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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바이킹들 사이에서 행해지던 사형 풍습. 대체적으로 노르만에서 전해져 내려오고 있다. 매우 잔인한 형벌이었기에 행해진 바는 많지 않다고 한다. 아직 현재도 역사학자들 사이에서 실제 행해졌는지 여부와 스칸디나비아인들의 시구의 해석에 관한 논쟁이 일어나고 있다. 북유럽의 각종 시나 신화에서 많이 등장하는데, 대표적으로 잉글랜드 신화, Orkneyinga saga, Heimskringla, Norna-Gests þáttr 등에서 언급이 된다. 앞선 3개의 신화에서는 아래의 방법 역시 묘사가 된다.[1]
2 유래
바이킹들의 법(法)은 매우 엄격하기로 유명한데, 바이킹은 특이하게 법을 정의를 구현하는 수단이 아닌 공동체를 유지하는 질서(秩序)의 의미로 생각하였다. 그렇기에 법에 있어서 사실을 중요시 하여 증인과 증거가 필수였다. 하지만, 바이킹은 죄가 반드시 악한 사람에 의해 저질러진다고는 생각하지 않았다. 대표적으로 살인의 경우, 살인을 저지르고 만나는 첫번째 사람에게 혹은 세 집을 지나쳐 오기 전에 만나는 사람에게 자수를 하면 사형 대신에 피살자의 가족에게 보상을 해주는 조건으로 사형을 면제하여 주기도 하였다.
이러한 바이킹들의 법에는 왕이나 귀족들에게도 예외가 없었는데, 천재지변에 의해 흉작이 발생하면 처음에는 소를, 효과가 없으면 사람을, 마지막에는 왕을 신에게 제물로 바치는 의식도 행하였고, 왕족이 죄를 저지르는 것 역시 엄하게 다스렸다. 왜냐하면 바이킹들은 명예와 수치심을 법치(法治)의 중요 근거로 삼았기 때문이다. 여기서 가장 극형이 바로 "피의 독수리"라는 형벌이었고, 잉글랜드의 켄터베리 대주교, 노섬브리아 왕, 노르웨이 왕자가 이러한 방식으로 처형되었다고 한다.
3 처형 방법
우선, 사형수의 양팔을 벌린 채로 고정하고, 등가죽을 칼로 잘라내고 갈비뼈가 보이도록 하고, 상처에 소금을 뿌린다. 그리고 갈비뼈를 모두 척추에서 끊어낸 다음에, 그 벌어진 틈으로 허파를 길게 늘어뜨려 전체적으로 뼈와 허파가 늘어진 독수리의 형상을 만든다. 풍습에서는 이들을 이러한 형상으로 오딘에게 바친다라고 표현하고 있다.[2] 이 때 비명을 지르거나 소리를 내지 않고 죽어야 오딘 신에게 갈 수 있다고 한다. 그래야만 사후에 전사들의 낙원 발힐라로 갈 수 있다는 소리. 피의 독수리의 처형 대상은 특이하게도 귀족이었으며, 아버지를 살해한 자에게도 적용이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