힐리구리실설사다미가한

설연타의 역대 가한
2대 진주비가가한3대 힐리구리실설사다미가한 4대 이특물실가한

詰利俱利失薛沙多彌可汗
Ilig külüg šad Istämi qaγan
(? ~ 646)

설연타의 제3대 가한. 이름은 설발작(薛拔酌). 진주비가가한의 아들.

진주비가가한이 동돌궐이 멸망하면서 북방에 도위건산 북쪽, 독라수의 남쪽에 각각 왕정을 세우자 남부의 왕정을 주관하게 되어 당나라로부터 소가한에 임명되었다.

645년에 당나라가 고구려를 원정하고 있던 도중에 진주비가가한이 사망하자 가한이 되어 설할리필을 죽이고 왕정을 통합했으며, 하남을 노략질하고 하주로 들어갔다가 집실사력의 공격을 받아 패하자 다시 군사를 보내 하주를 공격했다. 646년에 하주에서 격파당해 2천여 명이 포로로 잡히는 피해를 입었고 그의 경기병들은 숨어서 달아나 부내에서 시끄러졌다.

힐리구리실설사다미가한은 성품이 치우치고 급하면서 시기해 은혜를 베풀지 않아서 진주비가가한을 섬기던 신하들을 버리고 자기와 친한 사람들만 기용해 그 나라 사람들은 붙어있지 않았으며, 힐리구리실설사다미가한이 많은 사람들을 죽이면서 사람들이 스스로 편안하지 않았다.

희흘, 복골, 동라의 공격을 방아 패했고 646년 6월 15일에 당나라에서 군사를 파견해 설연타를 공격하자 힐리구리실설사다미가한은 수천 명의 기병을 이끌고 아사나덕시건의 부락으로 달아났다가 회흘의 공격을 살해당하면서 그 종족은 거의 다 합병되고 점거되었다.

구리라든가 설사가 들어가선지 이름이 참 곤란하다. 흘리고 다니신 설사 다 밑간함 중국어 음차의 한계로[1] 마치 현대 표준 중국어에서 무스타파 케말 아타튀르크를 穆斯塔法 凱末爾 阿塔蒂尔克로 쓴것과 비슷한 맥락으로 이해하자.

  1. 물론 지금의 표준중국어와 당시 쓰인 중국어의 발음차이도 천지차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