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레드 웨스트 & 로즈메리 웨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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왼쪽부터 프레드 웨스트,로즈마리 웨스트[1]
출생 : 프레드 웨스트 - 1941년 9월 29일 ~ 1995년 1월 1일 ( 53세 / 자살 )
로즈마리 웨스트 - 1953년 11월 26일 ~
국적 : 영국
범죄와 피해자 : 어린이 성추행, 성폭행, 강도, 살인 / 12명 ~ 13명
범죄 시기 : 프레드 - 1967년 7월 ~ 1987년 6월 / 로즈마리 - 1971년 6월 ~ 1987년 5월
체포날짜 : 프레드 1994년 2월 / 로즈마리 - 1994년 4월

1 개요

부부가 연쇄살인의 공범인 드문 사례. 10여 명에 이르는 여성을 잔혹하게 살해하였으며 친자식들까지도 성적으로 학대했다.

2 일생

2.1 프레드 웨스트

프레드 웨스트는 1941년에 태어났으며, 그의 집안에서는 오래전부터 근친상간이 빈번했다고 전해진다. 그는 20세 때 상습적인 절도범이었고, 13세 소녀를 임신시킨 아동 성폭행범이었다.[2]

프레드는 1962년에 불안한 10대이며 가끔 매춘부로 일하는 캐서린 ‘레나’ 코스텔로와 결혼했는데, 당시 그녀는 다른 남자의 아기를 임신한 상태였다. 결혼 직후 그녀는 샤메인이라는 딸을 낳았다. 프레드는 여자들을 즐겨 임신시키고, 또 그 여자들이 다른 남자와 성관계하는 것을 보기를 좋아했는데, 레나와의 사이에서 1962년에 딸 안나 마리를 낳았다.

한동안 프레드는 아이스크림 트럭을 몰았다. 그 일은 어린 소녀들을 납치할 수 있는 기회를 무한히 제공했다. 나중에 그는 도살장에서 일을 했는데, 그것은 또 끔찍하게 쓸 만한 경험이 되었다.

1967년 남편의 변태적인 성적 요구에 질려버린 레나는 가출을 했다. 그녀가 집을 나가자마자 프레드는 안나 맥폴이라는 10대 여성과 친해져 금세 그녀를 임신시킨다. 그녀가 그에게 결혼을 강요하자 프레드는 그녀를 죽여서 토막낸 다음 그녀의 손가락과 발가락을 기념품으로 간직했다. 이 기괴한 의식적인 ‘사인’을 그는 장차 다른 사건들에서도 반복하게 된다.

얼마 뒤 레나는 프레드에게 돌아왔지만 다시 그와 영원히 작별한다. 또 자신의 아이인 안나 마리와 샤메인은 프레드가 키우게 맡겨졌는데, 이 아이들에게는 일상적으로 강간이 행해졌다. 결국 1969년, 나이가 28세이던 프레드는 그의 혐오스러운 삶의 남은 기간을 함께할 파트너를 만나게 된다.

2.2 로즈마리 웨스트

로즈마리는 정신분열증 환자인 아버지와 우울증 환자인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났는데, 그녀의 어머니는 그녀를 임신했을 당시 충격 치료를 받은 적이 있었다. 로즈는 성적으로 문란했으며 입이 거칠어 상스러운 말을 내뱉는 고집불통이었다. 그녀는 자신의 남동생과 침대에 들어가 애무하기를 좋아했다.

3 살인의 시작

프레드와 함께 산 지 1년이 지나기도 전에 로즈마리는 딸을 낳았고, 헤더라고 이름을 붙였다. 아이를 낳은 직후 그녀는 홧김에 프레드의 수양딸인 샤메인을 죽였다. 프레드가 딸의 시체를 처분했고, 그는 평소대로 자신의 기괴한 수집품인 손가락과 발가락을 챙겼다. 그와 레나 사이에서 태어난 딸 안나 마리는 아버지와 새 어머니에게서 거듭해서 성적인 고문을 당했다. 프레드가 딸을 강간하는 동안 로즈는 그 여덟 살짜리 딸을 붙잡고 있었다. 레나가 자신의 아이를 보려고 다시 나타났을 떄, 그녀는 이미 살해되어 시체는 평소처럼 처리된 후였다. 그녀의 사체는 절단되었고 손가락과 발가락은 따로 제거되었다.

