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60고지 전투
1.1 개요
1차 세계대전중 벨기에의 이프르 인근에서 벌어진 전투로서 60고지(Kaiajik Aghyl, Sheepfold of Little Rock)를 공략하기 위해서 벌인 연합군의 공병,공격작전을 뜻한다. 60고지는 이프르 전역에 존재하던 주요 요충지중 하나로서 원 주인은 프랑스 였으나 1914년 12월 10일에 독일군의 손에 넘어간 후 독일군 특유의 꼼꼼함 덕분에 콘크리트로 보강된 강력한 요새로 개조되었다. 설상 그 높이때문에 공세를 펼치기에 연합군은 아주 불리한 상태에 빠졌다. 결국 연합군은 과거 성을 공격할때 사용하던 터널 공격을 이용한 대규모 폭파 작전을 입안하였고 1917년 6월 7일, 공병대의 폭파작업을 시작으로 공격을 개시하기로 한다.
1.2 작전의 진행
1.2.1 사전준비
1.2.1.1 공병부대
폭파작전의 진행은 ANZAC 소속의 왕립 오스트레일리안 부대의 제 1 오스트레일리안 터널중대가 진행하였다.
지휘관은 호주 뉴 사우스 웨일즈 출신의 광산업자, 관리자였던 올리버 홈즈 우드워드(스코틀랜드계)였고 그 외에도 광산업에 종사하던 노동자와 엔지니어들이 부대에 투입되어 작업을 진행하였다.
작전은 무척 간단했다. 목표물인 60고지 아래로 이어지는 갱도를 6개를 건설한 후 총 450톤의 화약을 한꺼번에 폭파시켜 지반째로 60고지를 날려버리는 것이었다.
작전 실행 전날 저녁 영국 제2군 총참모장 찰스 해링턴 경은 다음과 같이 발언했다고 한다.
"신사 여러분, 내일 우리는 역사를 창조하지 못할 지도 모르나, 틀림없이 지형을 바꿀 것입니다."
1.2.1.2 전투부대
- 영국 제2군(지휘관 Sir Herbert Plumer)
- 9군단
- 16아일랜드 사단
- 19사단
- 36얼스터 사단
- 10군단
- 23사단
- 41사단
- 47사단
- 2앤잭 군단
- 뉴질랜드 사단
- 3호주 사단
- 25사단
- 독일 제4군(지휘관 Friedrich Bertram Sixt von Armin)
- 1근위예비사단
- 2사단
- 3바이에른 사단
- 7사단
- 35사단
1.2.2 작전개시
파일:6jOCGte.jpg
(1917년에 촬영한 항공사진)
새벽3시10분 지하17~42미터에서 사전에 설치한 폭약 475.9톤 가운데 424.8톤의 폭약이 성공적으로 기폭되었고 이때의 폭발로 발생한 충격파는 런던, 더블린, 베를린에서도 감지되었고 2차대전 발발 이전까지 인류가 일으킨 가장 강력한 재래식 화약 폭발로 기록되었다. 60고지를 방어하던 독일군 병력(약 1만명으로 추산)은 단번에 몰살되었고 60고지는 연합군에 손에 넘어가게된다.
하지만 이렇게 어렵게 얻은 60고지는 점령 한달만에 다시 독일군의 손아귀에 넘어가고 말았다.
한편 이 작전 때문에 독일군은 아라스Arras와 엔Aisne 전선의 예비대를 플란더스로 이동시킬 수 밖에 없었고, 프랑스군은 아라스-엔 전선에 가해지던 압박으로부터 해방되었다.
한편 이프르 시에서 4.6km떨어진 곳에 위치한 60고지는 1차대전 당시 60피트(18미터) 돌출된 언덕이었으나 현재 높이는 4미터에 불과하다고 한다.
1.3 여담
파일:UsyPUlp.jpg
(처음 세워진 60고지 기념비)
파일:CmXaT6f.jpg
(재건설된 기념비, 2차대전당시 총격전이 벌어진 상흔이 남아있다)
파일:Vgssgy7.jpg
공병사에 중요한 한획을 그은 작전이지만 워낙 굵직굵직한 일이 많았던 이프르 전역인지라 의외로 주목을 받지 못하여 제대로된 영상화는 찾아보기가 매우 어렵다. 2010년에 개봉한 동명의 영화가 거의 유일한 영상화이다.
해당 링크에서 영화 스크린샷 및 정보를 확인할 수 있다.