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연(장영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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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언-지신사로써 태종 말과 세종 초에 두 왕을 보좌하다가, 황희가 영의정의 자리에서 물러난 이후에는, 그 뒤를 이어 영의정이 된 인물로, 극중에서는 태종 앞에서도 두려움없이 다만 그 내용부터가 직언을 하는 강직한 관료로 등장하는데, 세종 또한 그의 그러한 점을 마음에 들어하여, 그를 중용하고자 할 정도이다. 하지만......그는 태종의 강력한 왕권정치나 세종의 격물진흥 정책에 부정적인, 성리지학을 중심으로 한 재상총재제를 추구하는 인물이며, 강직한 만큼 자신의 의견이 옳다는 강한 확신이 생길 때 사실은 언제나?? 는 위험한 말 나중에 가서는 행동도 도 서슴치 않고 내뱉어 황희나 맹사성 등과 같은 대신들은 그의 행보를 우려하며, 그를 걱정하는 눈으로 바라보거나 꾸짖기도 할 정도이다.

그렇기에 세종의 정책, 특히 작중 중심소재인 장영실과 조선만의 역법을 위한 천문관측과 관련하여 세종과 가장 많은 대립을 하는 인물이기도 하다. 그가 그렇게 세종과 대립을 하는 이유는 장영실을 통해 신분질서가 무너질 수 있다는 우려와, 세종이 격물진흥에만 노력을 하는 것으로 보여서이기도 하지만, 가장 큰 이유는 황제가 내리는 명나라의 역법이 아닌 조선만의 역법을 만들려는 사실을 명나라에서 알게 된다면, 조선이 반역한 것으로 여기고 군사를 이끌고 쳐들어 올 것에 대한 두려움 때문으로, 그 나름대로의 조선 왕실과 백성들의 안녕을 위하는 생각에 의해서였다. 조선이 비밀리에 천문관측을 하는 것에 대해 명나라 사신이 알게 되자, 무릎까지 꿇으며 자신이 어떻게든 막을테니 눈감아달라고 말하는 것도, 장영실의 능력을 인정하면서도 그에게 천문관측을 포기하고, 왕 곁을 떠나라고 하는 것도 그러한 생각에서 비롯된 것으로 보인다. 앞의 행동만을 보면 사대주의자여서 그런 행동을 했을 것이라고 생각하기 쉽지만, 주태강의 노력으로 명나라가 조선의 천문관측을 허가하였음에도 불구하고, 이를 기뻐하는 세종이나 다른 신하들과는 달리 그저 황제의 변덕에 의한 일시적인 것일 뿐이라고 판단하고 우려하는 것을 보면, 어쩌면 명나라에 대한 불신이 큰 것일지도 모른다.

그로 인해 처음에는 자신을 영입하고자 했던 다른 과격한 보수파 사대부들이 만든 비밀단체를 고발할 정도로 간언을 하는 것에만 그쳤지만, 자신과 같은 길을 갈 것이라고 여겼던 황희까지도 세종의 편이 되어 움직이며, 세종 또한 자신이 고발한 사대부들의 명단을 받지 않고, 그들이 자신을 인정할 때까지 기다리겠다고 말하는 것에 너무 이상적이라고 여기고, 장영실 또한 자신만의 신념을 가지고 물러서지 않자, 과격한 방법을 통하여 이를 해결하고자 한다. 정신교육을 시키고 시작하겠다 자신이 고발하려 했던 과격 보수파 사대부들과 같이 가기로 하고, 그동안 눈여겨봐왔던 장영실에 대한 질투심에 사로잡힌 장희제를 영입해 결국 천문관측소와 문서보관소를 불태우고, 그 곳에서 연구하던 박효원, 임명덕 등을 죽이기에 이른다.

하지만 이 또한 조선을 위한 자신만의 방식이라고 생각하며, 조선의 천문관측에 대해 알게 된 명나라 사신에 의해 무릎까지 꿇었음에도 위기에 처하자, 자청하여 목숨을 걸고 명나라 사신으로 가겠다고 한다. 이후 몇 년이 지난 세종 9년에 다른 과격 보수파 사대부들이 세종의 건강이 안 좋다는 소문에 기뻐하자, 그것에 대해 분노할 정도로 세종에 대한 충성심만은 아직 여전한 듯 하다. 그저 세종이 성리지학에만 노력하는 군주가 되기를 원하는 것일지도........

이후 기상악화로 사용할 수 없는 해시계와 고장난 물시계로 인해 문제가 생겨 이루어진 대책회의에서 장희제가 만든 해동금루에 장영실이 문제를 제기하자 제작한 이가 더 잘 알지 않겠냐며 장희제를 옹호하고, 그를 믿어볼 것을 세종에게 청한다. 그러다가 자격루가 결정난 이후에는, 다른 대신들과 함께 조광으로부터 장영실의 위험성에 대해서 듣게 되면서, 다시금 그와 세종을 적대하지 않을까 싶었으나, 이제는 그런 과격한 이들과는 뜻을 달리 하고 싶었는지, 구식례 전후로는 세종을 지지하는 인물로 바뀌게 된다. 나중에 맹사성과 더불어 최만리 등 세종의 정책을 반대하는 다른 보수파 관료들을 질책하다가 나이가 드시니 순진해지셨다는 말을 들을 정도......

하지만 장영실의 안여 사건이 터지자, 황희와 더불어 장영실을 처벌해야 한다는 쪽으로 손을 들며, 장영실을 구하기 위해 자신들을 설득하고자 한 이천을 장영실의 지인인 최율은 증인이 될 수 없다고 말하며, 역으로 설득하는 모습을 보여준다. 다만 이것은 장영실에 불만을 가져서가 아니라, 세종을 위해서 그러한 결정을 내린 것으로 한글반포 등 이후에 세종이 펼칠 정책을 위해서라도 어쩔 수 없는 일이라고 말한다. 이후 덧붙여 말하기를 세종이나 장영실같은 이를 아직은 받아줄 수 없을 정도로 조선이 미숙하고, 이를 개선해야 된다고 말한다.

장영실이 떠난 뒤에는, 세종과 이천의 죽음에 대해 황희와 함께 얘기하면서 자기가 한 말처럼 세종보다 2년 더 살게 됐다고 투정부리는 황희에게 <장수는 복입니다>라는 말은 덤으로 문종의 건강악화와 어린 단종, 그리고 수양대군의 행보를 걱정하는 황희에게 절대로 그런 일은 없게 하겠다고 말하며, 나가려는 황희를 부축하며 나가는 모습을 보여주다가, 궁궐에서 마주친 단종의 손을 할아버지처럼 잡아주며 웃는 모습을 보여주면서, 나레이션과 함께 퇴장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