이후 20년 동안 웨스트 부부는 겉으로는 멀쩡한 듯 생활을 유지해갔지만, 상상하기조차 힘든 사악한 행위들 역시 멈추지 않았다. 로즈는 집에서 나와 매춘부로 일했고, 도색 잡지에 자신을 광고하기도 했다. 빈번하게 임신을 했던 그녀는 아이를 일곱이나 더 낳았는데, 그중 일부는 프레드의 아이였고, 나머지는 손님들의 아이였다. 자신들의 변태적 성생활(무수히 끔찍한 일들 중에서도 프레드는 친구들을 집에 데려와 자신의 미성년인 딸 안나 마리와 섹스하게 하고는 그것을 보며 즐겼다.)에 더는 만족할 수 없게 된 웨스트 부부는 극단적인 흥분을 얻는 방편으로 가학적인 연쇄살인에 의지하게 되었다.

그들은 크롬웰가 25번지에서 하숙집을 운영했다. 그리고 자신의 집에서 거주했던 젊은 여성들을 살해했다. 그 수는 최소 12명으로 추정된다.

하숙집의 특성상 들어가고 나가는 사람들이 많았으며 짧게는 몇주에서 길게는 몇개월씩만 여성들이 묵었기때문에 사람이 없어지는 것은 그리 특별한 일이 아니였다.또 웨스트부부는 차를 타고 무전여행객들이나 버스를 혼자 기다리는 젊은 여성들을 자신의 집으로 데려와 살해하기도 했다.[3]그들에게 사로잡힌 여성들은 지속적인(때로는 1주일 내내) 성적 고문의 대상이 되었고, 그런 다음 살해되고 절단되어 지하실에 매장되었다. 지하실이 꽉 차자 웨스트 부부는 그곳을 자기 아이들의 육아실로 개조했고, 이후 시체들은 집 뒤뜰에 매장하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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희생자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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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롬웰가 25번지 지하실과 정원.

4 만행의 종말

웨스트 부부가 87년에 딸이 행방불명됐다고 신고한 후, 의심을 품은 경찰이 끈질기게 프레드릭을 유도 심문한 끝에 그가 딸 살해와 암매장 사실을 자백하면서 사건의 베일이 벗겨지기 시작했다.경찰은 1994년 2월26일 웨스트 부부의 친딸인 헤더 웨스트(16)의 유골을 크롬웰가 25번지 뒤뜰에서 처음 발굴한 이래 1년 동안 현장을 정밀 수색하고 발굴된 유골을 분석해 다른 피해자들의 신원을 일반에 공개했다. 크롬웰가 범죄 현장 외에도 두 군데에서 3명의 유골이 더 발견돼 모두 12명이 살해된 것으로 경찰은 확인했다. 수사와 발굴이 진행되면서 피해자의 유골이 아마도 100여 구에 이를 것이라는 소문이 나돌기도 해, 경찰은 범죄 수사 사상 가장 많은 인원과 장비를 들여 지난 9월 말까지 끈질기고 지루한 탐문 수사와 발굴 작업을 계속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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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견된 증거품을 옮기고 있는 경찰.

일주일뒤 웨스트 부부는 살인혐의로 기소된뒤 각자 별개의 교도소에 수감되었다.교도소에서 재판을 기다리면서 로즈마리는 프레드와의 관계를 완전히 끊어버렸다. 이에 충격을 받은 프레드는 1995년 1월, 자신이 수감되어있던 감방에서 침대시트로 목매달아 자살했다. 그의 나이 53살이었다.결국 로즈마리 혼자 재판을 받게되었다. 그녀는 1995년 10월에 시작된 재판에서 10건의 살인혐의에 대해 무죄를 주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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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백을 주장하는 로즈마리 웨스트.
하지만 판사는 받아들이지 않았고 그녀는 결국 종신형을 선고받고 현재까지 복역 중이다.

5 이후

로즈마리의 재판이 끝나고 1년뒤 프레드의 형 존도 성폭행 혐의로 기소됐다. 동생 프레드와 같이 범행을 저질렀던 것이다. 하지만 존은 재판이 시작되기전 자신의 집 차고에서 목매달아 자살했다.

이후 악명 높은 크롬웰가 25번지는 당국의 결정에 의해 철거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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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거된 크롬웰가 25번지.
  1. 결혼 전 성은 레트.
  2. “누구나 그런 짓을 하지 않나요?”라고 물으며 그는 법정에서 자신을 변론했다.
  3. 15~22세인 피해자들은 프레드릭이 길거리에서 차로 유인할 때 안심하고 차에 탔는데, 이는 차안에 있던 로즈마리 때문이었다. 성적 폭행과 강간을 당한 후 살아 남은 피해자 가운데 한 증인은 20년 전 글로체스터 시 거리에서 당시 21세이던 로즈마리가 웃는 얼굴로 숙식과 일자리를 제공하겠다고 제의해 두려움 없이 그들의 차에 올라타 크롬웰가 25번지로 끌려갔다고 증언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