 외지로 보낸다. 그 후 한동안 유수는 다른 중소 반란 세력들과 아직 할거하고 있는 자지구레한 세력들을 토벌하느라 북쪽을 돌보지 못한다.팽총은 왕으로 칭할 뿐 제위에 오르지 않고 한 지역에 안거하여 후한과 별일 없이 지냈다.

3.3 최후

건무 5년(29년), 팽총은 재계(齋戒)할때 부정을 타지 않기 위해 혼자 방을 쓴다. 그의 하인 자밀(子密)등 세사람은 잠이 든 팽총을 묶고 집안에 있는 병사에게 대왕께서 잠이 드셨으니 쉬라고하며 돌려보낸다. 그리고 팽총의 명을 가장하여 집안의 노비를 팽총의 방으로 불러 하나씩 불러 포박한다. 마지막에는 팽총의 처자식을 불러 포박하자 처가 살려달라고 애원했지만 답을 듣지 못한다.

자밀은 패거리 하나와 처를 데리고 재물을 빼앗기 위해 가자 팽총은 자신을 감시하는 사람에게

"나는 줄곧 자네를 좋게 보아왔다네. 자네가 자밀에게 협박을 당헤서 이런다는 것을 알고 있으니 나를 풀어주기만 한다면 자네를 내 여식과 맺어주겠네. 그럼 집안의 재산은 전부 자네 차지야."

라고 말하자 하인은 마음이 동해 팽총을 풀어주려고 하지만 자밀이 창밖에서 감시하는 것을 눈치채고 감히 그렇게 하지 못한다. 결국 팽총은 살 수 있는 마지막 기회를 놓치고 만다. 자밀은 재물을 얻은 뒤 팽총의 처에게 마대 두 개를 만들라고 시킨 뒤, 한밤중이 되자 '팽총에게 자밀을 자호란경에게 보내 공무를 처리해야 하니 막아서는 안된다.'는 하달문을 쓰게 한다. 팽총은 목숨을 구해보려고 자밀의 말대로 했으나 하달문을 받은 자밀은 팽총 부부의 목을 잘라가지고 마대에 담아 유수에게 공을 치하해달라고 요청한다.

유수는 배신자 자밀을 처리할 때 고민하는데 상을 내리면 그것은 배신을 고무하는 꼴이 되는 것이고, 그렇다고 그를 처단한다면 분명 남은 반란들은 제압되기 어려울 것이라 여긴다. 그래서 유수는 자밀을 불의후(不義侯)로 봉하여 두가지를 절충하는 동시에 팽총의 일족을 멸한다.
  1. 주부는 원래 유수 군대에서 대사마의 주부(主簿)를 맡고 잇다가 왕랑이 멸망하자 대장군, 유주목으로 계성(薊城)에 있었다. 주부는 어릴적부터 남다른 뜻을 품고 사람들의 마음을 매수하고 왕망 정권때의 고관들을 자신의 수하로 끌어들이기도 하고, 각 군 관아의 양식을 그 가족을 부양하는데 아낌없이 쓰기도 했다. 주부가 팽총에게 식량을 요청했으나 팽총이 전쟁이 일어나는데 물자를 낭비하면 안된다고 거절하자 고집이 쎈 주부는 맹렬하게 팽총을 질타했다. 팽총 또한 성격이 강하고 모질어서 높은 전공을 자부하며 맞섰다. 그래서 주부는 팽총을 미워했다.
  2. 황제가 머무는 성
  3. 그 수하들 역시 주부에게 원한을 품고 있었기 때문이다.
  4. 그러나 주부는 명제 때에 전횡을 일삼고 오만방자하게 굴다 강등되었고, 그래도 습관을 고치지 않자 자결을 명령받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